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스 레인코트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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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아무래도 로버트 크레이스 작가의 팬이 된 모양이다. 지금까지 아마 세 권의 그가 쓴 미스터리를 읽었는데 작가의 데뷔작인 <몽키스 레인코트>를 읽고 판가름이 나 버렸다. 지난 주에 신간 <서스펙트>를 읽고 나서, 2월달에 사두었던 <몽키스 레인코트>를 읽기 시작했다. 정말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도 마다하고 이 책부터 다 읽게 됐다 어젯밤에. 새벽까지 책을 읽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더 재미에 가속도가 붙어서 도저히 고만 읽을 수가 없더라.

 

자칭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설 탐정이라고 자부하는 전직 육군 특수부대 출신 엘비스 콜과 전직 경찰이자 묵묵하기로 소문난 남자 조 파이크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평가하고 싶다. 아무래도 할리우드 바닥에서 극본가로 다년간 활동한 경험이 놀라운 데뷔작의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로버트 크레이스가 구사하는 문장은 간결하다. 그건 마치 한 편의 텔레비전 범죄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당연히 속도감도 탑재되어 있다. 다만 첫 소설이니 만큼 세련된 점이 아쉽긴 한데, 그런 점들은 후속작에서 개선되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자, 이제 본격적인 <몽키스 레인코트>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 올해 35세의 주인공 엘비스 콜은 39세 전업주부 엘렌 랭의 사건 의뢰를 받는다. 경찰이 개입되는 건 싫으니, 우리와는 달리 사설 탐정 서비스가 공인된 미국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비용이 든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사건 수수료는 별도의 청구를 빼고 2,000달러. 30년 전의 물가를 고려한다면 적은 돈은 아닌 것 같다. 엘렌 랭은 실종된 자신의 남편 모트와 9살난 아들 페리를 찾아 달라고 한다.

 

사건 초반에는 할리우드에서 제작자로 활동하던 바람난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잠적한 단순 사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능한 탐정 엘비스 콜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수록 쉽지 않은 미션이라는 점이 속속 들어난다. 모트가 지역에서 투우사 출신의 이름난 범죄조직 두목인 돔(도밍고) 가르시아 두란이 아끼는 마약을 훔쳐 달아났다고 추정된다. 두란 패밀리는 잃어버린 마약을 찾기 위해 랭 씨네 집을 뒤집어엎고, 아이를 납치하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놈들이다. 미스터 두란에게 끌려간 엘비스 콜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마약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당한다. 이거 점점 이야기가 꼬이기 시작하는걸. 천하의 엘비스도 거물 범죄조직을 상대하기가 버거워 보인다. 신뢰하는 동료 조 파이크도 등장하지만, 쉽지 않은 대결이 전개된다. 물론 그 와중에 두 건의 로맨스인 듯, 로맨스 같지 않은 메이크아웃(make out)도 거칠게 등장한다. 이런 부분이 약간 세련되지 않은 부분이라고 해야 할까.

 

경찰의 도움 따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두 마리의 외로운 늑대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는 나름의 무장을 갖추고, 할리우드 람보 스타일로 두란 패밀리와의 최후의 대결에 나선다.

 

무엇이 30년 전의 <몽키스 레인코트>가 지금도 여전히 흥미진진한 소설적 아우라를 풍기게 만들었을까. 우선 현재 진행형인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듀오의 끈쩍한 브로맨스가 그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엘비스 콜이 시니컬한 유머를 담당하고 있다면, 그 반대에서 조 파이크는 침묵 가운데 동료와 그의 의뢰인을 호위하고 거친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둘은 불사신 같은 존재들이 아니다. 때로는 범죄조직원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하고, 부러지고 깨지고를 반복한다. 심지어 최후의 대결에서 조 파이크는 총에 맞기도 하지 않던가. 그들도 인간이기에 압도적인 병력 차이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신념대로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다.

