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
정세영 글.그림.사진 / 이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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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서점에서 이 책을 찾아보았는데 여행 에세이가 아닌 요리 코너 평대에 당당하게 전시가 되어 있었다. 책을 휘리릭 넘기는 전수검사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단단하게 여며 있는 포장에 포기해 버렸었다. 나중에 다시 만난 책은 바로 다른 이에게 포장을 해서 선물할 수 있게 친절하게도 받는 이와 보내는 이의 주소창까지 그려져 있었다. 참 신기하기도 해라.

하지만 책을 읽을 적에는 거추장스러워서 다른 포장들은 모두 커터 칼로 걷어내 버렸다. 선물하지 않고, 내가 소장할 목적이라면 책장을 넘기는데 불편해서라는 이유를 달고서 말이다.

작년과 올해 두 권의 스페인에 관한 에세이 책들을 만나고 나서,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스파냐에 가보고 싶어졌다. 특히 김문정 씨가 쓴 <스페인은 맛있다!>를 통해 본격적인 스페인 요리의 정수들과 만나볼 수가 있었다. 나중에 스페인에 가게 되면 반드시 새끼돼지 통구이 요리인 코치니요를 꼭 먹어 보고 싶다.

<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의 작가 정세영 씨는 사진작가 출신으로, 이 책의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을 도맡아서 해냈다.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 그 중에서도 알바이신이라는 작은 마을에 정착한 지은이는 개인적인 번뇌를 다스리며, 스페인과 그 스페인에 사는 이들과 사랑에 빠진 이의 13가지 스페인 요리법과 그에 뒤따르는 13편의 에세이들이 마치 숨겨진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빠에야를 필두로 해서, 냉야채수프인 가스파쵸, 또띠야 그리고 맨 마지막에 “버터 소스와 생선살 찜”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스페인 요리들을 소개한다. 사실 만드는 방법이 너무 쉬워서 “아니, 이게 다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요리법은 다음에 나오는 짧은 에세이에서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위한 애피타이저 정도라고나 할까. 기본적으로 요리와 음식에는 나눔의 미학에 배어 있다. 자기 자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만드는 요리에 굳이 셋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만든 요리들을 서로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교감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우리네 인간사의 큰 즐거움이리라.

정세영 작가의 에세이는 마지막 장을 다 덮고 나서도 깊은 공명을 울리는 인연들이 소개된다. 어느 좌파 부부가 입양한 한국 아이들에 대한 정말 인류애적인 사랑이, 10년 전 우연히 동양학을 전공한 스페인 처녀(?)와의 함께 한 열흘간의 만남 등이 그가 직접 그린 현란한 식재료들의 일러스트 사이를 휘젓는다.

이 책을 순식간에 다 읽어 버린 내가 과연 이 책에 나오는 레시피 대로 무엇 하나라도 만들어볼 수 있을까? 아마 그렇다면 내가 가장 쉽다고 생각한 과일 펀치인 <상그리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 표지의 “키친 에세이”라는 말이 입 안에서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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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지음 / 시아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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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난생 처음으로 유럽이라는 땅에 발을 디뎠다. 다른 이들은 유럽 몇 개국하는 아주 야심찬 계획으로 유럽에 간다고 하는데, 난 파리와 로마만이 나의 목표였다. 사실 파리는 값싼 비행기 값 때문에 선택한 거였고 내 주목적지는 장장 십년에 걸쳐 읽고 있던 로마였다. 그리고 그 로마에서 우연한 기회에 자전거 나라 바티칸 투어를 하게 되었는데, 아무런 사전 공부 없이 간 나에게 큰 도움이 됐었다. 사실 나중에 되돌아보니 로마보다 파리가 더 좋았었다. 전직(현직?) 개그작가 타이틀을 내세우는 양나연 작가의 <빠담 빠담, 파리>는 그렇게 두 가지 면에서 나와 접점을 이루고 있었다. 파리와 그녀의 두 번째 직장이었던 자전거 나라.

나중에 다시 한 번 파리에 가게 됐었는데,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유럽 여행을 하는 이들 중에는 그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에 리프레쉬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빠담 빠담, 파리>의 지은이 역시 비슷한 케이스로 파리에 가이드 일을 하러 나서게 된다. 어느 생일날, 강도를 만나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경험한 그녀는 그전에 갔던 파리의 추억을 떠올리며 파이 가이드를 지원하고, 남미 여행길에 나서게 된다.

