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습격 - 영화, 역사를 말하다
김용성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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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거진 뉴라이트가 주도하는 교과서 파동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역사인식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예전에는 관찬 사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역사는 이제 열린 공간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역사관을 가지고 벌어지는 현상들을 종합해서 판단할 수가 있게 되었다. 오늘날 역사를 접할 수 있는 루트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다. <제국의 습격>에서 지은이 김용성 기자는 이런 다양한 방법론 중에서 영화를 통한 역사 보기의 예를 제시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명확하게 이 책의 서술 의도를 밝히고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래 무자비하게 시작된 서양의 제국주의의 침탈의 근원을 찾아, 식민지화 과정과 그리고 우리의 의식 밑에 깔린 뿌리 깊은 서양우월주의 등을 해명하려는 4대륙에 걸친 긴 여정을 시작한다.

굳이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이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유럽 제국들은 신대륙에 착취한 금은과 같은 재화를 바탕으로 종래의 지중해 중심의 무역에서 벗어나 대서양을 넘나드는 대양무역에 나서게 된다. 르네상스 기의 상업의 발달로 자본의 축적을 통해, 산업혁명기를 맞아 비약적인 생산의 발전을 이루게 된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 등의 유럽 제국들은 아메리카,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로 자원 침탈과 상품 시장 개척을 목표로 한 식민지 경영에 나선다.

아시아에서는 동북아시아 3개국인 중국-일본 그리고 한국 순서로 서구 열강의 강압에 못 이겨 종래의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개항을 하게 된다. 이후의 과정은 각국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개되긴 했지만, 일본을 제외하고 모두 전쟁을 겪거나 식민지화되고 만다. 이중에서 홍콩의 예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100년도 넘게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지난 1997년 중국에게 다시 반환된 홍콩은 현재 1국2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김용성 기자는 <차이니즈 박스>와 <화양연화>로 홍콩에 대한 단상을 전개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인 왕자웨이는 시간보다는 공간적 구성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경향이 짙다. 전작들에서 점프 컷으로 속도감의 미학을 보여 주었던 왕자웨이는 <화양연화>에서는 느린 영상으로 홍콩이라는 공간 속에서 실종된 관계에 중점을 둔다. 마치 오늘을 사는 홍콩인들에게는 이념보다는 홍콩이라는 공간이 더 소중하다는 듯이 말이다.

다음은 이 책의 핵심인 아메리카다. 지은이는 라틴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로 나눠서 서로 다른 장으로 구성을 했지만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으로 대변되는 북아메리카는 하나의 뿌리에서 둘로 나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콜럼버스의 도래 이래, 시작한 스페인의 식민지 경영은 포르투갈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석권하기에 이른다. 제국주의 침탈의 공식처럼 선교사와 탐험가들이 앞장서면 그 뒤를 이어 군대가 진주하고, 경찰력과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들이 닥치면서 본국에서 온 정주민들을 지원한다.

원래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그들에게 수탈과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게다가 식민지 경영을 하면서 동시에 이뤄진 노예무역은 인류사의 큰 오점을 남겼다. 식민화 과정에서 발생한 계급구조는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이룬 후에도 계속해서 국가통합과 발전에 저해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아울러 식민 모국에의 종속과 소위 매판자본들의 발호는 민중들에게는 지배계급만 제국주의 국가의 총독에서 자국의 특권계층으로 바뀌게 했을 뿐이었다.