 

그렇다고 해서 엘비스 콜이 막무가내인 것만은 아니라고 로버트 크레이스 작가는 매력적인 엘렌의 친구 재닛 그리고 엘렌과 차례로 관계를 갖는 장면으로 이에 대해 항변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들이 좀 소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뭐 30년 전에는 의뢰인과의 로맨스가 그런대로 받아 들여졌나 싶기도 하다. 지금은 아무도 모를 (존 쿠거) 멜런캠프의 이름이 소설에 등장하는 순간, 아 나도 옛날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멜런캠프와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이 한 시대를 상징하는 미국 문화 아이콘을 절묘하게 다루는 점에서 로버트 크레이스가 대중들의 코드를 잘 읽는 작가라는 점을 엿볼 수가 있었다.

 

내가 다음에 만나보고 싶은 엘비스 콜/조 파이크의 작품은 바로 <L.A. 레퀴엠>이다. 이 책은 아무래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지 않을까 싶다. 아, 참고로 이 걸출한 소설의 제목 <몽키스 레인코트>는 바쇼의 하이쿠에 나오는 ‘원숭이도 도롱이가 필요하다’는 싯구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여전히 소설의 어떤 내용과 문맥이 맞아 떨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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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3-21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고 엘비스 콜 보다 조 파이크가 좋았어요.
뭐랄까, 인간적인 따스함~^^

레삭매냐 2018-03-21 20:11   좋아요 0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

어쩜 이렇게 멋들어진 콤비를 만들어내
울궈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조 파이크 단독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
도 있다고 하네요. 도서관에서 급하게
<라 레퀴엠> 빌려 왔는데 먼저 읽어야
하는 책 때문에 후순위로 밀려 버렸네요...
 
서스펙트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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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다. 다른 말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지난 1월달에 <마지막 탐정>으로 로버트 크레이스의 작품과 두 번째로 만났는데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듀엣과는 또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는 <서스펙트>는 정말 대단했다. 아무래도 이 작가의 팬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이미 그의 데뷔작인 <몽키스 레인코트>도 수배해 두었는데 시간이 나는 대로 읽을 계획이다.

 

소설은 로버트 크레이스가 주로 활동하는 미국 LA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된다. 소설 지분의 절반을 차지하는 저먼 셰퍼드 매기와 그의 무리이자 알파였던 피트가 급조 폭발물(IED)로 크게 다치고 죽는 장면으로 프롤로그의 시작을 알린다. 그 다음에는 LA의 모처에서 순찰 중이던 주인공 스콧 제임스 순경과 그의 파트너 스테파니 앤더스가 다섯 명의 괴한들의 총격을 받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총기의 천국 미국이 도대체 총기규제에 나서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늘도 학교에서 교사가 총기에 대한 안전교육을 하던 중에 오발 사고로 수업 참관 중이던 학생의 목에 총탄이 박히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지 않은가. 이런 사고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바라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AK-47까지 동원한 무시무시한 총격으로 파트너를 잃은 스콧 제임스는 극복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지독한 PTSD에 시달린다. 밤마다 악몽을 꾸는 건 물론이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으로 죽어간 파트너 스테파니에 대한 생각 때문에 총격 때문에 입은 부상으로 후유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LAPD 경찰직을 그만 두는 대신, 스콧은 LAPD 산하 K-9에 배속되어 도미닉 릴랜드 경사 휘하에서 경찰견을 다루는 핸들러 임무에 자원한다. 그렇게 스콧과 매기는 훈련장에서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믿음이 가지 않는 존재들(suspect)이 뭉친 것이다.

 

생전 개를 키워 보지 않은 스콧은 처음부터 릴랜드의 마음에 전혀 안드는 고집센 개자식(!!!)이었지만 매기와 함께 24시간을 보내면서 차츰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된다. 아마 그건 상대방인 매기에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자신의 사건을 맡았던 멜론 형사와의 불화로 사건에서 배제된 스콧은 멜론 형사가 은퇴한 다음, 새로 사건을 맡은 버드 오르소 형사 그리고 조이스 카울리 형사와 팀을 이루면서 과거의 기억 속에 잠재된 희미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숨겨진 사건의 전모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사실 소설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어쩌면 밋밋해 보인다. 아무런 단서도, 목격자도 없는 사건을 매기의 후각만에 의지해서 실낱 같은 단서들을 기초로 해서 세운 희박한 재구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경찰이었던 스콧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두 번 다시 파트너를 져버려서는 안된다는 자신과의 약속, 매기와의 짠한 관계 형성을 통해 그녀의 알파가 된 스콧에게 매기는 그야말로 충성을 다한다. 알파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안위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로버트 크레이스는 단순하게 복잡해 보이는 사건을 풀어 나가는 데만 신경을 쓴 게 아니라, 공통적으로 상실이라는 PTSD를 지닌 인간과 개의 상화작용을 내러티브에 녹여 내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K-9에서 신출내기로 상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초짜 경관에서 스콧이 배짱 두둑한 개자식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일종의 통과의례라고나 할까. 내부 배신 때문에 누구를 믿어야 하고, 믿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도 하나의 클리셰이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상적이었다. 후반에 자신의 사건을 맡았던 멜론 형사를 찾아가 사과하는 장면도 사나이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의 모습이 아닐까.

