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 한강의 베스트 송 모음

 

소설가 한강은 몇 차례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적이 있다그때마다 나지막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어울리는 단아한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무엇인가 결핍된 인물들 때문에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정확한 실체는 모르겠지만그녀가 창조한 인물예를 들면 <채식주의자>의 영혜나 <희랍어시간>의 주인공들인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등이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어쩌면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자신을 일부라도 투영(投影)한다는 말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작품 속 등장인물 간의 유사성을 찾고괴리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한때 내가 그녀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활동하면서 엮은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2007)를 찾아본 이유가 아닐까책 소개에 따르면노래에 담긴 그리운 지난 시절의 기억을 되돌아본다고 하니 뭔가 좀더 감상적인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또 그녀가 직접 만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른 10곡의 노래가 궁금하기도 했다불행히도 2010년대 초반에야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종로에 있는 대형 서점 몇 곳을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당연히 절판이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우연히 들린 대형서점에서 한강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보고집에 돌아와 주문을 했다시는 시인의 영혼을 담아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했었고이 시집이 그녀가 20여 년간 여덟 권의 소설 단행본을 출간하는 틈틈이 쓰고 발표한 시들 가운데 60편을 추려 엮은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어떻게 보면 그녀의 베스트 송 모음집인 셈이다.

 

 

소리도빛도 없는 어둠을 넘어

 

새벽에 들은 노래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봄은 봄

숨은 숨

넋은 넋

나는 입술을 다문다

 

어디까지 번져가는 거야?

어디까지 스며드는 거야?

기다려봐야지

틈이 닫히면 입술을 열어야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지

다시는

이제 다시는 [pp. 12~13]

 

이 시는 혹시 <희랍어 시간>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일까?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희랍어 시간>의 남자처럼 시력을 잃어가는 것을혀가 녹지 않아 입술을 닫은 것은 같은 책의 여자처럼 모국어를 말할 수 없는 것을 각각 그린 것이 아닐까?

혹시 <희랍어 시간>과 아무 상관 없다면 왜 시인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저녁의 소묘 4

 

잊지 않았다.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건

부스러질 것들

 

부스러질 혀와 입술,

따뜻한 두 주먹

 

부스러질 맑은 두 눈으로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가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는 걸 지켜본다

 

무엇인가

반짝인다

 

반짝일 때까지 [p. 85]

 

시인은 왜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것이 부스러질 것들이라고 했을까이 또한 소설에서처럼 결핍을 나타내기 위해서일까? ‘부스러진 것이 아닌 부스러질 것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마치 죽음으로 가는 길을 암시하기 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라는 제목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왜 저녁일까’ 였다서랍이 무엇인가를 넣어 두는 수납공간인 것은 맞는데아침도점심도 아닌 저녁을 넣어 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결국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새벽에 들은 노래’, ‘피 흐르는 눈’, ‘저녁의 소묘’, ‘거울 저편의 겨울’. 이 시집에서 실린 연작 시()들의 제목들이다뭔가 검은 아우라(Aura)가 살짝 어른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제목들이다뭔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물론 이 책에 실린 시()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시()는 읽기 어렵다고등학교 국어시간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분석해보려는 마음 때문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