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난 골목 노포 산책 - 낭만이 깃든 작고 오래된 가게 노포 탐방기
천구이팡 지음, 심혜경 외 옮김 / 페이퍼스토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이난 골목 노포 산책>은

 

타이난[臺南]은 타이완[臺灣]의 옛 수도이자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경주, 일본으로 치면 교토[京都]에 해당하는 도시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 숨어있는 듯 드러난 노포(老鋪)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왕하오이는 “최근에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와 화가들은 타이난에 머물며, 옛 도시들을 따라 돌아다니면서 색다르게 ‘감상’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p. 5]고 한다. 그런데, 구혜란의 <뉴욕 백년 식당>, 무라야마 도시오[村山俊夫]의 <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 이인우의 <서울 백년 가게>처럼 노포들을 다루는 글을 여럿 읽다 보니, 평범한 여행기를 거부하고 색다르게 감상하는 것은 타이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하나의 트렌드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SNS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진에 지쳐서인지, ‘악어’라는 예명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그린 수채화 풍의 그림이 반가웠다. 마치 썬 베드에 몸을 뉘이고 빨대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민촨루[民權路]와 신메이제[新美街]라는 두 거리의 지도가 먼저 나오고 각각의 거리에 있는 노포들이 소개된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옛 거리 느리게 걷기’라는 제목으로 관광명소가 소개되며, 책 마지막에 노포에서 만난 사장님들의 사진이 자리잡고 있다.

 

신메이제[新美街] 지도

출처: <타이난 골목 노포 산책>, pp. 76~77

 

웨이쥔방 댜오커옌주서[魏俊邦 彫刻硏究社]

출처: <타이난 골목 노포 산책>, pp. 90~91

 

옛 거리 느리게 걷기_쓰덴우먀오 다관디먀오[祀典武廟]

출처: <타이난 골목 노포 산책>, pp. 84~85

 

노포에서 만난 사장님들

출처: <타이난 골목 노포 산책>, pp. 172~173

 

타이난 노포의 매력

 

제일 먼저 소개된 곳은 신위진빙푸[新裕珍餠?]라는 옛날 과자를 파는 가게이다. 이곳은 가게 주인인 커빙장[柯炳章]은 6년 동안 손수레를 끌며 장사하다가 1963년 ‘신위진(빙푸)’를 창업해서 50여 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그는 “가게에서 파는 제품은 그 가게를 대표하는 것이므로 적당히 만들면 안 되며, 과자에 ‘믿음’을 담아 ‘한결같은’ 가게 정신을 고객들에게 전달하고 싶기 때문(에)” [p. 20] 기력이 떨어지자 빵과 케이크는 포기하고 과자만 팔고 있다. 그의 아내인 커천몐[柯陳麵]도 “가게에서 항상 정장이나 양장을 갖춰 입고 깔끔하게 화장을 한 다음 립스틱을 꼭 바른다. 그리고 손님들 한 명 한 명을 예의를 갖춰 맞이한다.” [p. 20]

 

100년이 넘는 가게인 전파차항[振發茶行]은 타이난에서 최초로 공식 등록된 차 도매상으로 수작업으로 찻잎을 포장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불상 조각계의 성형미용센터를 자처하는 허취쉬안포쥐텐[和成軒佛具店]은 1971년부터 20년 간 불상 조각이 유행했던 때 창업을 했으나 지금은 고인의 모습을 불상처럼 만들어 신격화하던 유행도 사그라지고, 중국 본토에서 불상도 수입되면서 곤란을 겪고 있다. 현재는 다른 가게에서 만든 불상을 수선하고 교정하는 서비스도 한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음식남녀>,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등의 감독으로 유명한 리안[李安, 1954~ ]이 영화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라는 취안메이시위안[全美戱院], 백 년 전 방식으로 수제 향(香)을 만드는 우완춘상푸[吳萬春香?], 아연생활용품을 제작하는 룽싱야첸덴[隆興亞鉛店], 결혼 축하예물로 쓰이는 시장[喜?]을 만드는 진위안룽시장[錦源榮喜?], 3대째 내려오는 나막신 가게인 전싱세항[振行鞋行] 등 다양한 노포들의 모습에서 교토처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타이난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시간과 함께 달리는 기록들

 

저자는 “오래된 가게들에 대한 생각을 글로 표현해 보려고 관찰한 사실에서 감동받은 내용을 단편적으로 묘사하거나, 그림으로는 전달할 수 없었던 감정을 글로 적어 보았다. 여행하면서 스케치하는 방식으로 고향의 오래된 가게를 그린 다음, 여행자의 눈길로, 여행지의 가게를 방문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 [p. 6]고 한다.

 

저자가 오래된 가게를 기록하는 도구들

출처: <타이난 골목 노포 산책>, pp. 14~15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면,

낯선 가게에 들어가게 되면 보통은 내가 미리 준비해 둔 말을 꺼낸다. 오래된 가게의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림을 그려 화첩에 소장하고 싶다고. 사연을 모르는 가게 주인들은 우선 내가 왜 자신의 가게를 그리는지 궁금해했고, 이어서 의자를 하나 끌어당겨서 내게 앉으라고 권한다. 때로는 목을 축이라고 차를 한 잔 따라 주거나 하면, 그림을 그리면서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들이 가게 업무를 보다가 내가 뭘 그리는지 잠깐씩 보러 오면 함께 잡담을 나누다 다시 서로의 일에 집중하곤 했다. 스케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장님은 외부인인 내가 아직 가게에 있다는 걸 깜빡 잊고는 부인과 농담을 하거나 말다툼을 하는 진솔한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었다. 이웃들과 수다를 떨고, 심지어는 온 가족들이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따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런 현장 경험들은 아주 재미있었다. 취재하면서 맞이하는 최고의 순간은 바로 가게의 역사나 오래된 물건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을 때였다. 오래된 가게의 매력은 바로 세월이 흐르면서 층층이 쌓인 이야기들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리고 사장님들의 입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 시대에 속했던 옛 맛을 그려 낼 수 있다.” [pp. 6~7]

 

저자가 이 책을 펴내는 데 3년 이상 걸렸다는데, 많은 사장님들이 연세가 많으셔서 그 사이에 전파차항[振發茶行]의 4대 사장인 옌찬청[嚴燦成]처럼 세상을 떠난 분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결국 노포의 지속 가능성은 ‘사람’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저자도 “오래된 가게들을 방문하는 건 정말 ‘시간’과 함께 달린 기록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p. 7]고 말한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