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하는 분야가 있다. 가까이하고 싶지만 쉽게 다가기 어렵게 느껴지는 것들. 그런 분야를 잘 다뤄주는 작가에게 쉽게 빠지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철학자 강신주의 책도 그렇다. 그의 이야기에는 철학이 있고, 시가 있고, 영화가 있고, 일상이 있다.
작가의 강의나 책을 보면 일상의 문제들과 철학은 생각보다 가깝다. 소외와 자본주의의 문제, 내가 잘 포장해 숨겨 놓은 욕망들까지 철학으로 풀어낸다.
이번 책에서도, 팬데믹과 언텍트, 4차산업혁명, 아동학대, MZ세대의 보수성, 동성애, 페미니즘 같은 시의성있는 문제들을 다룬다. 벤야민, 마르크스, 신동엽시인, 스피노자, 프루스트, 이상, 파스칼 등의 담론으로. 그들의 고담준론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지금 살아내고 있는 나의 문제여서 그럴수도, 인터뷰 형식의 문어체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신동엽이 묻고 있는 거예요. 맑게 갠 푸른 하늘을본 적이 있는가. 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왜 굴종을 하느냐. 왜명령을 듣고 ‘상전‘의 말을 듣느냐는 거예요.˝-35p
˝파스칼의 <팡세>는 굉장히 재미있어요. 앞부분은 철저하게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요.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도 아니고, 그저 허영 덩어리라는 거죠. 인간을 이성적인 사유주체로 봤던 데카르트와는 반대였어요.˝-101p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 라고 했어요. 내 노동력과 내 몸을 팔아야 되니까.˝ -175p
스피노자 Baruch Spinoza, 1632~1677의 말에따르면 ˝어차피 우리는 신이 아니거든요. 다른 외적인 것, 타자적인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자족성이 없다는 말이에요.˝-208p
생각지도 못한 지적,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일들이 깨지면서 놀란 부분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세월호. 세월호를 보면서 몇몇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었고, 왜 아직도 속 시원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었는데, 이에 대한 충격적이면서 이해되는 답을 본 듯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인용하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박근혜 탄핵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박근혜에 분노했던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요?˝-264p
˝애초에 세월호라는 배가 운항할 수 없었어야죠. 세월호로 상징되는 자본이 이득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허락하는 이상, 누구나세월호 참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어요.˝-248p
예전에 비해 독기가 많이 빠진, 너그러워진 철학자. 그의 나무그늘이 되고싶다는 말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예전 책에서 날카롭던 어투가 좀 더 너그러워지지 않았는지...
아직도 완독하지 못해 책장 앞을 지날때마다 외면하게 되는 그의 책, 철학vs철학. 읽어야겠다고, 그가 풀어내는 철학을 읽어보자고 다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