여차저차해서 그동안 자신의 커리어 전부를 바쳤던 어느 유명 코너의 개그 작가일을 그만 두고, 당차게 파리에서 생소한 가이드 일에 도전을 하게 된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32살에 시작한 파리에서 생활. 발로 뛰는 가이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자전거 나라 파리 팀의 실장님의 지적으로 그야말로 눈 감고도 파리 구석구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체험을 시작한다.

그렇다 <빠담 빠담, 파리>는 양나연 작가가 파리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악전고투기이다. 파리를 찾는 이들이 모두 낭만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파리의 로망을 기대하지만, 정작 파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신산스럽게 다가온다. 사실 파리에 갔을 적에, 파리에 사는 파리지엥들은 모두 일상의 삶을 살지만 관광객 복장에 목에는 카메라를 메고 나선 내 자신을 보며, 그렇게 생뚱맞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출근하는 인파들로 북적대는 강남 한복판에 관광을 하겠다고 나선 관광객의 비애라고나 할까?

그녀의 주 타깃은 바로 가장 많은 한국 사람들이 찾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이다. 첫 파리 행에서 만난 한국 분들이 2박 3일 안에 파리를 마쳐야 해~!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벙찜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유효한 것 같다. 아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로마에서 바티칸 투어를 해주셨던 이름 모를 자전거 나라의 가이드 분은 그놈의 유레일패스가 유럽 여행의 묘미를 망친다고 말했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평생에 한 번 할까말까한 유럽에서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아마 그런 이들을 위해, 가이드야말로 효율적인 여행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양나연 씨의 가이드 도전기는 쉽지가 않다. 우선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영어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숙달된 가이드의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게다가 오스트리아 세미나에서 만난 짱가이드(자전거 나라 사장님?)의 추상같은 호령과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격려 대신 호랑이 같은 닦달은 그녀로 하여금 과연 자신의 선택이 옳았던 가에 대한 깊은 회의감마저 심어주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팬들의 박수를 먹고 산다는 말처럼, 가이드들은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투어에 참석한 손님들의 칭찬글을 먹고 사는가 보다. 1년 여의 가이드 생활을 통해 박수와 수많은 칭찬글들을 받았겠지만 가이드 초창기의 그것들은 참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나 보다. 마치 시청률 1~2%에 목숨 거는 작가 시절처럼, 칭찬 글 하나는 고래 아니 가이드들을 브레이크 댄스에 못하는 랩까지 하게 만든다고 한다.

확실히 작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술술 넘어 가는 글맛이 느껴진다. 사실 개인적으로 잘 읽히는 글들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양나연 씨의 글은 참 맛깔나면서도 그 스피드 넘치는 흐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어떤 이들이 쓴 파리 이야기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지극힌 주관적인) 부분들이 있는데, 양나연 씨의 글은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동료 배낭여행자의 글처럼 편안하고 부드럽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자신의 사전 경력이 너무 전면에 나서는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잘 나가는 개그 프로그램의 작가라는 경력이 자랑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보통의 시청자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누가 쓴거라는데 관심이나 두기나 하나? 게다가 최근에 읽은 <런던 프로젝트>, <쏘 핫 캘리포니아> 같은 책들의 저자들이 펴낸 비슷한 코스를 밟아 낸 에세이들과 크게 다른 변별점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한 꼭지 정도는 일반적이지 않은 파리의 숨겨진 보석 같은 장소들을 가이드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내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쉽게 도전할 수 없을 장기간의 파리 행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결국엔 사랑마저 쟁취한 그녀의 용감한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랑과 여행을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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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고스트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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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 <20세기 고스트>의 작가인 조 힐이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다. 하지만 한 세기 전에 살았던 미국 출신의 노동운동가 조 힐이, 내가 찾는 작가에 앞서서 등장을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형을 당했다고 하는데, <20세기 고스트>의 작가는 바로 그 이의 이름을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작가 조 힐의 정체는, 놀라지 마시라, 바로 호러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의 두 번째 아들이란다.