 

스콧이 파고든 사건의 이면에는 국제적 다이아몬드 밀수의 실체가 숨어 있었고, 이제는 충격적일 것도 없는 내부자들의 고약한 모의의 존재였다. 내부의 악당들은 스콧이 꽂는 표적마다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과연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예상과 추측으로 흥분되기 시작한다. 이 양반, 확실하게 재밌는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말 부분에 포진한 마지막 대결은 정말 최고였다. 독자를 점층적으로 클라이맥스로 모든 신경을 몰입하게 만든 다음, 한 방에 해결하는 수완은 정말 대단했다. 미스터리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하는 게 아닌가.

 

사나이는 그의 파트너를 죽게 놔두지 않는 법이다 (417쪽)

 

넷플릭스나 훌루에서 로버트 크레이스의 이런 이야기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물론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의 뒷면에 나온 대로 로버트 크레이스가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라는 데이비드 발다치의 의견에 격하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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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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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슬럼프에 빠졌다. 지난달에 숱한 SF소설들을 읽은 후유증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 저 책 읽기 시작했지만 미처 끝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재밌고, 속도감나는 그런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주에 주워온 책장에 스택한 책 중에 커트 보네거트의 <마더 나이트>가 눈에 띄었다. 그렇지 바로 이 책이야. 개인적으로 나는 커트 보네거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5도살장>보다도 이 책을 더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오, 이럴 수가! 내가 커트 보네거트 작품 중에 단연 최고로 꼽는 <마더 나이트>가 이미 20년도 전(1996년 제작)에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바로 유투브로 트레일러를 검색해 보았다. 닉 놀티가 주인공 하워드 W. 캠벨 주니어 역할을 맡아 열연을 보여 주었다. 반드시 구해서 봐야겠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미국 출신 하워드 W. 캠벨 주니어는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의 라디오 선전원으로 직속상관인 선전상 파울 괴벨스 박사가 경탄할 정도로 놀라운 수완을 발휘했다. 하지만 베를린 경찰총수의 딸 헬가 노트와 결혼해서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과 유태인 증오가(Jew Hater)로서 나치 프로파간다의 첨병이었던 하워드 W. 캠벨 주니어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놀라운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미국의 스파이였다는 사실이다. 이거 그야말로 놀랄 노자군! 문제는 프랭크 위르타넨과 로젠펠트 대통령 말고는 그가 미국의 스파이였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쨌든 전쟁 중에 사랑하는 아내 헬가를 크림반도 전투에서 잃고, 가증스러운 전범 신세가 되어 쫓기던 하워드 W. 캠벨 주니어는 푸른 요정 대모를 자처하는 자신의 상관 프랭크 위르타넨의 도움으로 뉴욕에 잠입해서 커다란 불편함 없이 살아왔다. 돌아가신 부모가 남겨 주신 유산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풍족하게 살면서. 한때 그의 동료들이었던 나치 전범들이 주로 남미 각국에서 신생국 이스라엘 모사드의 추적을 받으며 언제 납치되어 이스라엘로 송환될 걱정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커트 보네거트가 구사하는 블랙유머는 그렇게 단순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아내 헬가가 십수년 전의 외모 그대로 나타나 하워드 W. 캠벨 주니어를 놀라게 만든다. 자신이 나치 선전원 시절에 발표한 소중한 원고들이 가득들은 트렁크까지 선물로 가지고 말이다. 자신이 정말 진실한 친구라고 믿는 체스 파트너이자 화가 조지 크래프트의 정체는 소련 첩보원 이오나 포타포프 대령이란다. 하워드 W. 캠벨 주니어의 주변에는 전쟁 중에 그가 한 행동이야말로 정말 애국적인 행동이라고 부추기는 파시스트 전우들이 득시글거린다. 유색인종과 유태인이 득세해서 점점 아리안 민족의 도덕성이 타락한다며 걱정하는 파시스트 일당은 미국의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철위대를 만들어 하워드 W. 캠벨 주니어에게 연설까지 맡길 정도다. 블랙유머로 다루어지긴 했지만, 소설 <마더 나이트>가 발표된 1961년에도 대략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있었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헛웃음이 펑펑 터져나왔다. 하긴 2018년에도 여전히 기승을 벌이고 있는 가짜뉴스 덕분에 오늘 하루도 쓴웃음이 가시지 않으니.

