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다른 곳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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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신문의 칼럼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초기작, 대표작 그리고 최근작을 읽는 것이 첩경이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거의 반세기 동안 꾸준하게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위의 공식에 요사 선생의 작품 세계를 대입해 보면, 초기작으로는 <녹색의 집>, 대표작으로는 <세상 종말 전쟁>과 <염소의 축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작으로 바로 이제부터 소개할 <천국은 다른 곳에>를 꼽을 수가 있겠다.

우선 그동안 꾸준하게 우리나라에 소개되어왔지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더불어 남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도 대중적인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미출간 작품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해서 다투어 소개되고 있다. 물론 그의 팬으로서 반가운 소식이다. <천국은 다른 곳에>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국내에서 가장 빨리 요사 선생의 신간으로 출간되었기에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바로 주문 클릭을 눌렀다.

전작 <염소의 축제>에서 선보였던 서로 다른 층위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스토리텔링에 플래시백을 추가한 서사 구조는 <천국은 다른 곳에>서 단순해졌지만, 더욱 정교해진 형식으로 집중력을 높였다. 리얼리즘과 허구(픽션)의 조화 역시 인상적이었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한 ‘평전 소설’의 재미와 감칠맛은 여전하다. 아마 번역을 맡은 역자 김현철 씨의 문학적 체화가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 요사 선생의 부름을 받은 역사 인물은 바로 19세기 중엽, 여성해방운동과 노동조합 운동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제창했던 플로라 트리스탄과 그녀의 외손자로 화성(畵聖)으로 추앙받는 고흐와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서 한 때 이상적 예술 공동체를 꿈꾸다가 야만과 원시 그대로의 예술혼을 불사르기 위해 폴리네시아 타히티로 갔던 외젠 앙리 폴 “코케” 고갱이다.

<염소의 축제>에 주인공 중의 한 명으로 등장한 상원의원의 딸이자 미국에서 교육받은 엘리트 여성의 한계에 대한 비평을 의식한 탓일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전작에 등장한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에서 한참 앞서나간 여성운동가 플로라 트리스탄을 <천국은 다른 곳에>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19세기 중반 급격한 산업화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플로라는 노동자와 여성의 연대를 통한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던진다. 부르주아 계급의 귀부인을 “아리따운 기생충”이라고 부르며 플로라는 인류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경찰과 종교계의 지속적인 탄압에도 프랑스 전역을 순례하면서 <노동조합> 설립을 통한 노동자/여성의 권익 신장과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자고 주장한다. 작가는 1844년이라는 플로라의 인생 마지막 해의 강렬했던 투쟁에, 신산한 개인의 삶을 플래시백으로 다루고 있다.

여자 메시아 플로라 트리스탄의 이야기가 <천국은 다른 곳에>의 한 축이라고 한다면 그녀의 외손자로 전 세계를 누비던 선원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유능한 주식 중개인에서 중년에 전업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폴 ‘코케’ 고갱이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다. <천국은 다른 곳에>는 이렇게 플로라 트리스탄과 폴 고갱에 대한 교차 서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별개의 소설로 읽더라도 무난한 정도의 개별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치과 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에서 나름대로 ‘천국’을 지향했던 인물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상상력이라는 물감으로 재창조해낸 문학적 초상화다.

플로라와 코케 모두 어쩌면 자신이 편입되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었던 부르주아 계급의 허위와 위선을 배격하고, 각각의 분야에서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캐릭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에릭 홉스봄의 원서강독을 하면서 들었던 공상적 사회주의자 생시몽-푸리에-프루동의 이름이 먼지 쌓인 기억의 창고에서 주술처럼 그렇게 소환됐다. 샤를 푸리에와 로버트 오언의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사유재산제의 부정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플로라는 기존의 결혼제도를 여성의 남성에 대한 구조적인 종속이라는 악의 근원으로 보고, 완벽한 남녀평등을 주창한다. 당시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착취와 불평등이라는 시대모순에 대한 새로운 인식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과 실천이라는 서사적 논거를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양심은 정확하게 짚어낸다.

