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펙트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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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다. 다른 말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지난 1월달에 <마지막 탐정>으로 로버트 크레이스의 작품과 두 번째로 만났는데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듀엣과는 또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는 <서스펙트>는 정말 대단했다. 아무래도 이 작가의 팬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이미 그의 데뷔작인 <몽키스 레인코트>도 수배해 두었는데 시간이 나는 대로 읽을 계획이다.

 

소설은 로버트 크레이스가 주로 활동하는 미국 LA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된다. 소설 지분의 절반을 차지하는 저먼 셰퍼드 매기와 그의 무리이자 알파였던 피트가 급조 폭발물(IED)로 크게 다치고 죽는 장면으로 프롤로그의 시작을 알린다. 그 다음에는 LA의 모처에서 순찰 중이던 주인공 스콧 제임스 순경과 그의 파트너 스테파니 앤더스가 다섯 명의 괴한들의 총격을 받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총기의 천국 미국이 도대체 총기규제에 나서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늘도 학교에서 교사가 총기에 대한 안전교육을 하던 중에 오발 사고로 수업 참관 중이던 학생의 목에 총탄이 박히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지 않은가. 이런 사고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바라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AK-47까지 동원한 무시무시한 총격으로 파트너를 잃은 스콧 제임스는 극복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지독한 PTSD에 시달린다. 밤마다 악몽을 꾸는 건 물론이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으로 죽어간 파트너 스테파니에 대한 생각 때문에 총격 때문에 입은 부상으로 후유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LAPD 경찰직을 그만 두는 대신, 스콧은 LAPD 산하 K-9에 배속되어 도미닉 릴랜드 경사 휘하에서 경찰견을 다루는 핸들러 임무에 자원한다. 그렇게 스콧과 매기는 훈련장에서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믿음이 가지 않는 존재들(suspect)이 뭉친 것이다.

 

생전 개를 키워 보지 않은 스콧은 처음부터 릴랜드의 마음에 전혀 안드는 고집센 개자식(!!!)이었지만 매기와 함께 24시간을 보내면서 차츰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된다. 아마 그건 상대방인 매기에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자신의 사건을 맡았던 멜론 형사와의 불화로 사건에서 배제된 스콧은 멜론 형사가 은퇴한 다음, 새로 사건을 맡은 버드 오르소 형사 그리고 조이스 카울리 형사와 팀을 이루면서 과거의 기억 속에 잠재된 희미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숨겨진 사건의 전모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사실 소설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어쩌면 밋밋해 보인다. 아무런 단서도, 목격자도 없는 사건을 매기의 후각만에 의지해서 실낱 같은 단서들을 기초로 해서 세운 희박한 재구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경찰이었던 스콧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두 번 다시 파트너를 져버려서는 안된다는 자신과의 약속, 매기와의 짠한 관계 형성을 통해 그녀의 알파가 된 스콧에게 매기는 그야말로 충성을 다한다. 알파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안위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로버트 크레이스는 단순하게 복잡해 보이는 사건을 풀어 나가는 데만 신경을 쓴 게 아니라, 공통적으로 상실이라는 PTSD를 지닌 인간과 개의 상화작용을 내러티브에 녹여 내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K-9에서 신출내기로 상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초짜 경관에서 스콧이 배짱 두둑한 개자식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일종의 통과의례라고나 할까. 내부 배신 때문에 누구를 믿어야 하고, 믿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도 하나의 클리셰이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상적이었다. 후반에 자신의 사건을 맡았던 멜론 형사를 찾아가 사과하는 장면도 사나이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의 모습이 아닐까.

 

스콧이 파고든 사건의 이면에는 국제적 다이아몬드 밀수의 실체가 숨어 있었고, 이제는 충격적일 것도 없는 내부자들의 고약한 모의의 존재였다. 내부의 악당들은 스콧이 꽂는 표적마다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과연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예상과 추측으로 흥분되기 시작한다. 이 양반, 확실하게 재밌는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말 부분에 포진한 마지막 대결은 정말 최고였다. 독자를 점층적으로 클라이맥스로 모든 신경을 몰입하게 만든 다음, 한 방에 해결하는 수완은 정말 대단했다. 미스터리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하는 게 아닌가.

 

사나이는 그의 파트너를 죽게 놔두지 않는 법이다 (417쪽)

 

넷플릭스나 훌루에서 로버트 크레이스의 이런 이야기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물론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의 뒷면에 나온 대로 로버트 크레이스가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라는 데이비드 발다치의 의견에 격하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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