 

소설이 쓰인 시점에서 16년 밖에 지나지 않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생각에서도 작가는 양가적인 입장을 모두 보여준다. 하워드 W. 캠벨 주니어가 은둔한 나치 전범이라는 사실을 알려진 뒤, 그가 살던 아파트는 엉망진창이 된다. 물리적인 테러를 당한 그를 보살펴 주는 사람이 바로 어린 시절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닥터 엡스타인이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인간이 처할 수밖에 없는 삶의 역설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 닥터 엡스타인은 과거를 뒤로 하고 미래를 생각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아우슈비츠에서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자신을 죽음 일보 직전까지 몰아넣은 나치들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증오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그 점이야말로 정말 커트 보네거트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한편 하워드 W. 캠벨 주니어는 자신이 전쟁 중에 한 행동 때문인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이들에게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거의 도인이 된 모양이다.

 

죽음에서 부활해서 당당하게 나타난 아내 헬가(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녀는 처제 레지 노트였다)가 죽고, 크래프트 역시 연방교도소로 가면서 그의 선택지는 선배 아돌프 아이히만이 잡혀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으로 좁혀진다. 물론 그 와중에 냉전의 와중에, 소련 첩보원의 공작으로 전쟁 중에 그렇게 파렴치한 행동을 한 나치 전범을 미국이 숨겨 두고 있다라는 프로파간다에 이용될 뻔한 위기도 맞게 된다. 물론 푸른 요정 대모의 신속한 개입으로 모스크바로 납치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어때 이 정도면 정말 파란만장한 삶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겉으로 드러난 하워드 W. 캠벨 주니어의 모습은 전형적인 신념에 찬 나치 전범의 그것과 다를 게 전혀 없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수많은 나치 전범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채로 사형당했다. 우스꽝스러운 설정이긴 하지만, 하워드 W. 캠벨 주니어는 전쟁 기간 동안 베를린에서 나치 선전의 나팔수로 활약한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진짜 조국 미국을 위한 스파이 활동에 지나지 않았노라고 강변하면서,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구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나치 친위대(SS:Schutzstaffel)에 복무한 수많은 독일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후자가 총칼로 나치가 점령한 지역에서 숱한 학살과 만행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수행했다면, 하워드 W. 캠벨 주니어는 쌍번개(SS)를 가볍게 타이핑할 수 있게 고안된 타이프라이터로 어느 누구도 그가 나치 전범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 선전전을 수행하지 않았던가.

 

 

전쟁에 직접 참가해서 포로가 되어 드레스덴 폭격을 체험하면서, 선지자 커트 보네거트는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극단적 폭력의 와중에 악과 증오의 본질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명의 전쟁포로 출신 청년은 훗날 소설가로 변신해서, 블랙유머로 무장한 시니컬한 반전 메시지를 창조해냈다. <마더 나이트>는 정말 재밌으면서도, 유쾌하고 동시에 진지한 사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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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13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외출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어요. 읽어야 할 책들은 너무 많은데, 책이 눈에 안 들어오네요.. ^^

레삭매냐 2018-03-13 14:25   좋아요 0 | URL
날이 너무 좋더라구요 -
읽을 책들은 정말 많은데 생각처럼 진도가 쫙쫙
나가지 않아서 예전에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네요. 재밌습니다.
 
