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불황기에 있어 출판계의 또 다른 마케팅 전략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소위 ‘스크린셀러’로 최근 화제를 몰고 있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중단편선 <다른 남자>를 읽었다. 물론 이 책의 타이틀인 <다른 남자> 역시 작년에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영화화가 되었을지 궁금하다.

모두 6편으로 구성된 <다른 남자>는 독일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가 된다. 법률가 출신인 작가는 사물을 보는데 있어, 특히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는 인간관계 역시 예외 없이 냉정한 법률가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녀와 도마뱀>에서는 독일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서재에 걸린 “소녀와 도마뱀”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자란 나는 그 그림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전쟁 중에 판사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어느 유대인 화가로부터(르네 달만) 예의 그림을 입수하게 된 경위와 떳떳치 못한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 알게 된다. 이것은 마치 전전세대와 전후세대를 가르는 기준점처럼 작용을 하면서, 아버지 세대의 잘못까지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외치는 독일 신세대의 그것처럼 들린다.

<외도>와 타이틀 <다른 남자>에서는 각각 통일 독일 그리고 외도 혹은 불륜이라는 주제로 독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법학자 출신답게 문장이 다소 무미건조할 수도 있지만, 본질을 꿰뚫는 시각은 더없이 예리하기만 하다. 우정을 가장해서 타인의 삶에 뛰어는 사람도 그리고 아내가 죽고 난 뒤 알게 된 아내의 불륜에 대해 분노하는 이에게도 모두 시간은 공정하다. 그런 감정들이 휘발되고 남은 자리에는 공허함만이 자리할 뿐이다.

<다른 남자>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글은 바로 하이네의 글에서 따왔다는 <청완두>였다. 두집살림도 아니고 무려 세집살림을 마다하지 않는 토마스의 삼중생활이 놀라웠다. 68세대로 성공한 중년의 삶을 보내고 있는 토마스는 건축자이자, 아마추어 화가 그리고 프로젝트 파트너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제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세 명의 여성들과 스릴 넘치는 사랑의 곡예를 펼친다. 슐링크는 이 글에서도 역시 <다른 남자>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결혼의 위기 그리고 상호신뢰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이렇게 <청완두>에서 클라이맥스를 보여준 슐링크는 <아들>과 <주유소의 여인>을 통해 하강곡선을 타기 시작한다. 어느 남아메리카 국가의 감시단으로 파견된 아버지의 여정을 그리고 다시 중년의 권태기에 빠진 부부가 떠난 로드트립에서 갑작스러운 일탈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독일적”이라는 표현은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다른 남자>에 나오는 부부간의 혹은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와 소통의 부재는 그런 독일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전 세계적 현상의 편린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아무래도 작가가 남성이어서 그런진 몰라도 모든 이야기들은 철저하게 남성의 시선에서 진행이 된다. 개인적으로 6개의 중단편 중에서 하나 정도는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는 2차 세계대전 발발 70년이 그리고 통일 독일이 출현한지로는 20년이 되는 해이다. 여전히 독일에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화해와 통합 그리고 소통이라는 주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다룬 문학 작품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것도 유로 시대가 아닌 마르크 시대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 갤러리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 2
김영범 지음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올 초에 ‘철학과 고전을 읽자’를 목표로 세웠었는데 아쉽게도 고전이라고 부를만한 책도 그리고 철학책도 지금껏 한 권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철학갤러리>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목표를 이룬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김영범 작가는 고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로부터 시작을 해서 현대 철학자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모두 51명의 철학자와 4개의 학파를 통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양 철학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조명한다.

역시 사유를 근간으로 하는 철학은 모든 사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근원과 본질에 대한 질문인 아르케(arche)로 시작이 된다. 물론 예의 질문은 인류가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반복될 질문일 것이다. “도대체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간단한 질문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하나의 화두로 다가왔다.

그 후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고대 철학은 완성기로 접어든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신비주의적 경향에서 영혼과 정신을 분리해내면서 자연철학의 기초를 닦기 시작한다. 그는 문답법을 통해, 사람들이 덕(arete)을 얻기를 원했다. 게다가 기원전 399년에 위험한 사상가로 지목이 되어 끝내 독배를 마시기도 한다.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다시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 이원론과 일원론이라는 걸출한 논리도 자신만의 철학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이상주의자였던 플라톤은 형상철학을 통해 모든 것은 이데아를 베낀 것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철인이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이상 국가를 <국가>를 통해 이야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이원론을 대신 일원론을 주창하면서, 질료와 형상의 관계를 통해 사물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려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학문들을 집대성한 고대 최고의 철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지만 서양철학은 곧 중세라는 암흑기를 맞이하면서, 철학이 신학의 시녀로 격하되는 비운의 운명을 맞게 된다.  중세 천년을 지배한 스콜라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완성이 되고, 모든 이들의 사고를 신 중심의 사고에 얽어매게 되었다. 하지만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을 타고, 고전의 부활 그리고 인문주의의 발달은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다시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의 회귀를 가져 오게 된다.

