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겁자다. 일신의 편리와 말초감각의 만족을 너무 사랑한다. 정의와 대의보다도. 아마 여러 비겁 중에서도 나의 것이 가장 나쁠 것이다. 필요성과 타당성을 모두 이해하고도 뒤돌아서서 변명을 중얼거리며 주저한다는 점에서.
이런 종류의 죄책감은 여러 분야에서 불쑥불쑥 등장한다. 자꾸 반복된다. 기후위기, 동물복지, 노동자, 장애인, 여성, ... 전부 약하디 약한 것들이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이쪽저쪽 휙휙 고개를 돌리다보면 어느새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하나하나가 전부 시급하고 절박하다. 내 삶도 버거운 사람은 어찌해야 하나.
열렬히 행동하지는 못하고 간신히 한 두번 악행을 줄여본다. 충분치 않다.
불편하게 만드는 책을 자꾸 들춰본다. 충분치 않다.
조금 생긴 가욋돈을 기부해 본다. 충분치 않다.
오늘 내가 누린 것들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충분치 않다.
충분치는 않아도 아주 눈 감지는 않는 것, 그럼에도 계속 지켜보는 것. 일상을 살아내는 것도 벅찬 날이 많은 비겁자는 오늘도 변명조로 웅얼거며 자꾸 감기는 눈을 비벼본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을 또 펼친다. 충분치는 않아도, 비겁자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 외면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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