모던 호러 장르의 작가라는 조 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거장 아버지의 존재는 뛰어 넘어야 할 산인 동시에, 든든한 후원자의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모두 15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20세기 고스트>는 먼저 영국에서 출간이 되고, 나중에 조 힐의 모국 미국에서 출간되어 많은 호평과 찬사를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신간 공포 걸작선>은 책에 실린 작품 중에 최고로 아찔한 공포를 선사해 준다. 어느 공포 소설을 출간하는 잡지의 편집을 맡고 있는 주인공에게 오싹한 내용의 <단추소년>이라는 글이 날아온다. 예의 글을 접하는 순간, 주인공은 짜릿한 흥분을 느끼고 원작가를 찾아 나서는 여행길에 오른다.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진 <신간 공포 걸작선>은 소설 속의 소설, 이어지는 서스펜스와 공포는 다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어느 퇴락해 가는 극장에 출몰하는 여자 유령을 소재로 한 <20세기 고스트>는 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우리네 삶 속에서 녹아든 존재론적 입장에서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팝 아트>에서는 어려서 만난 절친 아서 로스, 다른 이름으로는 아트라는 공기주입식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이 이야기는 모던 호러보다는 ‘모던 판타지’에 더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 즐거운 교류를 하던 아트를 잃고 난 주인공이 결말에 가서는 다시 공기주입식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환상소설의 전형이 전개된다.

그 외에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오마주처럼 보이는 <메뚜기 노랫소리를 듣게 되리라>, 흡혈귀 혹은 내부의 적에 대한 공포를 다룬 <아브라함의 아들들>, 어려서 경험한 야구의 협살의 트라우마가 떠오르게 되는 <협살 위기>, 실패한 배우가 고향으로 돌아와 오래된 친구를 만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바비 콘로이, 죽은 자의 세계에서 돌아오다>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소재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중단편집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빠른 전개와 결말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약점으로는 캐릭터에 대한 적응력을 들 수가 있겠다. 중단편들은 대개의 경우 그 길이가 짧기 때문에 캐릭터의 소개와 사건의 진행이 장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새 이야기의 종점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적응. 중단편의 장점과 약점은 양날의 칼처럼 그 예리함을 번득인다.

조 힐이 나고 자란 미국 뉴잉글랜드(메인 주)의 지방색이 소설의 곳곳에서 읽을 수가 있었다. 귀에 익숙한 월든 호수 같은 지명은 물론이고, 셀틱스 팀이라든가 양키즈 같은(물론 뉴욕 양키즈는 전국구팀이긴 하지만) 이름들이 등장할 때마다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아버지 스티븐 킹이 쓴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가 연상되지 않을까?

공포 소설의 정석처럼 보이는 유령 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흡혈귀, 흉측한 벌레로의 변신 이야기, 하늘을 나는 망토 이야기 그리고 B급 좀비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게 되면서 만난 옛 연인과의 훈훈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공포, 판타지, 감동을 아우르는 조 힐의 단편세계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후속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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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문학 - 어울림의 무늬, 혹은 어긋남의 흔적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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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날개를 펴니 <영화인문학>의 저자 김영민 씨가 철학자 그리고 숙명여대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철학자가 쓴 영화비평이라, 아니 분석이라고 해야 하나? 한 때 영화평론의 꿈을 꾸었던 사람으로 과연 철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영화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인문학>의 영어제목은 책의 표지에 박힘 글씨로 “Film & Humanities"라는 말과 함께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모두 해서 27편의 영화들이 차례로 나열되어 있었다. 이 책을 펴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중에 내가 본 영화는 몇 편이나 되는지 조용하게 꼽아 봤다. 내가 본 영화는 모두 6편이었다.

각각의 영화 분석들은 우선 예의 영화들의 엑기스처럼 다가오는 스틸샷 한 장명과 저자가 신중하게 고른 부제로 시작된다. 해당 영화를 만든 감독들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페이지 분량의 썰을 푼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인 영화를 인문학적 깊이를 가지고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말미에는 지은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조금 달아 놓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대략 이런 구성으로 책이 진행된다.

이태리 영화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라 돌체 비타(아름다운 인생)>으로부터 그 제목을 따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김지운 감독의 <아름다운 인생>이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밟힌다. 불가의 선문답을 연상시키는 화두로 시작한 이야기는, 보스(김영철 분)와 선우(이병헌 분)의 갈등 구조를 타고 관객들을, 그리고 여기서는 독자들을 압박해 나가기 시작한다. 상명하복이 절대적인 조직 세계에서 이유와 원인의 관계를 따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마치 무한 반복되는 우리네 일상의 재서술(再敍述)의 그림자가 얼비친다.