미국의 경우 역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면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화국 건설을 모토로 삼았지만, 그 자유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노동력 부족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유입한 엄청난 수의 흑인들은 예외였다. 이런 이유로 해서, 미국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인종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을 통해 내부문제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한 미국은, 본격적인 팽창에 나서게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 독립전쟁기를 다룬 멜 깁슨의 주연 <패트리어트>와 폴 해기스 감독의 <크래쉬>는 아주 적합한 케이스 스터디라고 할 수가 있겠다. 영국의 폭정에 항거해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독립의 대의를 앞세우지만, 노예제도와 같은 악습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대영제국의 압제에는 항거하지만, 자신들이 같은 인류인 흑인들에게 저지른 폭압은 정당하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모순 그 자체였다. <크래쉬>는 이민자들의 힘으로 세워진 미국이 이제는 더 이상 이민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서, 빚어지는 인종간의 갈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수작이다. 나와 다름으로 시작되는 차별이 아닌, 상호간의 이해와 소통의 필요성이 짚어내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아프리카의 근현대사는 한 마디로 말해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오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현지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된 국경선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원침탈과 인종차별에 갈등을 비롯한 모든 문제들은 바로 식민지배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다. 특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던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원약탈, 부족 간의 정쟁 그리고 소년병 문제에 이르는 오늘날의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용성 기자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서구인들의 시선이 아닌 아프리카인들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사실들에 주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동안 우린 너무나 할리우드에서 찍어내는 영화들에 길들여져 온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문법은 오직 돈벌이가 될법한 영화들과 그 짝을 이루면서 우리의 의식구조를 정형화시켜온 건 아닐까? 김용성 기자는 이 책 <제국의 습격>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영화들을 통해서는 새로운 시선에서의 접근을 그리고 조금은 생소한 영화들을 통해서는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들에 대한 계몽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캐나다 정주의 역사에 대해서는 미국의 그것에 비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아카디아(Acadia) 정착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다시 한 번 영상언어로써, 영화의 위력에 대해 그리고 그 다양한 해석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독서경험이었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어는 -> 어느 (21페이지)
2. 야마다 지로 -> 아사다 지로 (74페이지)
3. 중일전쟁 -> 청일전쟁 (77페이지)
4. 오스만트루크 -> 오스만투르크 (97페이지)
5. 스페인총독 -> 갈리아총독 (99페이지)
6. 투르먼 -> 트루먼 (115페이지)
7. 1789년 -> 1798년 (263페이지)
8. but we tried to fight -> but we tried to fight it (27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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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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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어 드는 순간, 대략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부피에 심적 부담감이 엄습해 왔다. 띠지에 둘러져 있던 “엽기 코믹 화제작”이라는 말이 준 기대감은 당황한 느낌으로 전이가 됐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걱정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 역시 재밌는 책은 두께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표지에 등장하는 주인공 쩡광셴(曾廣賢)이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틀어져 있는 일러스트가 보인다. 마치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뒤안길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으로, 이 책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후회”와 명징한 접점을 이룬다. 1966년 생으로 소위 ‘신생대(新生代) 작가’군이라고 일컬어지는 작가로 알려진 둥시(東西)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는 <언어 없는 생활>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되었다.

주인공 광셴(廣賢)의 이름에서 보이듯이 그가 ‘널리 현명’했다면 이 책은 아예 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부주의한 언행으로, 더 속되게 표현하자면 그 놈의 세치 혀 때문에 갖은 사건 사고를 만들어낸다. 어느 날, 우연히 흘레붙은 개들을 구경하던 광셴의 아버지 쩡창펑은 지난 10년간 섹스리스(sexless)한 삶의 보상을 엉뚱하게도 이웃 처녀 자오산허를 통해 해결하려 든다. 이 광경을 목격한 광셴은 첫 번째로 사고를 치게 된다.

광셴은 이 사실을 바로 자오산허의 오빠이자 중학교 교장인 자오완녠에게 일러바친다. 결국 당시 중국을 휩쓸던 문화대혁명 기간에 홍위병들에게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는 광셴의 아버지. 설상가상으로 그의 어머니에게 집적대던 동물원 원장의 비행을 목격한 광셴은 어머니를 모욕하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동물원 호랑이게 몸을 던진다. 이 와중에 여동생 쩡팡마저 잃어버리고, 그야말로 쩡씨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풀려난 아버지 창펑은 자신을 밀고한 사람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말에 분노한다. 광셴은 이 화근덩어리인 자신의 입을 가차 없이 손으로 내려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독자들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장면이 될 것이다.