노인의 전쟁 샘터 외국소설선 1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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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보면 지난 달에 정말 SF작품들을 많이 읽었다. 지난달에 사서 읽기 시작한 존 스칼지의 데뷔작 <노인의 전쟁>(2005년 출간)도 같은 연장선에 서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잠시 외도를 한 끝에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해서 오늘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 서문에서 만난 존 스칼지는 역시 지난 세기의 SF 미스터리의 대가 조 홀드먼과 로버트 A. 하인라인의 후계자로 부르기에 유감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75세의 나이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우주개척방위군(Colonial Defense Forces:CDF)에 자원입대해서, 지구인들이 외계에 개척한 식민지를 침공하는 외계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과정을 그린 것이 <노인의 전쟁>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자 그런데, 이십대의 팔팔한 청춘도 아니고 75세의 노인들로 된 늙다리 군대가 우주 정복에 나선다?

 

핵심은 바로 유전자 첨단기술의 경이적인 발전에 힘입어, 자원입대한 노인들의 의식을 새로 구성된 DNA 복제된 육체에 이식해서 정예 CDF 병사들로 만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2년 복무기간이라고 하지만 10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는 것과 그동안 죽는 비율이 자그마치 3/4에 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육신을 얻어 그동안 체험해 보지 못한 신세계로 인도한다는 CDF의 유혹에 많은 수의 노인들이 주저 없이 입대를 선택한다.

 

9년 전 사랑하는 아내 캐시와 사별한 전직 광고 카피라이터 조 페리 역시 우주개척방위군의 일원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를 우주로 향한다. 늙은방귀쟁이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입대동기생 7인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난 육신을 가지고 고된 훈련을 이겨낸 우리의 정예 노인 병사들은 바로 전장에 투입된다. 뭐 여기까지가 소설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콘수, 르레이 같이 생소한 이름의 지구인과 엇비슷한 기술을 가진 외계 종족과의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숱한 전투를 통해 단련된 CDF 병사들은 전장의 소모품으로 수없이 쓰러지고, 지구에서 보급되어 전장터에 투입된다. 존 스칼지는 이병으로 투입된 전직 상원의원 벤더의 입을 빌려 왜 외교협상 대신 오로지 전쟁이라는 방식의 폭력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과연 그것이 상호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일 것이다.

 

살인기계로 거듭난 우주방위개척군 요원들은 개척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종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고작 3cm 사이즈의 코반두들을 거대괴수 고질라처럼 짓밟는 학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주인공 존 페리는 문명인으로서 필연적으로 겪는 갈등을 체험할 수밖에 없다. 페리는 인간을 별미로 삼는 르레이족과의 치열한 코랄 행성 전투에 참가해서 9년 전에 죽은 아내 캐시의 도움으로 단신으로 살아남아 복귀한다. 존 스칼지 작가는 <노인의 전쟁>의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유령 여단> 소속으로 페리의 아내 캐시/제인 세이건을 등장시키면서 시리즈의 출발에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포석도 빼놓지 않는다. 정말 영리한 작가로군.

 

르레이족이 콘수족으로부터 전수 받은 도약기술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콘수족 대 인간으로 구성된 5:5 맞짱 대결도 흥미로웠다. 이런 장면들을 영화화한다면 어떨지 문득 궁금해졌다. 50년 전의 모습보다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초록색의 노인 병사들이 전장을 누비면서 식인 외계인들과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이라, 상상만 해도 흥미롭지 않은가. 뇌도우미(BrainPal)의 도움으로 상호교신한다는 설정도 대단히 흥미롭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고함으로 의사전달한다는 게 우주전쟁에서 가능할까? 나노봇을 동원해서 전투 중에 부상당한 상처를 치유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활용한다는 구상도 주목할 만하다. 한 마디로 말해 21세기 테크놀로지를 총동원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조 홀드먼 수준의 반전 메시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락적 요소와 도대체 왜 인간은 전쟁이라는 방식을 선호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2011년에 파라마운트에서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대신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강자로 부상한 넷플릭스가 만들 예정이라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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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소년
오타 아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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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어느 재벌 회장의 항소심 판결로 나라가 다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주심을 맡은 판사는 어느 보수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백성’이 자신의 원대한 뜻을 모른다며 아마 핀잔을 주었지.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판결 때문에 한동안 정신줄을 제대로 잡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23년 전, 실종된 13세 소년을 찾아 나서면서 벌어지는 일본 사법계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짚어낸 정통 사회파 스릴러 <잊혀진 아이>의 작가 오타 아이가 이 뇌물사건을 소설로 다룬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 미즈사와 가나에가 삼류흥신소 직원에게 23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 나오를 찾아 달라는 사건 의뢰로 소설은 시작된다. 아니 도대체 왜 23년이나 지난 지금에 왜? 물론 흥신소장 야리미즈 나나오는 가나에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다. 자그마치 삼백만엔이나 되는 거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결국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돈이었다.

