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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소년
오타 아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최근 어느 재벌 회장의 항소심 판결로 나라가 다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주심을 맡은 판사는 어느 보수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백성’이 자신의 원대한 뜻을 모른다며 아마 핀잔을 주었지.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판결 때문에 한동안 정신줄을 제대로 잡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23년 전, 실종된 13세 소년을 찾아 나서면서 벌어지는 일본 사법계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짚어낸 정통 사회파 스릴러 <잊혀진 아이>의 작가 오타 아이가 이 뇌물사건을 소설로 다룬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 미즈사와 가나에가 삼류흥신소 직원에게 23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 나오를 찾아 달라는 사건 의뢰로 소설은 시작된다. 아니 도대체 왜 23년이나 지난 지금에 왜? 물론 흥신소장 야리미즈 나나오는 가나에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다. 자그마치 삼백만엔이나 되는 거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결국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돈이었다.
나나오는 대학시절 동창이자 진다이 서의 강직한 경찰 소마 료스케(그는 23년 전 사라진 나오의 여름친구였다) 그리고 자신의 수하 시게토 슈지와 함께 과거로의 여행에 나선다. 그리고 그들은 나오와 다쿠의 아버지 시바타니 데쓰오가 억울한 살인죄 누명을 쓰고 9년형을 받고 8년 동안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게다가 데쓰오는 자신이 진범이 아니고 억울하게 원조(冤罪)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사랑하는 아내 가나에와 아들들을 찾아 나섰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2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눈이 아름다운 초등학교 소녀 도키와 리사가 납치된다. 나나오들은 유괴 사건 현장에 남겨진 / / = I 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슬래시 슬래시 이퀄 버티컬 바라... 물론 오타 아이 저자는 소설의 후반에 파자로 구성된 비밀 암호는 진실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이 비밀 암호는 주인공 이름의 파자였다는 것이다. 일본어에 능숙하지 못한 어린 독자는 그저 작가가 진실을 알려줄 때까지 그저 묵묵하게 따라가는 수밖에.
다양한 장치들과 숨겨진 이야기들로 구성된 <잊혀진 소년>의 뒷배경에는 데쓰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 핵심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누들은 강을 건너기 전에, 누를 노리고 있는 악어에게 희생양으로 바칠 누를 제공했다고 했던가. 1과 10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적 메시지에는 데쓰오 사건 당시, 순전히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기소편의주의에 입각해서 사건의 수사를 맡은 형사, 기소와 구형을 맡은 검찰 그리고 최종 판결을 맡은 판사들이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형사사건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단기간에 사건을 종결짓기 위해 데쓰오에게 유리한 증인들의 진술 일체를 무시하고 강압적 수사로 일관해서 결국 데쓰오의 자백을 바탕으로 그를 범인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어디 기소편의주의와 수사관들의 강압적 수사가 일본에만 있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이 있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재심과정을 통해 피해자들을 구제하는데 성공할 수가 있었다. 오타 아이 작가는 텔레비전 각본가 출신답게,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파고드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500여 쪽에 달하는 책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
정말 소설을 읽다가 분통이 터지는 건, 그렇게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은 형사, 검사 그리고 판사 중에서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배심판사였던 박범계 의원은 자신이 내린 오심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지 않았던가.
물론 오타 아이 작가는 나오의 가족이 겪은 억울한 사건을 단순하게 그리고 있지만은 않다. 스릴러 소설에 안성맞춤인 복수라는 코드로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소수의 누를 희생해서라도 범법자들로부터 사회를 수호해야 한다는 최고검찰청 차장검사 출신 인사의 손녀 리사를 인질로 설정한다. 그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는 당시 배석판사의 아들로 그리고 은퇴를 앞둔 오카무라 다케히코를 수사책임자로 등장시키면서 갈등을 최고조로 달하게 만든다. 도대체 어떤 결론을 내려고 이렇게 내달리는 거지?
이 모든 복잡다단한 설정 밑에 철없던 시절, 모든 게 한 없이 즐겁기만 했던 소년 소마 료스케와 미즈사와 나오, 다쿠의 우정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어떻게 봐도 해피엔딩일 수 없을 이야기의 결말로 이 정도면 최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가 가진 사회의 부조리를 저격할 수 있는 능력의 오타 아이 같은 작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