이런 광셴을 동정하는 소녀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샤오츠. 당시 대유행하던 샤팡(下枋)을 하기 위해 멀리 농촌지역으로 광셴도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샤오츠도 자원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특유의 우유부단을 발휘해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간다. 샤오츠의 적극적인 유혹을 아버지의 부정으로 인한 트라우마 덕분인지 그는 목석처럼 이겨낸다. 하지만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뭐 늘 그렇지만 떠난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 천신만고 끝에 샤오츠를 찾아가지만, 샤오츠는 같이 하방한 위바이자와 스캔들로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야말로 엽기일색이다. 동물원에서 같이 일하는 자오징둥과 그가 기르는 개 나오나오의 부적절한 관계를 너무 크게 부풀려서 그만 자오징둥을 자살하게 만들고, 친구 위바이자의 충동질에 그만 자오징둥의 사촌누나인 장나오의 방에 침입했다가 강간범으로 몰려 자그마치 10년간의 형무소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동물원 동료인 루샤오옌과의 연애로 무모하게 탈옥을 시도하다가 잡혀 추가형을 선고받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의 동료 리다파오의 탈출을 밀고해서 자신의 형기를 단축시키기도 한다. 그냥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좋으련만, 참지 못하고 자신의 배신을 고백했다가 리다파오로부터 모욕을 받기도 한다.

물론 이런 그의 엽기 행각들과 주체할 수 없는 입놀림으로 그렇게 고난을 당하면서도 광셴의 교육효과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어쩌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될 말들만을 해서 고난 속으로 뛰어 드는지 책을 읽는 내내 혀를 찼다. 장나오의 무고로 10년간 감옥살이를 했으면서도, 자신을 옥바라지하고 아버지 창펑의 수발을 든 루샤오옌 대신 장나오를 선택하는 광셴.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런 그를 말리지만, 그는 항상 엉뚱하고 잘못된 선택만을 해댄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꿈에도 그리던 장나오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지도 못한다. 이 장면에서는 미국 영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의 주인공 생각이 불쑥 들었다.

중국 문학에서 문화대혁명을 빼놓고서는 어떤 이야기도 전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 들 정도로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말이다. 소설 <미스터 후회남>에서도 어김없이, 문화대혁명의 여파를 엿볼 수 있었다. 많은 중국 소설들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성장통 역시 빠지지 않았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다시 장년으로 넘어가는 주인공 광셴의 변신은 중국 현대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자본가 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들이 대우를 받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의 처지는 마치 광셴이 장나오, 룻샤오옌 그리고 샤오츠 사이에서 갈팡지팡하는 계급적 고뇌의 승화로 대체된다. 아예 모택동 사후 소위 4인방이 국정을 농단하던 시절은 광셴의 암흑의 교도소에서의 교정생활로 갈음해 버린다. 그는 죄 없이 무고로 감옥에서 10년의 청년을 썩어 버린 것이다. 이것 역시 문화대혁명 후,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반강제로 시골이나 농촌에서 하방된 지청(지식청년)들의 모습이었다.

거듭되는 친구와 사랑한다고 믿었던 여인으로부터 배신, 그리고 자신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꼬이기만 하는 광셴의 인생은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자신의 부주의한 언행으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인생이 꼬일 수가 있을까. 이것 역시 문화대혁명기의 대다수 중국 인민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방향성의 제시도 없이,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끔찍한 폭력만이 난무하고, 서로를 믿을 수가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를, 광셴이라는 개인을 통해 우회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한편으론 아버지의 부정을 비난하며, 청교도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광셴은 미녀 장나오를 몰래 훔쳐보는 관음증으로 대변되는 이율배반적인 환상을 품기도 한다. 이것 역시 사회주의 시스템 아래서, 서구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배척하던 물질주의에 대한 인민들의 멈출 수 없는 동경만큼이나 모순적인 모습이었다.