플로라 트리스탄의 삶이 냉정함을 담보한다면, 그 대척점에는 열정의 사나이 폴 고갱이 서 있다. 고갱의 파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미친 네덜란드 놈”에 대한 언급에서는 이 화성에 대한 애증과 그의 죽음에 대한 고갱의 죄의식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갱의 할머니 플로라가 이상적 공동사회에 대한 꿈을 꿨다면, 고갱은 예술 공동체로서의 아르카디아(Arcadia)의 건설을 희망했다. 하지만, 화성은 정신병으로 비참한 최후를 마쳤고, 고갱은 야성과 문명을 허물기 위해 폴리네시아의 타히티로 또 더 나아가 마르키즈 제도에까지 도달했지만 끝내 자본에 종속된 화가의 숙명(마몬 신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한편, 기독교 문명인의 허울을 벗고 스스로 야만인/이방인이 되고자 한 고갱의 모습에서 1990년대 초반 페루 대선에서 후지모리에게 패한 후, 조국 페루를 떠나 스페인 국적을 취득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얼터 이고(alter ego)가 읽혔다.

<천국은 다른 곳에>는 과거 역사 서술의 ‘마스터’라고 할 수 있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후기 작품세계의 걸작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정치와 예술의 변증법적 결합을 통해 ‘천국’이라는 이상향을 모색한 거장의 문향에 그만 흠뻑 취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세상 종말 전쟁>에 도전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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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노벨문학상의 위력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루마니아계 독일작가 헤르타 뮐러의 경우에는 그동안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단독 작품이 없어서, 그녀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 몇 달을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루계 스페인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원래 페루 아레키파 태생이지만, 후지모리와의 대선에서 패배한 후 스페인 국적을 취득했다고 한다)의 경우에는 기존에 소개된 책들이 있어서 헤르타 뮐러 같은 갈증은 겪지 않아도 됐다. 물론 전작은 아니지만 <세상 종말 전쟁> 같은 그의 대표작이 이미 출간돼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 그의 저작에 대한 판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에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미출간 작품의 소개를 서두르고 있다. 가장 먼저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 곳은 바로 새물결 출판사로 이미 그의 대표작인 <세계 종말 전쟁>을 비롯해서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와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개한 바 있다. 이번에 국내 출판사 가운데서는 가장 빠르게 그의 2003년 작품인 <천국은 다른 곳에>를 이번 주에 출간한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작가의 팬으로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천국은 다른 곳에>는 실존 인물은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과 그의 할머니 플로라 트리스탕에 대한 이야기로 모두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태평양의 타히티에서 작품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한 폴 고갱이야 다들 아는 작가이지만, 페미니즘 운동 창시자 중의 한 명으로 추앙받는 플로라 트리스탕의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확실히 일반 독자가 잘 알지 못하는 소재로 삼아 ‘구라’를 풀어내는 탁월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글솜씨에 다시 한번 경탄할 뿐이다. 다음달에 출간될 최신작 <켈트의 꿈>에서도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로저 케이스먼트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벨기에령 콩고와 페루 아마존 정글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로저 케이스먼트의 일대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 작품 역시 국내에서 출간될 것으로 믿는다.

다음은 뉴욕타임즈에서 <세상 종말 전쟁>과 더불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작으로 소개한 <염소의 축제>다. 이 책을 발간한 문학동네는 작년에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페루 아마존 정글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특별 작전을 그린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올해 그전에 <궁둥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새엄마 찬양>을 소개하면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붐을 조성했다.
 

 

 

 

 

 

 

 

 

'엘 헤페’라는 별칭으로 31년간 카리브해의 섬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을 철권통치한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 몰리나의 암살 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을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특유의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특유의 작법 스타일이 그 빛을 발한다. 아직도 ‘푸쿠’라는 이름으로 도미니카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독재의 공모자로서의 죄책감과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인간의 맹목적인 충성이 어떤 결과를 불러 왔는지에 대한 작가의 냉철한 시선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소설이다.