역시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말처럼 이 시대의 극적인 변화를 대변해 주는 말도 없을 것 같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그리고 라이프치히로 이어지는 대륙의 합리론자들에 맞서 영국에서는 로크, 버클리 그리고 흄과 같은 경험론자들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독일의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인류 사유의 한 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전히 칸트의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헤겔의 변증법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 자체가 어려운 탓인지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 역시 다시 한 번 철학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 전개되는 현대철학자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일천한 지식 때문인지 급속하게 이해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작년에 읽었던 강영계 선생의 책인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철학의 끌림>에서도 느꼈던 건데 마르크스를 철학자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마르크스를 철학자라기보다는 사회과학자라고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서양철학의 전반적 흐름을 되새겨 보는데 확실히 <철학갤러리>는 뛰어난 구성과 상반되는 관계에 있는 철학자들을 배치하고, 또 중요한 주장이나 사상들을 탁월하게 톺아내고 있다. 하지만 “서양철학갤러리”가 아닌 이상에야, 동양의 철학들도 서양철학 못지않게 다루어 주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울러 폭넓은 주제의 철학 사상가들을 다루는 것도 좋지만, 그들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탈주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리 차일드의 그 유명한 잭 리처 시리즈에 드디어 입문을 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이게 바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전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타부타 군더더기는 빼고 바로, 알짜배기들만 골라내서 서술하는 사실주의 기법의 진수, 게다가 잭 리처라는 그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절대 당황하지 않고 어깨를 움찔하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전혀 문제없어’라고 말해주는 캐릭터는 금상첨화였다.

잭 리처가 1997년에 리 차일드와 함께 첫 방랑길에 들어선 이래 모두 12편의 작품들이 소개가 되었다. 그 말인 즉은 해마다 리 차일드는 잭 리처 시리즈를 발표해 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올해 역시 13번째 작품인 <내일로 떠난>(Gone Tomorrow)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잭 리처의 두 번째 모험의 시작은 시카고의 세탁소에서 시작된다. 정말 기묘한 우연에 얽히게 되면서, 유능하며 미모의 연방수사관 홀리 잭슨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3인조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어떠한 단서도 없이 잭과 홀리는 어디론가 끌려간다.

이후에 전개되는 과정은 홀리의 FBI 동료들과 그녀의 아버지인 합참의장 존슨 장군의 구출작전이다. 하지만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전 미국이 휴일 모드로 돌입한 가운데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홀리를 구하는 대규모작전의 승인불가가 떨어진다. 자, 이제 그녀의 몇 명 안 되는 그녀의 동료들과 존슨 장군 휘하 몇 명의 해병들만으로 그녀를 구출해야 한다.

이야기의 구성은 이처럼 단순하다. 연방수사관이 실종/납치되었고 그녀를 찾아라. 하지만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고, 납치범들은 왜 그들이 홀리를 납치했는지 전혀 그 이유를 알려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축구를 하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되어져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리 차일드는 처음부터 주요 캐릭터에 이런 제한을 두고 게임을 시작한다. 진짜 주인공 잭 리처는 자신뿐만 그녀를 지켜야 한다. 잭,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홀리 수사관을 구출해 내라구.

잭 리처의 프로파일은 화려하다. 한 마디로 말해 내추럴 본 솔저(natural born soldier)로 태어났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흠잡을 데 없는 군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군인들은 한 개도 받긴 힘든 다양한 훈장들을 받았다. 앞으로 시리즈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특등사수로서의 출중한 능력은 해병 사격대회인 윔블던에서 비(非)해병으로 유일한 우승전력이 증명해준다. 게다가 시계가 없어도 경험치에 의해 시간을 계산해내고, 자다가도 알아서 척척 일어나는 모습은 거의 완벽 그 자체였다. 뭐 이런 주인공이라면 어느 추리소설작가라도 한 번 탐내볼만 하지 않은가.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총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민간인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고, 자신들의 인구보다도 많은 몇 억정의 총기들이 거래되고 있는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원인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그건 미국 수정헌법 제2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무기휴대의 권리”에서 민간인들의 총기 소지 권리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내용은 <탈주자>에서 중요한 갈등 요소로 등장하게 되는 몬태나 민병대와 같은 무장단체의 존립기반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과대망상에 빠진 시대착오적인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책에서도 언급이 되다시피 다섯 명의 한 명 꼴로 미국인들은 정부에 반대해서 분연히 저항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리 차일드는 말하고 있다. 그가 선량한 미국인들을 선동하려는 게 아니라면 근거가 있는 발언이길.