작가 둥시가 빚어내는 한 편의 추리소설을 연상케 하는 치밀한 구성과 적재적소의 캐릭터 배치 등은 감탄할 만했다. 예를 들어, 광셴은 장나오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미 둥시는 사전에 미리 철저한 준비를 다 해두었다. 그리고 한 번 등장한 인물들은 쉬이 흘려보내지 않고, 빈틈없는 인과관계로 묶어 놓기도 한다. 둥시가 창조한 광셴이라는 걸출한 못난이를 통해 쉴 새 없이 퍼뜨리는 해학과 익살의 바이러스는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머릿속에서 준동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경고 하나! 너무 밤늦게 읽기 시작하지 마라, 새벽까지 잠을 못자는 수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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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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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의 대선이 끝나면서, 참여정부의 시대가 지나가고 소위 말하는 실용정부 시대가 되었다. 두 번의 대선과 마지막 총선에서 진보 진영에게 참패를 당했던 보수 진영은 대오각성 끝에, 지리멸렬한 보수 진영을 패퇴시키고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지상과제로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데 성공을 했다. 뉴라이트는 보수진영의 정권 재창출에 있어서 일등공신 역할을 충실히 해낸 정치운동 세력의 바탕이었다.

요즘 이 뉴라이트 운동이 교과서 파동이라는 형태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동양사를 전공한 김기협 선생의 <뉴라이트 비판>이 출간됐다. 이 책은 그 대상과 목적의식이 뚜렷한 책이다. 비판을 하기 위해 책을 썼고, 그 대상은 바로 MB정부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해 주고 있는 뉴라이트 그룹이다. 뉴라이트가 말해 주듯이, 보수 진영을 지칭한다.

저자는 뉴라이트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로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만 본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다양성들은 모두 배제시킨 채, 17세기 절대왕정 시기에 등장한 토마스 홉스의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식의 무한경쟁만을 강조한다. 동시에 그들은 민족의 고유한 개념을 부정한다. 근대국가 발전과정에서 형성되었던 민족국가의 개념은 우리나라에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고, 해괴하게도 일제에 의해 근대화가 되었다는 주장에 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왜곡된 역사관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말해 일제 치하의 식민지 치하에서 문명 세계로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이론으로까지 나가게 된다. 게다가 민족지도자의 위치에서 변절해서 일제에 협력한 이광수 같은 친일파들을 해방 후, 건국 과정에서 역량 있는 인물 집단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수구 집단은 보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런 태생적 한계로 인해 민족주의와 대립하게 되는 기형성을 드러내게 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부정과 장기독재는 말할 것도 없고,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역시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가운데, 자유민주주의 대의 대신 경제발전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해왔다. 특히, 뉴라이트에서 그렇게 목 놓아 외쳐대는 70년대 고도성장의 신화도, 비슷한 시기의 홍콩, 대만 그리고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들에서도 우리와 같은 혹독한 독재를 경험하지 않고서도 이루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또한 뉴라이트들이 거의 광신적으로 믿고 따르는 신자유주의 허상 역시 작년 유가파동과 금융공황을 통해 그 폐해가 여실히 들어나지 않았는가. 이와 동시에 MB정부에서 야심차게 준비했던 7-4-7 공약들은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 그 어느 누구도 더 이상 7-4-7 공약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 다음 정권으로 교체가 될 때까지 어쩌면 금칙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동인(動因)인 성장이 에너지 자원의 고갈과 심각한 환경 오염문제로 인해 멈추게 되었다.

파이(pie)를 키우자는 자본주의 성장론이 정체되지 않고 성장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자본주의의 속성상 호황과 불황은 순환을 하기 마련이다. 이미 그렇기 때문에 19세기말의 불황과 1929년 대공황을 통해 애덤 스미스 이래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해 오던 자본주의 내에서도 수정 자본주의 혹은 착근 자본주의 같은 수정주의 노선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 말 미국과 체제 경쟁을 벌이던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부자들에 대한 감세와 사회복지 재정 감축을 주장하는 특징을 가진 신자유주의는 가시적인 승리를 담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작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공황이 보여 주듯이, 규제되지 않은 시장자본주의와 고전경제학에 의거한 자유방임주의의 폐해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네오콘들과 부시 행정부에 대한 지난 8년간의 실정을 미국 국민들은 지난 미국 대선과 의회선거를 통해 철저하게 응징을 했다. 이런 누가 봐도 실패가 자명한 신자유주의에 여전히 연연해하고 있는 한국의 뉴라이트들이 애처로울 뿐이다.

