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지음 / 시아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2003년 6월, 난생 처음으로 유럽이라는 땅에 발을 디뎠다. 다른 이들은 유럽 몇 개국하는 아주 야심찬 계획으로 유럽에 간다고 하는데, 난 파리와 로마만이 나의 목표였다. 사실 파리는 값싼 비행기 값 때문에 선택한 거였고 내 주목적지는 장장 십년에 걸쳐 읽고 있던 로마였다. 그리고 그 로마에서 우연한 기회에 자전거 나라 바티칸 투어를 하게 되었는데, 아무런 사전 공부 없이 간 나에게 큰 도움이 됐었다. 사실 나중에 되돌아보니 로마보다 파리가 더 좋았었다. 전직(현직?) 개그작가 타이틀을 내세우는 양나연 작가의 <빠담 빠담, 파리>는 그렇게 두 가지 면에서 나와 접점을 이루고 있었다. 파리와 그녀의 두 번째 직장이었던 자전거 나라.

나중에 다시 한 번 파리에 가게 됐었는데,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유럽 여행을 하는 이들 중에는 그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에 리프레쉬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빠담 빠담, 파리>의 지은이 역시 비슷한 케이스로 파리에 가이드 일을 하러 나서게 된다. 어느 생일날, 강도를 만나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경험한 그녀는 그전에 갔던 파리의 추억을 떠올리며 파이 가이드를 지원하고, 남미 여행길에 나서게 된다.

여차저차해서 그동안 자신의 커리어 전부를 바쳤던 어느 유명 코너의 개그 작가일을 그만 두고, 당차게 파리에서 생소한 가이드 일에 도전을 하게 된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32살에 시작한 파리에서 생활. 발로 뛰는 가이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자전거 나라 파리 팀의 실장님의 지적으로 그야말로 눈 감고도 파리 구석구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체험을 시작한다.

그렇다 <빠담 빠담, 파리>는 양나연 작가가 파리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악전고투기이다. 파리를 찾는 이들이 모두 낭만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파리의 로망을 기대하지만, 정작 파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신산스럽게 다가온다. 사실 파리에 갔을 적에, 파리에 사는 파리지엥들은 모두 일상의 삶을 살지만 관광객 복장에 목에는 카메라를 메고 나선 내 자신을 보며, 그렇게 생뚱맞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출근하는 인파들로 북적대는 강남 한복판에 관광을 하겠다고 나선 관광객의 비애라고나 할까?

그녀의 주 타깃은 바로 가장 많은 한국 사람들이 찾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이다. 첫 파리 행에서 만난 한국 분들이 2박 3일 안에 파리를 마쳐야 해~!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벙찜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유효한 것 같다. 아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로마에서 바티칸 투어를 해주셨던 이름 모를 자전거 나라의 가이드 분은 그놈의 유레일패스가 유럽 여행의 묘미를 망친다고 말했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평생에 한 번 할까말까한 유럽에서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아마 그런 이들을 위해, 가이드야말로 효율적인 여행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양나연 씨의 가이드 도전기는 쉽지가 않다. 우선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영어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숙달된 가이드의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게다가 오스트리아 세미나에서 만난 짱가이드(자전거 나라 사장님?)의 추상같은 호령과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격려 대신 호랑이 같은 닦달은 그녀로 하여금 과연 자신의 선택이 옳았던 가에 대한 깊은 회의감마저 심어주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팬들의 박수를 먹고 산다는 말처럼, 가이드들은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투어에 참석한 손님들의 칭찬글을 먹고 사는가 보다. 1년 여의 가이드 생활을 통해 박수와 수많은 칭찬글들을 받았겠지만 가이드 초창기의 그것들은 참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나 보다. 마치 시청률 1~2%에 목숨 거는 작가 시절처럼, 칭찬 글 하나는 고래 아니 가이드들을 브레이크 댄스에 못하는 랩까지 하게 만든다고 한다.

확실히 작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술술 넘어 가는 글맛이 느껴진다. 사실 개인적으로 잘 읽히는 글들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양나연 씨의 글은 참 맛깔나면서도 그 스피드 넘치는 흐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어떤 이들이 쓴 파리 이야기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지극힌 주관적인) 부분들이 있는데, 양나연 씨의 글은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동료 배낭여행자의 글처럼 편안하고 부드럽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자신의 사전 경력이 너무 전면에 나서는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잘 나가는 개그 프로그램의 작가라는 경력이 자랑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보통의 시청자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누가 쓴거라는데 관심이나 두기나 하나? 게다가 최근에 읽은 <런던 프로젝트>, <쏘 핫 캘리포니아> 같은 책들의 저자들이 펴낸 비슷한 코스를 밟아 낸 에세이들과 크게 다른 변별점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한 꼭지 정도는 일반적이지 않은 파리의 숨겨진 보석 같은 장소들을 가이드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내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쉽게 도전할 수 없을 장기간의 파리 행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결국엔 사랑마저 쟁취한 그녀의 용감한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랑과 여행을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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