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로보로스
임성순 지음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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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 ‘우로보로스’는 “꼬리를 삼키는 자’' 라는 뜻으로 연금술에서 꼬리를 먹는 뱀, 혹은 용의 문양을 가리키는 단어(로) 영원함, 완전함, 불사를 상징한다. ~ 중략 ~ 네트워크 이론에서 우로보로스 효과는 어떤 사건의 순환적이고 본질적인 잠식 효과를 의미한다. 어떤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최선의 시도가 오히려 의도치 못한 결과를 이끌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 경우 일종의 아이러니와 자기 소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일반적인 실패와는 다른, 최악으로 전락해가는 나선을 의미한다.” [p. 2]

 

첫 번째 글인 ‘PROLOG’는 마치 중세 수도원에서 서고를 정리하는 이의 수기(手記)같은 느낌이 든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떠오르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두 번째 글인 ‘Q&A’는 대학의 양자역학에 대한 교양 과목의 마지막 강의를 묘사하고 있다.

 

세 번째 글인 ‘아톰’에는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고, 소수의 성공한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상현실로 도피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곳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기본수당은 나왔지만 기본수당은 일정 비율 이상 가상 화폐로 환전할 수 없었다. 한때 기본 수당 전부를 가상 세계에 쏟아 부어 결국 현실의 몸이 죽어 버리는 과몰입 아사 사건이 (현실보다 가상현실을 더 중시하는) 이계인들 사이에 번번했고, 정부에서는 최소한의 육체를 유지하는 기본 생활비를 정해 가상 화폐로의 환전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올해는 하루에 한 번 현실로 강제 로그아웃 시키는 법안이 통과됐다”[pp. 75~76]

뿐만 아니라 인간을 위해 일자리 할당을 법제화했지만, 법의 의도와 달리 인간은 로봇도 하지 않는 더럽고, 힘들고, 부가가치 없는 일만 했다. 남겨진 일이 그 모양이니 당연히 인간들은 더더욱 노동을 기피했고 그 결과 노동수당이 만들어졌다. 어떤 형태든 노동을 하는 이들은 임금과 별도로 정부로부터 받는 기본수당의 두 배를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로봇을 많이 고용하는 기업에서 내는 로봇세로 지급하는 수당이었다. 하지만 이런 법조차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수당에 만족했고, 젊은이들은 일을 할 바에는 이계라 불리는 가상 세계의 삶을 택했다.” [p. 81]

이처럼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탓인지, 영화 <맨인블랙>처럼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거나 보았을 경우 요원에 의해 기억이 지워진다.

 

네 번째 글인 ‘지도에 대한 열정’은 제국 전체의 지도제작을 명령 받은 신하가 황제에게 올리는 글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점차 이 책이 단편모음집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각 글이 그 자체로 완결성을 띠고 있고, 서로 다른 시대를 다루고 있으니……. 어쩌면 서로 다른 시공간에 걸친 여섯 개의 스토리로 구성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처럼 구성된 것일 수도 있겠다.

 

다섯 번째 글인 ‘스트럭쳐’는 빅뱅 직후를 재현하는 실험 전후로 연구소 조정팀 팀장의 심리를 다루고 있다. 인공출산 1세대이기에 ‘나’의 복제아를 자연출산하여 자신을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친숙했다. 어쩌면 부모들은 자식의 성공을 통해 자신의 삶이 실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닐까.

 

여섯 번째 글인 ‘ROLLBACK’은 지금까지 현실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가상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첫 번째 글인 ‘PROLOG’와의 연결고리를 드러낸다.

 

일곱 번째 글인 ‘함수’는 다섯 번째 글인 ‘스트럭쳐’와 이어진다. 기계의 손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자연출산으로 얻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랐다. 첫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다 그렇듯이.

안드로이드가 오기 전까지 나는 늘 수면 부족 상태였고, 아이는 원하는 걸 알지 못하는 엄마 탓에 계속 울어야 했다. 육아휴직 기간이었지만 집 안은 말리는 젖병과 쌓여 가는 일회용 기저귀 쓰레기, 아이의 밀린 빨래로 엉망이었다. 그 모든 혼돈을 육아 안드로이드는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해결했다. 나는 구원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가장 놀랐던 건 안드로이드가 아이와 정서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드로이드는 나보다 아이에게 잘 웃고 더 다정했다. 아이가 원하는 건 즉각 알아채서, 아이가 태어난 지 몇 달 만에야 원하는 걸 즉각 해결해 주면 거의 울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동안에 사람과 같은 체온이 됐다. 차가운 로봇이라는 내 기억은 편견일 뿐이었다. 육아 안드로이드가 온 후로 나만큼이나 아이도 행복해 보였다. 감정은 인간 고유의 것이므로 안드로이드 손에 자라는 것은 정서 발달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안드로이드의 감정은 가짜였고, 그것을 보여 주는 리액션들도 그저 치밀한 알고리즘으로 계산된 결과일 뿐이었다. 그러나 가짜도 충분히 그럴듯하면 형편없는 진짜보다 낫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보육 안드로이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자괴감 느끼실 필요 없어요. 부모는 처음이신 거잖아요. 다들 처음에는 서툴기 마련이죠."

보육 안드로이드가 돌아간 직후 나는 구매 신청을 하고 있었다. 부모로서 완패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기계의 손에서 자란 나는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아이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조차 로봇에게 배웠다.” [pp. 173~174]

 

여덟 번째 글인 ‘인터뷰’는 강인공지능 로봇과 연구소의 이사장의 인터뷰를 다루는데, 마치 사람과 사람의 인터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또한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암시하는 것일까?

 

아홉 번째 글인 ‘바다’는 일곱 번째 글인 ‘함수’와 이어진다. 초기 우주를 재현하려는 실험은 시공간의 굴절을 가져왔고, ‘나’는 유한한 닫힌 공간, 즉 다른 위상공간에 빠져들었다. 재난의 현장을 빠져나가려는 노력 끝에 ‘나’는 주임으로 알고 있던 존재와 만났다. 그리고 그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무기력하게 종말을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가상 현실을 통해 일상을 유지할 것인지 선택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 선택의 결과가 그려져 있다.

 

솔직히 다 읽어봐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현대 물리학 이론을 엮어 ‘인간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다는 느낌만 들 뿐. 나중에 다시 읽으면 지금처럼 각 글마다 요약하는 것보다는 나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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