뉴라이트들은 더 이상 사회적 성장 동인이 사라져 버린 가운데, 불평등한 사회적 재화의 분배를 통해 사회 계급을 고착화시키고 기득권층, 수구 집단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가뜩이나 부족한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들마저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울러 MB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의 민영화 역시 독점기업의 사회적 공적 기능에 대한 중요성보다는 오직 자본주의에 입각한 수익과 효율이라는 시장의 원리만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 책에서도 소개가 되지만, 영국에서 수돗물 사업을 개인기업에게 넘겼다가 해당기업이 설비에 대한 투자와 시설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그 사회적 비용이 더 들었다고 한다. 미국 보스턴이 위치한 매사추세츠 주에서도 전기사업을 독점하는 기업들이 담합을 해서, 다른 주에서 전기를 끌어다 쓴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실제 비용보다 두 배나 되는 전기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부담시킨다.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민영화를 한단 말인가? 김기협 선생이 주장하는 대로, 굳이 시간과 비용 그리고 적응의 문제가 발생하는 민영화 대신 경영합리화만으로 얼마든지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교과서 파동에 있어, 해방 이후 수십 년간의 독재체제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마련된 국정교과서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적인 방법과 절차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검정교과서 시스템에 타격을 가하려는 뉴라이트들의 모습들이 소개된다. 안병직과 이영훈 외에는 전혀 역사나 역사교육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 참여한 대안 교과서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을 위한 교과서인지 모를 정도로 위험한 생각들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고, 일제의 폭압에 저항한 민족주의자 김구 선생을 항일 테러리스트라고 지칭을 하는 등 대안 교과서 편집자들의 심각한 역사 인식에 대한 부족과 문제점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누가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그동안 너무 현실안주적인 성향을 보여 오던 역사학계에 뉴라이트들이 내세운 가설들은 충격을 주면서, 스스로 깨달아 행동할 수 있는 좋은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역사에서 보여지듯이, 거짓과 왜곡이 진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독재정권이 아무리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노력을 했지만, 진리와 자유를 원하는 거대한 국민들의 뜻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든 김기협 선생의 주장들 중에 하나는, 아무리 뉴라이트들의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는 의견이었다. 가령 예를 들어, 기존의 주류 사학계에서는 일제의 식민지배 일체에 대해 거의 생래적인 거부 반응을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무조건적인 거부보다는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사실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과 함께, 상호간에 폐쇄적인 학문 간의 교류의 틀을 깨고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가 있었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가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가져 왔고, 민주주의에 우선하는 개발독재 주장은 정말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가설들이다. 게다가 오로지 경쟁을 통한 성공제일주의와 시장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은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뉴라이트들의 면면을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들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 그들의 본질을 빨리 알게 돼서 기쁘기도 하다.

*** 123페이지에 나오는 대동아전쟁은 보통의 경우, 일본이 1941년에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1938년의 경우라면, 1937년 노구교 사건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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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
세노 갓파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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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인도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이 책 <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을 손에 들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힌두교, 어마어마한 인구대국, 타지마할, 카주라호, 아잔타석굴, 카레, 카스트제도, 중국에 버금가는 만만디……. 수많은 신들을 믿는 다양성의 나라 인도를 이런 몇 마디로 정의할 수가 있을까? 인도를 한 번 찾은 사람들은 그 마력에 빠져 두 번 세 번 연달아 찾게 된다고 한다. 아니면 극단적으로 인도를 혐오하게 되거나.

그런데 작가 세노 갓파는 1978년 그리고 5년 뒤인 1983년에 다시 인도를 찾은 것으로 보아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으로 무대미술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세노 갓파는 자연의 풍광도 풍광이지만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의 관광객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대상들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스케치를 통해 여실히 들어 나고 있었다.