<가족의 탄생>과 <바람난 가족>편에서는 21세기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고 있는 가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예의 핵가족 시스템은 채 1세기가 되지 않은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모든 관계가 모름지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가족의 구성과 본질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건 아닐까? 특히 <바람난 가족>에서 남편을 아웃시키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욕망이 분출되며 마지막으로 새로운 생산성을 기대해 본다는 저자의 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가장 최소단위인 가족 내의 창의적 불화가 과연 생산성에 어떤 식으로 공헌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냥 우스운 코미디 영화로만 봐왔던 <넘버 쓰리>와 송능한 감독에 대한 날카로운 픽업이 눈에 띄었다. 별다른 내러티브 없이 삼류 캐릭터들의 좌충우돌을 사회적 풍토와 문화적 관습에 대한 냉소로 그려낸 감독의 역량을 저자는 말한다. 땀을 흘리지 않는 불한당(不汗黨)인 건달과 신부의 세 가지 공통점(183쪽)에 대한 언급은 시대상에 대한 풍자로 아주 제격이었다. 아울러 시대를 풍미한 저열한 자본주의와 조폭의 결합을 분노가 스며든 판타지로 재구성해낸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만난 영화와 분석들 중에 최고로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꼽고 싶다. 한 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로 생각했던 이의 원작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한 시대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엄석대와 한병태가 등장을 한다. 한 초등학교에서 마치 제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엄석대에, 서울에서 전학 온 한병태가 온갖 불합리와 권위주의에 대항해서 외로운 도전장을 던진다. 하지만, 온갖 수단과 모략으로 이미 공고해져 버린 엄석대의 체제는 한 개인의 힘으로 전복될 수 없을 정도로 공고하기만 하다. 그 결과, 한병태는 엄석대 일당에게 투항해서 변절의 달콤함을 누린다. 작가가 말하는 비판적 연대야말로 그들의 행악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라는 주장이 귓가에서 맴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에서 조금 가벼운 영화평 정도의 글들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영민 교수가 책에서 사용하는 어휘들은 선뜻 캐치가 되지 않고, 어디에선가 분절되는 느낌이 계속해서 들었다. 예를 들어 “메타적 시선” 같은 경우에 도대체 무슨 뜻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독자들이 이해하기에 좀 더 쉬운 말들을 사용해서 이야기들을 풀어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한 가득이다. 아울러, 말미에 실려 있는 개념어집과 한글용어집을 먼저 읽을 것을 권유한다. 이 부분을 먼저 습득하고 나서, 책을 읽으면 부러 사전을 찾는 수고를 덜 수가 있고, 곳곳에서 튀어 나오는 낯선 단어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

대개 영화는 사람들의 이야기[내러티브]에 근거한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부대끼며 빚어내는 어울림의 무늬[人紋,] 바로 그것을 향해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감독은 큐 사인을 외쳐댄다. <영화인문학>을 통해, 아직 보지 못한 영화들 혹은 이미 본 영화들에서 미처 잡아내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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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전쟁 -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 우리역사 진실 찾기 2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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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학과 출신의 재미사학자라는 특이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백지원 씨의 <조일전쟁>을 읽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 대전란을 나름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전이라는 시각으로 재해석한 아주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일반적으로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국가인 우리나라가 육전에 강하고, 해양국가인 일본이 해전에 강할 것이라는 상식은 이 책을 읽는 동안 공중분해가 되고 만다. 조선 건국 이래, 이렇다 할 전쟁을 치른 적이 없는 조선의 육군은 그야말로 허수아비 같은 존재였고 무로마치 막부가 붕괴된 이래 120년간의 전국시대를 겪은 일본 육군은 세계 최강이었다는 것이 이 책을 쓴 백지원 씨의 주장이다. 게다가 문(文)보다 무(武)를 숭상하는 일본 사무라이들은 어려서부터 검술과 창술 등의 무예를 익혀, 실전에서 조선군을 상대할 때 일당백의 기량을 지녔다는 냉철한 분석을 시도한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지러운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을 정복하겠다는 터무니없는 과대망상증을 가지고, 천하를 품에 안은 후 몇 년간 치밀한 전쟁 준비 끝에 1492년 4월 조선정벌에 나서게 된다. 조선 정벌의 이면에는, 전국시대를 끝냈지만 평화가 정착되지 않았고 전투와 싸움에 이골이 난 사무라이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겠다는 무척이나 현실적인 계산이 뒤따랐다.