이제는 좀 진부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여전히 유효한 내부의 배신이라는 전통적인 소재 역시 스토리 전개에 활력을 더해 준다. 도대체 정체와 그 목적을 알 수 없는 단체에 억류되어 있는 잭 리처는 자신과 홀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리고 연방수사관들의 움직임이 적들에게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직 군수사관 다운 직감으로 파악해낸다. 이 미스터리는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독자들의 긴장을 유지시켜 주는데 지대한 공헌을 해준다.

마지막으로 잭 리처의 적들이 난공불락의 아지트로 삼은 몬태나 주 요크 마을에 대한 설정이었다. 구글 맵으로 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요크 마을과 그 주변을 위성사진으로 찾아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시카고에서부터 요크 마을에 이르는 대략적인 이동 경로가 한 눈에 들어왔다. 마치 현장 스케치를 하듯 절묘하면서도 디테일한 작가의 묘사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그런 곳이라면 충분한 자금과 무장을 갖춘 어느 조직이 연방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을까.

역시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떠도는 방랑자답게 사건을 모두 해결하고 복수까지 마무리한 뒤에, 홀리와의 짧은 로맨스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어깨를 한 번 움찔해 보이고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미련 없이 다시 방랑길에 나서는 잭 리처.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뱀다리] 책 표자에 “사립탐정”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탈주자>를 보면서 잭 리처가 사립탐정이라고 추리할만한 그 어떤 단서도 발견해내지 못해서 책을 읽는 내내 눈에 거슬렸다. 그 누가 잭에게 사건의뢰를 했던가? 굳이 그를 특정직업군에 분류하고 싶다면 자신이 말한 대로 문지기(bouncer)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40년 전에 발표된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을 읽었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마더 나이트>(1961)를 읽으면서 커트 보네거트의 팬이 되어 버렸다. 그는 이십대 초반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그 유명한 벌지전투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1945년 2월 드레스덴 대폭격을 경험하면서 반전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 작가의 본능과도 같은 경험치로 자신의 드레스덴 경험이 창작의 소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후 거의 20년간 준비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류역사상 히로시마의 원폭투하보다도 더 많은 인명피해를 낸 드레스덴 공습을 글로 표현해 낸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기 스스로도 정신분열증적인 소설이라는 말을 책의 서두에 적어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제5도살장>의 구성은 참으로 독특하다. 자전적인 이야기의 재구성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드러내면서도, 빌리 필그림이라는 얼치기 사병을 내세워서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투영시킨다. 전혀 전쟁과는 맞지 않는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에나 들어맞을 인물이 삶과 죽음이 치열하게 교차하는 전장으로 내몰린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 같은 전쟁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 빌리 필그림은 집안 좋은 와이프 발렌시아를 맞아 검안사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 구조라면 얼마나 좋겠으련만, 보네거트는 SF 작품을 다룬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의 사실과 트랄팔마도어라는 외계행성에 납치된 빌리 필그림의 시간여행으로 뒤죽박죽으로 버무리기 시작한다. 하긴 전쟁이라는 미치광이 놀음을 단순하게 기술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빌리 필그림에 대해 세상에서는 미치광이로 판정을 내린다. 아내는 비행기 사고가 난 자신을 보러 오는 도중에 일산화탄소로 사망하고, 시집간 딸조차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트랄팔마도어 타령을 하지 않았더라도 빌리 필그림을 이해할만한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리라.

블랙유머의 대가답게, 빌리 필그림을 따라가는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시선은 건조하고 냉랭하기만 하다. 물론 전혀 전쟁에 나선 병사 같지 않고, 전쟁을 희화화하는 것 같은 빌리 필그림의 옷차림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포로수용소의 연극무대에서 신데렐라가 신었던 은색 장화를 신고, 여자들이 하는 외토시에 커튼을 로마시대 토가처럼 두른 어릿광대 빌리 필그림의 모습은 “웃기지도 않는 전쟁”에 대한 보네거트의 조롱으로 다가온다.

<제5도살장> 읽기는  책의 어느 부분에서 나온 것처럼, 경이로운 순간들을 한 순간에 보는 경험이었다. “반전”(反戰)이라는 빤한 주제를 과연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독자들의 예상을 단박에 부숴버리는 작가의 엉뚱한 파괴력이 느껴졌다. 유사 이래 인류와 함께 해온 전쟁이라는 현실이,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역설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내고 있었다.