그는 길가에서 노점을 펼치고 있는 이들에게 주목을 하고 그들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이 매달려 타고 가는 버스도 그의 스케치 대상이다. 또 이 책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등장하게 될 숙소에 대한 묘사 또한 일품이다. 일반 배낭여행자와는 달리 게스트하우스나 유스호스텔 같이 저렴한 숙소가 아닌 일반 호텔 혹은 이름난 호텔에 투숙하는 세노 갓파는 자신이 묵었던 호텔들을 하나하나 스케치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하루의 일정이 끝나면 자신이 묵을 숙소로 돌아와 마치 엄숙한 일과를 반성하듯, 실내의 온도를 재고 방값이 얼마며 호텔 객실 넘버를 달고 내부 묘사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꼭 가보고 싶은 타지마할 관광을 끝내고, 델리로 가는 길에 탔던 타지 익스프레스 기차 안의 스케치에선 그의 편집증적 면모가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아마 줄자를 들고 재었는지 열차 내부의 객실의 폭과 넓이 등이 아주 자세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작가는 어느 나라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여행을 하다가 스파이로 몰려서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다고 했는데, 정말 누가 보면 스파이라고 의심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카타(캘커타), 갠지스 강의 바라나시, 미투나 상으로 유명한 카주라호, 타지마할의 아그라로 이어지는 세노 갓파의 첫 번째 인도여행은 델리에서 끝이 난다. 인도하면 떠오르는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이야기로 한 달 반 정도의 여정을 매조지 짓는다. ‘카스트’는 혈연 혹은 종족을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거의 3,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거쳐 형성된 철저한 계급의식은 건국 30년이었던 1978년에도 여전히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특히 이성적으로는 타파해야 할 악습이라는걸 모두가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세노 갓파는 적시한다.

아울러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인도에서 현지 음식을 먹는데 주저 하지 않는다. 자신을 특별한 미식가가 아닌 일개 먹보라고 자칭하면서, 노상에서 파는 밀크티를 비롯해서 차파티 같은 인도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들을 섭렵한다. 비록 나그네이긴 하지만, 그네들의 삶을 체험해 보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선의가 좋은 결과만을 불러 오는 것만은 아니어서 장장 3일 동안 배탈이 나서 고생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이던가, 세노 갓파 식 현지화를 위한 적응통(適應痛)이라고 해야 할까.

세노 갓파의 두 번째 인도 행은 남과 북을 관통하는 대장정이다. 델리를 기점으로 해서 파시들이(인도의 조로아스터 교도들을 부르는 표현) 경제권을 장악한 뭄바이(봄베이)를 거쳐, 데칸 고원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여행에 나선다. 하이드라바드-첸나이(마드라스)-마두라이를 거쳐 세 개의 바다(벵갈만, 아라비아해 그리고 인도양)가 만난다는 카냐쿠마리 다시 말해 인도의 최남단을 찾는 세노 갓파. 세 개의 바다의 접점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여전히 천일염으로 소금을 채취하고, 금속 농기구라고는 낫 외에는 거의 전부를 인간의 노동력으로 쌀을 생산하는 과정들을 면밀하게 그려낸다.

오늘날 선진기계화가 최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모두의 노동력으로 비록 소출이 적을 진 몰라도 모두가 생산에 기여를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세노 갓파는 조용하게 말하고 있다. 느리다는 것이 마치 큰 범죄라도 되듯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우리네 삶과는 전혀 다른 신의 영속적인 신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세노 갓파는 코친-마이소르-방갈로르-아잔타-엘로라-우다이푸르-자이푸르를 거쳐 인도의 최북단 히말라야 언저리의 스리나가르에서 4월의 흰 눈을 보며 긴 여정을 맺는다. 바보와 연기는 높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행동을 희화화하긴 했지만, 그 높은 힌두사원들의 고푸람에 오르기도 하고, 발로 하는 여행이야말로 진짜 여행이라는 믿음으로 발바닥이 다 익는 역경 속에서도 방갈로르의 스라바나 벨라골라 마을의 고마테시와라 상을 보러 나서기도 한다.

그에 스케치에 대해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세노 갓파의 세밀한 스케치를 보면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 그 많은 그림들을 여행 도중에 모두 스케치를 했단 말인가? 아니면 초벌 스케치를 하고, 나중에 찍은 사진을 참조하면서 다시 그렸을까 하는 점이 참 궁금했다.