특히 이 소설의 번역은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스페인 문학 번역에 있어 최고라고 생각하는 송병선 교수님이 맡아 주셔서 더 반가웠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송병선 교수님의 개인 블로그를 찾아 <염소의 축제>에 대한 사전 정보는 물론이고, 번역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도 알아보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희대의 독재자 ‘엘 헤페’ 트루히요를 퓰리처상에 빛나는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만났던 독자라면, <염소의 축제>에 다시 등장하는 이 웃기는 짬뽕 같은 엉터리 독재자와의 해후가 반가울 것이다. 노벨문학상의 열기를 타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다른 작품들도 빠른 시일 내에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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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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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의 책을 읽는 건 쉽지 않다. 지난 8월부터 <마음짐승>을 읽었지만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있다가 기나긴 연휴의 끝자락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에도 꾸준하게 등장하는 차우셰스쿠 독재 아래 시대의 불안은 <마음짐승>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경찰국가 루마니아의 일상은 도청과 감시가 지배한다. 마치 벽과 하늘에도 귀와 눈이 달린 듯이 그렇게 보통 사람의 모든 것이 낱낱이 감시당한다. 독재자와 그의 감시원은 친구마저도 못 믿게 하는 일상의 불안을 바탕으로, 두려움을 분배한다. 그래서 모든 루마니아 사람들, 특히 슈바벤의 소수민족인 독일인은 목숨을 걸고 도나우 강을 건너 그들의 모국어가 사용되는 곳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마음짐승>을 읽으면서, 과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나”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헤르타 뮐러의 자전적 소설은 대학교에서 체육 강사의 추행으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롤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궁핍한 가운데, 검댕으로 만든 마스카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숙사 안의 네모에 거주했던 어느 여대생의 회상이 이어진다.

시골에 사는 가족을 두고 도시생활을 하는 나의 아버지는 전쟁 중의 나치 무장친위대원이었다. 아버지는 여느 슈바벤 남자처럼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 나의 엄마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즈음해서 느슨한 관계를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암울했던 과거와의 단절이 읽혔다.

한편, 노래하는 할머니는 모두가 가슴에 ‘마음짐승’을 데리고 있다고 말한다. 종일 피곤하게 놀았으니 그 마음짐승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고도 하고, 자신의 심리상태를 그 생쥐나 토끼 같은 마음짐승에 빗대 표현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마음짐승은 어떤 녀석인가 자문해 본다. 이게 헤르타 뮐러의 소설을 읽고 나서 맞는 적용일까? 이래서 그녀의 글은 읽을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싶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에서 번역사로 일하게 된 나는 끊임없이 경찰의 감시에 시달린다. 벌거벗은 상태에서 심문을 당하고, 소지품 목록을 작성하는 모욕은 감시가 일상화가 루마니아의 무시무시한 삶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친구라고 믿었던 테레자는 경찰의 끄나풀이었고 자신을 감시하라는 비밀지령을 받고 망명지 독일까지 찾아온다.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였던 파스빈더 감독의 작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불쑥 떠올랐다. 이런 시대의 불안 속에 온전한 영혼을 유지하기란 난망하지 않았을까.

<마음짐승>을 읽으면서, 모국어와 살고 있는 나라의 국가어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작가 헤르타 뮐러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 그녀의 책에 나오는 많은 부분이 루마니아 독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경향을 띠고 있지만, 저술활동은 그녀가 ‘모국어’라 부르는 독일어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핍박과 위협으로 결국 독일로 망명한 그녀는 결국 독일인으로 보아야 할까? 서구의 언론에서는 숫제 그녀를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가 아닌 German writer로 표현한다. 기회가 된다면 작가에게 직접 묻고 싶은 질문이다.

국내에 출간된 헤르타 뮐러의 다섯 권의 책을 모두 읽어서 마치 숙제를 다 끝낸 듯한 후련함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과연 헤르타 뮐러 작가의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된다. 헤르타 뮐러 텍스트 분석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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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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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이 세계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계 루마니아 작가 헤르타 뮐러가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녀가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있는 이 순간에, 헤르타 뮐러의 책과 네 번째로 만났다. 꼭 노벨문학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비현실적인 전체주의 독재와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끌려갔던 독일계 루마니아인들에게 호기심으로 시작된 헤르타 뮐러 읽기는 자연스레 전작주의로 날 인도하고 있다.

1986년에 발표된 헤르타 뮐러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루마니아 속담으로 현실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력한 인간적 존재를 빗댄 표현이라고 할까. 이 작품은 영어로 <The Passport>로 번역이 되어서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궁극적으로 주인공 빈디시 가족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바로 조국 루마니아를 탈출할 수 있는 여권이었다는 사실에서 이 자전적 소설의 키워드라고 할 수가 있겠다.