 

나나오는 대학시절 동창이자 진다이 서의 강직한 경찰 소마 료스케(그는 23년 전 사라진 나오의 여름친구였다) 그리고 자신의 수하 시게토 슈지와 함께 과거로의 여행에 나선다. 그리고 그들은 나오와 다쿠의 아버지 시바타니 데쓰오가 억울한 살인죄 누명을 쓰고 9년형을 받고 8년 동안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게다가 데쓰오는 자신이 진범이 아니고 억울하게 원조(冤罪)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사랑하는 아내 가나에와 아들들을 찾아 나섰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2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눈이 아름다운 초등학교 소녀 도키와 리사가 납치된다. 나나오들은 유괴 사건 현장에 남겨진 / / = I 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슬래시 슬래시 이퀄 버티컬 바라... 물론 오타 아이 저자는 소설의 후반에 파자로 구성된 비밀 암호는 진실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이 비밀 암호는 주인공 이름의 파자였다는 것이다. 일본어에 능숙하지 못한 어린 독자는 그저 작가가 진실을 알려줄 때까지 그저 묵묵하게 따라가는 수밖에.

 

다양한 장치들과 숨겨진 이야기들로 구성된 <잊혀진 소년>의 뒷배경에는 데쓰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 핵심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누들은 강을 건너기 전에, 누를 노리고 있는 악어에게 희생양으로 바칠 누를 제공했다고 했던가. 1과 10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적 메시지에는 데쓰오 사건 당시, 순전히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기소편의주의에 입각해서 사건의 수사를 맡은 형사, 기소와 구형을 맡은 검찰 그리고 최종 판결을 맡은 판사들이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형사사건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단기간에 사건을 종결짓기 위해 데쓰오에게 유리한 증인들의 진술 일체를 무시하고 강압적 수사로 일관해서 결국 데쓰오의 자백을 바탕으로 그를 범인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어디 기소편의주의와 수사관들의 강압적 수사가 일본에만 있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이 있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재심과정을 통해 피해자들을 구제하는데 성공할 수가 있었다. 오타 아이 작가는 텔레비전 각본가 출신답게,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파고드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500여 쪽에 달하는 책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

 

정말 소설을 읽다가 분통이 터지는 건, 그렇게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은 형사, 검사 그리고 판사 중에서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배심판사였던 박범계 의원은 자신이 내린 오심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지 않았던가.

 

물론 오타 아이 작가는 나오의 가족이 겪은 억울한 사건을 단순하게 그리고 있지만은 않다. 스릴러 소설에 안성맞춤인 복수라는 코드로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소수의 누를 희생해서라도 범법자들로부터 사회를 수호해야 한다는 최고검찰청 차장검사 출신 인사의 손녀 리사를 인질로 설정한다. 그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는 당시 배석판사의 아들로 그리고 은퇴를 앞둔 오카무라 다케히코를 수사책임자로 등장시키면서 갈등을 최고조로 달하게 만든다. 도대체 어떤 결론을 내려고 이렇게 내달리는 거지?

 

이 모든 복잡다단한 설정 밑에 철없던 시절, 모든 게 한 없이 즐겁기만 했던 소년 소마 료스케와 미즈사와 나오, 다쿠의 우정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어떻게 봐도 해피엔딩일 수 없을 이야기의 결말로 이 정도면 최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가 가진 사회의 부조리를 저격할 수 있는 능력의 오타 아이 같은 작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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