느릿한 시간을 사는 인도인들의 눈에 평범한 관광객이 아닌 세노 갓파의 비상한 호기심은 색달라 보였을 것이다. 세노 갓파가 말한대로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본인들과는 달리, 공동체 의식이 강한 신실한 힌두교도들은 간섭정신과 시니컬한 유머는 책의 다양성의 확장에 큰 몫을 해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인도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을 모두 떨쳐 버리게 되었다. 아니 그런 생각들은 모두 인도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어졌다. 그나저나 이런 에세이를 읽고 나면 생기는 역마살이 다시 도질 것 같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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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계 - 중국의 4대 미녀
왕공상.진중안 지음, 심우 옮김 / ODbooks(오디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원제는 사대고전미녀(四代古典美女)로,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네 명의 미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아마 거의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당나라 현종과의 로맨스로 유명한 양귀비, 동탁과 여포의 사이를 틀어 놓은 연환계의 주인공 초선, 한나라와 북방의 흉노 간의 대전란을 막아낸 왕소군 그리고 춘추오패 중의 일국으로까지 번영하던 오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어간 서시.

그런데 이번에 출판된 미인계(美人計)는 중국 고대의 전략서 육도(六韜)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손무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손자병법> 36계 중에 31번째로 상대방의 마음으로 딴 곳으로 돌리는 병법론이다. 물론 이 방법의 시행을 위해서, 절세 미녀가 필요하다. 철저하게 여성성을 남성의 시각에서 인식한 목적론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사실 이 책 <미인계>에서도 양귀비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인물들 모두 그런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비운의 운명이 예시되고 있다.

시대적으로 가장 늦은 양귀비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그만큼 중국의 미인들 중에서 양귀비가 차지하는 명성 때문일 것이다. 측천무후의 전횡으로 이씨들의 왕조였던 당나라를 바로 세우고, 치세 초기 “개원의 치”라고 불릴 정도로 명군으로 칭송받던 당의 현종은 자신의 아들은 수왕 비 양귀비 옥환을 자신의 비로 들이면서, 도덕성에 흠집을 내게 된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서 자신의 며느리를 취한 이가 어디 당현종 뿐이던가.

문제는 양귀비가 당황실의 여주인이 되면서 야기한 국정문란에 있었다. 남방의 촉주 출신인 양귀비가 좋아하는 진귀한 과일들과 각지의 특산물들을 진상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고초는 하늘을 찔렀고, 언제나 그렇지만 불필요한 궁궐 축조 등은 백성들의 원망에 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양귀비 일족들인 양국충과 괵국 부인들의 전횡은 결국 현종 말기 안록산이 반란이라는 당나라를 뒤흔들 전대미문의 위기를 초래했다.

하지만 왕공상과 진중안, 이 두 명의 작가들은 어디까지나 가무에 능한 양귀비와 그런 양귀비를 사랑하는 현종에 로맨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반란군에게 쫓겨 피난 중에 병사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은 양국충은 주살되고, 양귀비마저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자결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과 팩션 구성의 차이가 슬슬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초선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전체적인 줄거리는 엇비슷하지만 그 결말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져 가는 한나라 말기에 우연한 기회에 황실의 궁녀로 들어가게 된 초선은 이름 그대로 황실에서 사용되는 모자를 관리하게 된다. 한실을 좌지우지하던 십상시들과 군권을 쥐고 있던 대장군 하진과의 권력대결 끝에 결국 하진을 모살하는데 성공하지만, 명문의 자제 원소의 역습을 받아 십상시 세력이 궤멸되는 난리 통에 초선을 궁궐을 탈출하고, 사도 왕윤의 거처에 있던 잃어버린 어머니와 재회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처럼 초선 역시 그 미모에 달이 스스로 가릴 정도의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고, 한 가지 악기 정도는 누구 못지않게 다룰 줄 알며 춤사위 또한 남에게 뒤지지 않는 그야말로 재색을 겸비한 여성으로 묘사가 된다. 물론, 자신의 처세에도 능해서 궁궐이 불타고 병사들의 난전이 벌어지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보신에 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왕윤의 수양딸이 돼서, 국가의 전권을 농단하던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하는 모습은 바로 <삼국지연의>에서의 그것과 일치한다. 문제는 그렇게 동탁과 자신의 아버지 왕윤마저 동탁의 잔당들에게 죽음을 당한 후, 초선의 행적이었다. <미인계>에서는 어려서 같이 자라 이제는 조조의 휘하에 들어가 있는 소대의 밀명을 받아 여포의 몰락을 유도하는 반간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 후에는 관우의 시비로 들어갔다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맡게 된다고 한다. 이 부분은 정말 팩션을 뛰어 넘어, 새로운 소설 창작의 수준에까지 이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타자는 아마 이 책에 등장하는 미인들 중에서 가장 덜 알려진 왕소군이다. 왕소군 역시 한나라 궁정에 들어갔지만, 황제에게 궁녀들의 초상을 그려 올리는 화공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는 괘씸죄에 걸려 왕소군이 연주하는 비파 소리에 나는 기러기마저 떨어진다는[落雁] 그녀의 미모가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된다. 한나라 초기, 한 제국을 위협했던 흉노족의 선우 호한사는 한나라의 부마가 되고자 청혼을 하고, 궁정에서는 별 볼 일 없는 궁녀를 황제의 누이동생으로 삼아 흉노족을 달래고자 한다. 이 때, 간택된 궁녀가 바로 왕소군이었다. 하지만 직접 왕소군을 본 황제는 마음이 달라져, 다른 여인을 왕소군인체 호한사에게 시집보내고자 한다.