독일 서남부의 슈바벤 지방을 연상시키는 루마니아 독일계 주민이 사는 바나트 지방의 슈바벤 지방을 배경으로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헤르타 뮐러 작가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과연 독일어로 글을 쓰는 그녀가 독일인인가 아니면 루마니아인인가 하는 궁금증이 드는데, 루마니아에 살면서 독일인으로 살아온 소수 민족으로서의 독일계 루마니아 사람들에 대한 이모저모가 작가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몇 겹의 은유로 쌓인 채 조금씩 드러난다.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빈디시-카타리나 가정의 아멜리에 외에 다른 이들은 모두 목수, 야간경비원, 재단사 그리고 모피가공사 같은 그들의 직업으로 명명된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철통 같았던 차우셰스쿠 독재 치하에서 쓰인 글이어서 그런지 철저하게 익명성을 담보한다. 이 슈바벤이라는 마을의 독일인들은 루마니아 사람들을 ‘왈라키아인’이라고 부르면서 철저하게 독일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수하며 살고 있다. 이런 사실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루마니아인들과의 정치, 사회, 문화적 충돌을 유추해본다. 전쟁이 끝난 다음, 독일계 주민이 소련으로 강제로 끌려갈 때 과연 그들이 왈라키아인이라고 부르던 이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야간경비원의 사과나무 주둥이가 사과를 먹는다는 말에, 라틴어 미사를 드린 신부가 사탄이 사과나무에 들어 있다고 선언하면서 중세풍의 화형식을 선고한다. 동시에 수많은 슈바벤의 가정들은 루마니아 정부의 수탈, 착취와 억압을 피해, 동족이 사는 독일로의 이주를 꿈꾼다. 그래서 빈디시 역시 정나미가 뚝 떨어진 조국 루마니아를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권이 필요한데, 이 여권을 받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파렴치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나마 남아 있는 가장(家長)으로서 한 조각의 양심 때문에 빈디시는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한편, 독일계 루마니아인들은 추축국의 일원으로 대소전에 참가했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이 끝난 뒤, 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에 끌려가 가난과 추위 속에 참혹한 시절을 보낸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에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소개된 이 에피소드가 헤르타 뮐러의 최근작 <숨그네>에서 훨씬 풍부하고 자세하게 그네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적나라한 해부를 시도한다. 그녀의 부모 세대에 공통으로 각인된 고뇌의 유전자가 작가를 통해 다시 한 번 재현된다.

헤르타 뮐러의 소설 작법의 특징인 간결하면서도, 산문시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시적 표현들은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올빼미가 마을의 구성원의 죽음을 예고하는 슈바벤에서 “일주일간 하늘은 깡그리 불탔”고(39쪽), 부정과 부조리가 만연한 가운데 “성당 톱니바퀴들이 죄의 시간을 재”고 있었다(49쪽).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보통 사람의 숨통을 옥죄어 오는 전체주의의 망령 앞에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어서 이 악몽의 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빗물의 기도”(79쪽) 밖에 없었다.

“자기와의 의사소통, 대화 그것이 문학이었다”라는 말로 차우셰스쿠 독재 치하의 암울했던 시대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헤르타 뮐러는 자신이 저술한 텍스트가 독자와의 교감을 통해 사회고발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설명한다. 작가가 직접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있는 사실 그대로의 서술만으로도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문학의 근원적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다음 차례는 <마음짐승>인가? 헤르타 뮐러 전작주의에 대한 발자국이 한 걸음 더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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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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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책으로 접할 수가 있었다. 사실 올 연초에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된 제인 오스틴의 <설득>을 텔레비전 영화로 먼저 봤다. 그동안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 세계를 간접 체험했지만, 정작 원작으로는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 <설득>은 42세의 이른 나이에 타개한 제인 오스틴이 이 세상에 남긴 모두 6편 소설 중의 마지막 작품이다.

<설득>의 내용은 그녀의 문체만큼이나 간단하다. 준남작 가문인 엘리엇 가의 둘째 딸인 앤 엘리엇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앤은 올해 27살의 노처녀다. 외모와 사회적 지위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는 아버지 월터 경과 언니 엘리자베스는 기울어 가는 가세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판에 더 신경을 쓰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낭비한다. 현실에 입각한 앤의 부채 상환 계획은 무시되고, 결국 그들의 영지가 있는 켈린치 홀을 어쩔 수 없이 크로프트 제독 내외에게 세를 내준다.

