‘동남아시아’는
‘동남아’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 광고로 상징되는, 무능력한 남자도 쉽게 결혼할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 혹은 외국인 노동자나 불법체류자의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도
우리도 동남아를 싼 음식이 널린 관광지, 밤거리 문화로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가? 과연 동남아는 그렇게만 알고 있어도 되는 곳인가? [p. 26]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 그럼 동남아는 어디를 가리키고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남아는 아시아 대륙 남단의 ‘대륙지역’[인도차이나 반도]과 해상의 ‘도서지역’[말레이 제도]로 나눌 수 있다. 대륙지역에는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가, 도서지역에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동티모르가 속한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보면, 이질적인 존재가 있다. 한자(漢字) 문화권에 속하며, 과거제(科擧制)를 실시하고, 중국의 한자를 개량한 추놈[字? 혹은 ???]을 사용한 베트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한데 묶어 ‘동남아’로 칭하게 된 것은 왜 그런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동남아시아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이곳을 점령했던 일본군을 무장해체하기 위하여 들어온 마운트 배튼 경의 연합군 사령부를 동남아사령부(South East Asia Command)로 부르면서부터이다. [p. 34]
라고 한다.
너무 성의 없고 편의적인 이름 붙임[命名]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민의 역사
동남아의 역사는 이민의 역사라고 한다. 이 지역의 선주민(先住民)은 한때 갈인(褐人)으로 분류되었던, 곱슬머리에 매우 짙은 갈색 피부를 가진 작은 신장의 오스트랄로이드(Australoids) 계열의 네그리토(Negrito)라고 한다. 하지만, 동서양교류의 길목이다 보니 계속해서 새로운 이민자들이 나타났다.
먼저 대륙지역의 오스트로아시아 어족[베트남어, 몬어, 크메르어]과 도서지역의 오스트로네시아 어족[말레이-인도네시아어, 필리핀어, 태툼어, 자바어, 순다어, 세부아노어, 발리어, 아체어]의 1세대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이후 중국 남부지역[운남(雲南), 광서(廣西)]에서 한족(漢族)에게 밀려난 타이(Tai)족, 버마족이 2세대 이민자에 해당한다. 대체로 이 2세대 이민자까지를 원주민(原住民)으로 간주한다.
이 지역에 중국풍이 짙게 묻어나기 시작한 것은 쩡허[鄭和, 1371~1433]의 원정부터 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 곳이 말레이시아의 믈라카(Melaka)와 인도네시아의 팔렘방(Palembang)이다. 1405년부터 1430년까지 7차례의 대원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들 지역에 중국인 마을, 부킷찌나(Bukit Cina)가 생겨났다. 여기에 눌러앉은 중국인들이 현지 여인들과 가정을 이루면서 중국과 동남아 요소가 혼합된 프라나칸(Peranakan) 문화를 이루었다.
한편 1926년 영국은 말레이 지역의 4개 식민지[페낭(Penang), 싱가포르, 말라카, 딘딩(Dinding)]을 합쳐 ‘해협식민지’를 형성했다. 그리고 나서, 영어도 좀 하면서 경제적 기반을 잡은 중국인들을 ‘해협 중국인’으로 분류하여 세금징수하청업 등을 맡기며 식민정부와 중국인 사회의 중개 역할을 부여했다. 이들 이외에 19세기~20세기 초 중국인의 대규모 이민기에 막 동남아로 흘러 들어와서 신커[新客]라 불리는 ‘이주 중국인’도 있다. 최하층 생활을 하면서 ‘쿨리[苦力]’로 불리던 이들 저임금 노동자들의 후예가 오늘날 동남아 중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인이 타밀(Tamil)족을 중심으로 하는 인도인들을 말레이시아의 고무 플랜테이션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데려왔다.
복잡 다양한 동남아
동남아는 생선을 발효한 액젓[Fish sauce]을 주로 사용하는 문화권인데, 태국에서는 남쁠라, 베트남에서는 느억맘, 라오스에서는 빠덱, 캄보디아에서는 쁘라혹이라고 한다. 웬만한 동남아 음식에 빠지지 않는 향신료인 고수[=샹차이[香菜], 코리앤더(coriander)], 대표적인 과일인 망고스틴과 두리안 등에 대해 소개한다. 말레이시아의 아이스 까짱(Ais Kacang), 인도네시아의 첸돌(Cendol), 필리핀의 할로할로(Halohalo) 등 얼음 디저트 등에 대한 안내도 빠지지 않는다.
덧붙여서 그들이 자랑스러워할, 캄보디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크메르 제국[진람(眞臘), 802~1431], 해상왕국 스리위자야 왕국[Sriwijaya, 650~1275], 인도네시아의 최강국이었던 마자파히트 제국[Majapahit Empire, 1293~1527] 등의 역사를 소개한다. 그리고 이어서 1511년 포르투갈의 알부퀘르크(Alfonso de Albuquerque, 1453~1515)에 의해 동남아에서 가장 풍요롭던 무역도시 믈라카가 함락된 이후, 유럽인에 의한 동남아 식민지화가 시작되는 과정도 그리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라서 그런 것일까?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1권에서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을 베트남에 대해 상대적으로 간략하게 스쳐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전체 4권으로 된 시리즈이다 보니 다른 권에서 다루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만화’라는 형식을 선택했기에 좀더 넓은 연령층에서 접근하기 쉽다. 다른 권들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면, 동남아의 전반적인 문화와 이야기에 대해 입문하려는 자에게 좋은 가이드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