이런 한나라 황실의 변덕스러움에 분노한 흉노의 호한사는 전쟁까지 불사하고자 하는데, 결국 황제의 어머니인 태후는 왕소군을 설득해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 북방의 오랑캐의 땅으로 시집보내게 된다. 왕소군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철저하게 타인에 의해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또 모르겠다, 한나라 궁정의 일개 궁녀가 아닌 흉노의 왕비가 되어서 나름 행복하게 지냈을지도 말이다. 호북성 삼협 자귀현 출신이라는 왕공상의 동향인에 대한 흠모가 절로 배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서시는 월나라 출신으로, 오나라에 잠입을 해서 오왕 부차를 현혹시켜 끝내 망국에 이르게 하는 현대로 치자면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전형을 보여준다. 역사서에서 참조를 했는지 아니면 작가의 전적인 상상인지 모르겠지만, 서시와 더불어 동향의 정단 그리고 동시까지 등장을 시켜 한층 복잡한 로맨스를 이끌어 낸다.

더 흥미를 끄는 건 서시를 이용해서 오나라의 국력을 소모시키자는 아이디어의 주인공인 대부 범려와 서시와의 로맨스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적국에 파견해서, 반간의 주인공으로 삼아야 되는 임무를 맡은 범려의 고뇌하는 모습이,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조국을 위해 자신을 초개같이 버려야 하는 서시의 인간적인 면모가 교차되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러브 스토리가 펼쳐진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종착역은 비극으로 귀결된다.

읽기 전에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역사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그런 모습에 실망했다. 차라리 소설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운명에 도전하는 듯한 모습을 그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 같이 남성들에 의해 이용당하는 평면적 여성상으로만 그려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들인, 체념의 화신들이었다.

번역에 있어서도 매끄럽지 못하고, 심지어는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면들이 눈에 띄었다. 200페이지에서 조조는 “유비, 원술, 원소, 관도 등과 대전역”을 치렀다고 나오는데, 관도(官渡)는 사람이름이 아니라 원소 등과 천하의 패권을 놓고 전투를 벌인 지명이다. 298페이지에서도 원제의 황후의 조카인 왕망이 동한을 일으켰다고 기술했는데, 왕망은 전한을 멸망시키고 단명한 새로운 왕조인 신(新)나라를 나를 세웠다. 동한을 일으킨 건 왕망이 아니라, 동한(혹은 후한)의 광무제 유수(光武帝 劉秀)였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서시 편에서 심각할 정도로 오류가 보인다. 351~2페이지에서 오왕 부차가 오자서의 도움으로 왕료(오왕 료의 오기로 보인다)를 암살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사실은 전왕인 합려가 공자 시절에 왕이었던 료를 용사 전제에게 어장도로 암살한 고사를 착각한 기술이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이야깃거리들이 그 방향성을 잃으면서, 그 동력을 상실해 버렸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마저 곡해해서, 소설화시켜 버리면서 팩션으로서의 장르성 마저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아쉬운 글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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