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불황기에 있어 출판계의 또 다른 마케팅 전략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소위 ‘스크린셀러’로 최근 화제를 몰고 있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중단편선 <다른 남자>를 읽었다. 물론 이 책의 타이틀인 <다른 남자> 역시 작년에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영화화가 되었을지 궁금하다.

모두 6편으로 구성된 <다른 남자>는 독일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가 된다. 법률가 출신인 작가는 사물을 보는데 있어, 특히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는 인간관계 역시 예외 없이 냉정한 법률가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녀와 도마뱀>에서는 독일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서재에 걸린 “소녀와 도마뱀”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자란 나는 그 그림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전쟁 중에 판사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어느 유대인 화가로부터(르네 달만) 예의 그림을 입수하게 된 경위와 떳떳치 못한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 알게 된다. 이것은 마치 전전세대와 전후세대를 가르는 기준점처럼 작용을 하면서, 아버지 세대의 잘못까지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외치는 독일 신세대의 그것처럼 들린다.

<외도>와 타이틀 <다른 남자>에서는 각각 통일 독일 그리고 외도 혹은 불륜이라는 주제로 독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법학자 출신답게 문장이 다소 무미건조할 수도 있지만, 본질을 꿰뚫는 시각은 더없이 예리하기만 하다. 우정을 가장해서 타인의 삶에 뛰어는 사람도 그리고 아내가 죽고 난 뒤 알게 된 아내의 불륜에 대해 분노하는 이에게도 모두 시간은 공정하다. 그런 감정들이 휘발되고 남은 자리에는 공허함만이 자리할 뿐이다.

<다른 남자>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글은 바로 하이네의 글에서 따왔다는 <청완두>였다. 두집살림도 아니고 무려 세집살림을 마다하지 않는 토마스의 삼중생활이 놀라웠다. 68세대로 성공한 중년의 삶을 보내고 있는 토마스는 건축자이자, 아마추어 화가 그리고 프로젝트 파트너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제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세 명의 여성들과 스릴 넘치는 사랑의 곡예를 펼친다. 슐링크는 이 글에서도 역시 <다른 남자>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결혼의 위기 그리고 상호신뢰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이렇게 <청완두>에서 클라이맥스를 보여준 슐링크는 <아들>과 <주유소의 여인>을 통해 하강곡선을 타기 시작한다. 어느 남아메리카 국가의 감시단으로 파견된 아버지의 여정을 그리고 다시 중년의 권태기에 빠진 부부가 떠난 로드트립에서 갑작스러운 일탈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독일적”이라는 표현은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다른 남자>에 나오는 부부간의 혹은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와 소통의 부재는 그런 독일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전 세계적 현상의 편린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아무래도 작가가 남성이어서 그런진 몰라도 모든 이야기들은 철저하게 남성의 시선에서 진행이 된다. 개인적으로 6개의 중단편 중에서 하나 정도는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는 2차 세계대전 발발 70년이 그리고 통일 독일이 출현한지로는 20년이 되는 해이다. 여전히 독일에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화해와 통합 그리고 소통이라는 주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다룬 문학 작품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것도 유로 시대가 아닌 마르크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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