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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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의 대선이 끝나면서, 참여정부의 시대가 지나가고 소위 말하는 실용정부 시대가 되었다. 두 번의 대선과 마지막 총선에서 진보 진영에게 참패를 당했던 보수 진영은 대오각성 끝에, 지리멸렬한 보수 진영을 패퇴시키고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지상과제로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데 성공을 했다. 뉴라이트는 보수진영의 정권 재창출에 있어서 일등공신 역할을 충실히 해낸 정치운동 세력의 바탕이었다.

요즘 이 뉴라이트 운동이 교과서 파동이라는 형태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동양사를 전공한 김기협 선생의 <뉴라이트 비판>이 출간됐다. 이 책은 그 대상과 목적의식이 뚜렷한 책이다. 비판을 하기 위해 책을 썼고, 그 대상은 바로 MB정부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해 주고 있는 뉴라이트 그룹이다. 뉴라이트가 말해 주듯이, 보수 진영을 지칭한다.

저자는 뉴라이트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로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만 본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다양성들은 모두 배제시킨 채, 17세기 절대왕정 시기에 등장한 토마스 홉스의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식의 무한경쟁만을 강조한다. 동시에 그들은 민족의 고유한 개념을 부정한다. 근대국가 발전과정에서 형성되었던 민족국가의 개념은 우리나라에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고, 해괴하게도 일제에 의해 근대화가 되었다는 주장에 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왜곡된 역사관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말해 일제 치하의 식민지 치하에서 문명 세계로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이론으로까지 나가게 된다. 게다가 민족지도자의 위치에서 변절해서 일제에 협력한 이광수 같은 친일파들을 해방 후, 건국 과정에서 역량 있는 인물 집단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수구 집단은 보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런 태생적 한계로 인해 민족주의와 대립하게 되는 기형성을 드러내게 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부정과 장기독재는 말할 것도 없고,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역시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가운데, 자유민주주의 대의 대신 경제발전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해왔다. 특히, 뉴라이트에서 그렇게 목 놓아 외쳐대는 70년대 고도성장의 신화도, 비슷한 시기의 홍콩, 대만 그리고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들에서도 우리와 같은 혹독한 독재를 경험하지 않고서도 이루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또한 뉴라이트들이 거의 광신적으로 믿고 따르는 신자유주의 허상 역시 작년 유가파동과 금융공황을 통해 그 폐해가 여실히 들어나지 않았는가. 이와 동시에 MB정부에서 야심차게 준비했던 7-4-7 공약들은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 그 어느 누구도 더 이상 7-4-7 공약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 다음 정권으로 교체가 될 때까지 어쩌면 금칙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동인(動因)인 성장이 에너지 자원의 고갈과 심각한 환경 오염문제로 인해 멈추게 되었다.

파이(pie)를 키우자는 자본주의 성장론이 정체되지 않고 성장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자본주의의 속성상 호황과 불황은 순환을 하기 마련이다. 이미 그렇기 때문에 19세기말의 불황과 1929년 대공황을 통해 애덤 스미스 이래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해 오던 자본주의 내에서도 수정 자본주의 혹은 착근 자본주의 같은 수정주의 노선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 말 미국과 체제 경쟁을 벌이던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부자들에 대한 감세와 사회복지 재정 감축을 주장하는 특징을 가진 신자유주의는 가시적인 승리를 담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작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공황이 보여 주듯이, 규제되지 않은 시장자본주의와 고전경제학에 의거한 자유방임주의의 폐해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네오콘들과 부시 행정부에 대한 지난 8년간의 실정을 미국 국민들은 지난 미국 대선과 의회선거를 통해 철저하게 응징을 했다. 이런 누가 봐도 실패가 자명한 신자유주의에 여전히 연연해하고 있는 한국의 뉴라이트들이 애처로울 뿐이다.

뉴라이트들은 더 이상 사회적 성장 동인이 사라져 버린 가운데, 불평등한 사회적 재화의 분배를 통해 사회 계급을 고착화시키고 기득권층, 수구 집단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가뜩이나 부족한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들마저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울러 MB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의 민영화 역시 독점기업의 사회적 공적 기능에 대한 중요성보다는 오직 자본주의에 입각한 수익과 효율이라는 시장의 원리만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 책에서도 소개가 되지만, 영국에서 수돗물 사업을 개인기업에게 넘겼다가 해당기업이 설비에 대한 투자와 시설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그 사회적 비용이 더 들었다고 한다. 미국 보스턴이 위치한 매사추세츠 주에서도 전기사업을 독점하는 기업들이 담합을 해서, 다른 주에서 전기를 끌어다 쓴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실제 비용보다 두 배나 되는 전기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부담시킨다.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민영화를 한단 말인가? 김기협 선생이 주장하는 대로, 굳이 시간과 비용 그리고 적응의 문제가 발생하는 민영화 대신 경영합리화만으로 얼마든지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교과서 파동에 있어, 해방 이후 수십 년간의 독재체제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마련된 국정교과서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적인 방법과 절차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검정교과서 시스템에 타격을 가하려는 뉴라이트들의 모습들이 소개된다. 안병직과 이영훈 외에는 전혀 역사나 역사교육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 참여한 대안 교과서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을 위한 교과서인지 모를 정도로 위험한 생각들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고, 일제의 폭압에 저항한 민족주의자 김구 선생을 항일 테러리스트라고 지칭을 하는 등 대안 교과서 편집자들의 심각한 역사 인식에 대한 부족과 문제점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누가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그동안 너무 현실안주적인 성향을 보여 오던 역사학계에 뉴라이트들이 내세운 가설들은 충격을 주면서, 스스로 깨달아 행동할 수 있는 좋은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역사에서 보여지듯이, 거짓과 왜곡이 진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독재정권이 아무리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노력을 했지만, 진리와 자유를 원하는 거대한 국민들의 뜻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든 김기협 선생의 주장들 중에 하나는, 아무리 뉴라이트들의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는 의견이었다. 가령 예를 들어, 기존의 주류 사학계에서는 일제의 식민지배 일체에 대해 거의 생래적인 거부 반응을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무조건적인 거부보다는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사실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과 함께, 상호간에 폐쇄적인 학문 간의 교류의 틀을 깨고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가 있었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가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가져 왔고, 민주주의에 우선하는 개발독재 주장은 정말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가설들이다. 게다가 오로지 경쟁을 통한 성공제일주의와 시장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은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뉴라이트들의 면면을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들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 그들의 본질을 빨리 알게 돼서 기쁘기도 하다.

*** 123페이지에 나오는 대동아전쟁은 보통의 경우, 일본이 1941년에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1938년의 경우라면, 1937년 노구교 사건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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