지금까지가 엘리엇 가문을 덮친 경제적 위기였다면 이제부터는 제인 오스틴의 장기인 남녀 간의 로맨스가 등장한다. 앤의 마음을 뒤흔든 사나이는 바로 8년 전에 그녀에게 청혼했던 프레더릭 웬트워스 대령이다. 그 당시만 해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고, 사회적 지위마저 불안정했던 웬트워스의 청혼을 앤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죽은 어머니의 친구 레이디 러셀의 ‘설득’으로 그만 거절하고 만다.

전 유럽을 뒤흔들었던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해군으로 사회적 지위와 재산까지 얻은 웬트워스 대령은 딸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탐을 낼만한 그런 일등 사윗감으로 급부상한다. 그런 웬트워스는 앤을 냉담하게 대하면서, 오히려 앤의 여동생인 메리의 시누이 자매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영국의 전원인 서머싯셔의 켈린치 홀, 어퍼크로스, 바스와 라임을 오가며 벌어지는 청춘남녀들의 알콩달콩하면서도 잔잔한 로맨스가 제인 오스틴의 손끝을 통해 재탄생한다.

19세기 초,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전 세계를 주름잡던 영국은 조지 3세의 통치 아래 미국 독립전쟁을 비롯한 가장 강력한 맞수 프랑스와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소설에 명백하게 등장하는 1814년이라는 시대 상황은 영국과 러시아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제국에 승리를 거두고, 전쟁에 이긴 군인의 귀향이 이루어지던 시기다. 남자들에게 전쟁은 사회적 신분상승과 상당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회다. 이런 정치사회적 이슈를 제인 오스틴은 여성 특유의 필치로 예민하게 짚어낸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를 맞은 전쟁 영웅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불안한 현재를 마감하고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서, 결혼시장이 분주해졌다는 말일 게다.

제인 오스틴은 바로 이 전쟁을 통해 성공한 남자의 모델로 프레더릭 웬트워스 대령을 남자 주인공으로 낙점한다. 그의 상대역으로 시골 마을에서 조용하게 사교 활동을 하고, 책을 읽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 앤 엘리엇을 골랐다. 물론 소설의 극적 긴장감과 재미를 위해 주변에 앤과 프레더릭에 못 미치는 캐릭터들과 음모를 꾸미는 악당 역도 빼놓지 않는다. 그 반대편에는 스미스 부인, 하빌 대령과 벤윅 대령 같은 온건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을 가진 조연을 배치한다. 월터 경과 앤의 언니 엘리자베스로 대변되는 구세대의 인물에 대한 웬트워스라는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보이지 않는 경멸을 제인 오스틴은 소설의 곳곳에 은근하게 표시한다.

귀족이라는 신분을 내세우며 갖은 점잔을 빼며 체면을 중시하지만, 정작 한 꺼풀 벗겨 내고 보면 그네들의 허영과 가식으로 가득한 실상이 바로 드러난다. 체면을 차리기 위한 소비로 가계가 허물어져 가는데도 월터 경과 엘리자베스는 조상이 전해 준 가문의 이름에 덧씌워진 신기루를 좇는다. 그래서 앤의 우월한 존재감이 더 빛나는 걸까? 라임에서 루이자 머스그로브의 분별력 없는 행동으로 사고가 발생하자, 신속하게 사람들을 지휘해서 일을 처리하는 앤의 모습은 19세기 영국 숙녀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로맨스 소설 <설득>의 핵심은 여전히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앤과 웬트워스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시대가 지나도 만고불변의 진리인 사랑 이야기를 소설꾼은 놓치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의 간단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짧은 대화에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주인공 감정의 이입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반응에 애달파 하는 사랑의 순간들을 어쩌면 이렇게도 멋지게 그려낼 수 있는지 절로 감탄이 나올 뿐이다. 이상이 앤의 감정이라면, 젊은 시절 자존심 때문에 사랑을 잃었던 웬트워스의 질투와 늦게나마 앤의 우월함을 깨닫게 된 그의 행동을 보면서 역시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50권까지 나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두 명의 역자가 번역을 맡아서 그런 진 몰라도, 번역이 더 매끄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인 오스틴이 그린 이상적 행복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과연 일개 독자로 저자의 의도한 바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는 자신은 없지만, 행복에 후회는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서로의 사랑은 확인한 앤과 웬트워스처럼 말이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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