전작 <마더 나이트>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하워드 W. 캠벨 주니어의 카메오 등장 또한 주목할만한 설정이었다. 전쟁포로로 도급노동을 위해 드레스덴의 시럽공장에 끌려와 있던 빌리 필그림은 나치의 선전요원으로 포로들의 생활에 대한 논문도 쓴 적이 있다는 하워드 W. 캠벨 주니어와 만나게 된다. 자신이 개발해낸 캐릭터를 이렇게 유용하게 사용을 하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미국의 소설가, SF작가, 에세이스트, 풍자가, 불가지론자, 유니테리언, 포스트모더니스트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 세계에 너무 늦게 발을 들여 놓게 돼서 아쉬울 따름이다. 개인적 취향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비꼬는 그의 작법 스타일이 아주 마음에 든다. 계속해서 그의 작품들을 섭렵해 나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트 보네거트(1922~2007)의 책과 첫 만남을 가졌다. 책을 읽기 전에 책날개와 온라인 서점의 저자 정보에 실린 그의 간단한 약력을 살펴보니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벌지 전투에서 생포되어 독일에서 포로 생활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 때의 경험들이 나중에 그의 저술로 발표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에서 보네거트 특유의 풍자와 블랙유머가 스며 있다고 하는데 이 <마더 나이트>에서도 자신의 장끼들을 유감없이 펼쳐 보이고 있었다.

“하워드 W. 캠벨 2세의 고백록”이라는 제목으로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간첩으로 암약한 하워드 W. 캠벨 2세라는 가공의 인물의 파란만장한 회고가 전개된다. 그가 자신의 회고록을 작성하는 시기는 공교롭게도 실재했던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어 예루살렘에 갇혀 있던 시기와도 겹친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엔지니어인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갔다가 그곳에서 성장하면서 나치당 이념에 충실한 극작가 된 하워드 W. 캠벨 주니어는 전쟁 전 프랭크 위르타넨이라는 미국 정보 장교에게 포섭되어 미국을 위해 활동을 한다. 하지만 너무나 유능했던 하워드 W. 캠벨은 나치의 고위 관료들인 히믈러와 괴벨스까지 감동해 마지않을 정도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나치의 선전전을 수행한다. 유일하게 그를 간첩이라고 의심한 사람은 그의 독일인 장인인 베르너 노트 정도였다.

전쟁 중에 사랑하는 아내 헬가 노트를 잃은 하워드 W. 캠벨은 전쟁이 끝나고, 포로로 잡히지만 프랭크 위르타넨의 도움으로 미국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로 이주해서 신분을 감추고 조용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기구한 그의 삶은 하워드 W. 캠벨이 순탄한 삶을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소련 간첩이자 화가를 자처하는 조지 크래프트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게 되면서, 캠벨의 삶은 냉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보네거트의 <마더 나이트>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어서 어디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나치의 전쟁범죄인 유태인 홀로코스트에 의한 분노에서부터, 전쟁 중에 소모품처럼 사용되고 전후에 잉여 전쟁 물자처럼 내팽개쳐진 캠벨의 억울함 그리고 그의 전쟁 중에 행동에 감명을 받고 그를 숭배해 마지않는 미국 내 극우파 파시스트들의 어설픈 망상에 이르기까지 보네거트의 냉철하면서도, 진실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연초에 읽은 칠레 출신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처럼 보네거트의 <마더 나이트> 역시 순전한 소설적 허구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순간에도 여전히 어디에선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배척하고 자신들만이 절대적인 선이라는 망상에 빠져 신들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치졸한 인종차별과 폭력을 옹호하고 있는 국수적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대한 보네거트식의 신랄한 비판이 <마더 나이트>에 담겨져 있다.

물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풍자와 블랙유머는 어쩌면 딱딱할 수도 있는 책의 주제들에 부드러운 윤활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전후 뉴욕에서 잉여 전쟁물자들을 구입해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하워드 W. 캠벨 자신이 잉여물자일지도 모르겠다는 냉소적인 생각에 도달하게 해준다. 그가 나치를 위해 발표한 작품들을 베를린 공략 당시 처음으로 베를린에 진입한 소련 병사가 입수해서, 자신의 (공산주의식) 창작으로 발표를 해서 대성공을 거두는 에피소드 역시 멋진 설정이었다.

물론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과거를 잊으려는 마음과 한편으로 나치 전범들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인류의 이름으로 법정에 세우겠다는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의 대조적인 모습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책의 초반에 등장한 아우슈비츠의 “연탄”이라는 표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소설을 읽어가는 듯한 구성으로, 과거 현재 그리고 다양한 정치적 상황들을 배경으로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가공해낸 커트 보네거트의 내공이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그런 멋진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