한편 저자의 표현대로 이웃나라 일본의 두목이 조선을 ‘식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동안, 조선에서는 주자성리학이 판을 치면서 저자가 꼽은 임진오적 중의 수괴에 해당하는 ‘등신’ 선조의 무능력함과 매일 같이 벌어지는 당쟁과 관료들의 부패로 인해 국가 기강은 바닥에 떨어지고, 국가 시스템이 마비될 지경에 다다르고 있었다. 게다가 동방의 왕국 조선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악랄한 신분제에 의한 차별로 인해 능력 있는 인재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펼칠 수가 없는 그야말로 ‘개 같은 나라’였다고 백지원 씨는 혹평을 하고 있다.

전쟁 발발 전에 일본의 침략이 임박했다는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가 방어시스템에 대한 재고는 물론이고 그에 대한 방비책이 전무했다는 사실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나마 훗날 성웅으로 꼽히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1년 2개월 전에 전라좌수사로 임명이 되면서, 남해 바다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맞짱을 뜰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것 정도를 꼽을 수가 있겠다.

자, 이제 본격적인 임진왜란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군인 출신 박통 시절에 동병상련 식으로 우상화가 진행된 상승장군(常勝將軍) 이순신에 대한 역사에 근거한 실체적 접근으로, 만들어진 신화를 구축(驅逐)하기 시작한다. 조선 해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은 일본군이 보유한 함선에 비해 화포 등의 무기가 잘 정비되어 있어, 해상포격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다. 임진삼대첩 중의 하나로 꼽히는 한산대첩 역시 이길 전투를 당연하게 이긴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오히려 13척의 함선으로 10배가 넘는 일본 해군을 상대했던 명량해전이야말로 이순신 장군의 빛나는 승리의 핵심이란다.

아울러 간신 이미지가 덧씌워진 원균과의 갈등 역시 전공에 대한 장계를 조정에 올리는데 있어 이순신이 페어플레이 하지 않아서 둘 사이가 틀어진 것이라고 조목조목 읊조리고 있다. 좀 더 나아가서 일본 해군을 쳐부수는데 있어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진 거북선의 활약 역시 지나치게 과장이 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사실 당시의 기술로 철갑을 두른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으며, 그 느려터진 기동력 때문에라도 일본군 박멸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뛰어난 무기였다면 왜 3~4척이 만들어진 다음에 다시 만들지 않았겠느냐는 저자의 주장이 어느 정도 먹히는 느낌이 들었다.

임진왜란 극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핵심으로 저자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 지적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첫 번째로, 조선을 돕기 위해 명군의 파병을 꼽고 있다. 사실 전쟁 다음 해인 1593년 1월 명군의 진공에 이은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탈환이야말로 임진왜란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일본군의 보급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한 전국에서 기의한 의병들의 활동 마지막 세 번째로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서의 활약이 그것이다. 조선 곳곳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의병들의 맹활약으로 원정군에게 필수적인 보급문제가 전선이 길어질수록 어려워졌다. 그래서 뱃길로 보급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남해바다에서 떡하고 버티고 앉아 일본 해군의 진로를 가로 막는 이순신 장군의 존재는 그야말로 일본 침략군에게는 눈엣가시 같았으리라.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오탈자를 유심히 보는 편인데, <조일전쟁>은 유난히도 오탈자가 많아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작가가 재미사학자여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았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오탈자가 많은지 정말 놀랐다. 게다가 주로 일본 지명과 인명에 대한 표기법도 통일되지 않아서 어디서는 도쿠가와가 도꾸가와로, 또 큐슈와 규슈가 병용되면서 헷갈리기도 했다.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모리 데루모토의 영지에 관해서도 425쪽에서는 120만석이라고 했다가 또 439쪽에서는 170만석이라고 되어 있고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데 있어서도 신중하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거슬렸다. 그러니 사소한 오탈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임진왜란 전체를 다루는 저자의 시각이 아주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쟁의 발발 원인으로부터 시작해서, 당시의 시대상, 경과, 전쟁에 관련된 인물들의 조명 그리고 전후의 영향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한 연구에 찬탄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뒷부분에 실린 10장 이후의 이야기들은 조금은 사족(蛇足)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야기가 임진왜란과 무슨 연관이 있나 싶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임진왜란을 다룬 <조일전쟁>을 통해 그동안 미처 모르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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