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2 - 개정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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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볼리비아 출신의 천재 작가 페드로 카마초가 써내는 엄청난 분량의 라디오 방송대본에 열광하는 페루 사람들의 반응과 무려 14살이나 차이가 나는 마리토 바르기타스와 훌리아 아주머니의 사랑의 결말이 과연 어떻게 결말이 날지 2권에서 나머지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마리토의 가족들이 전도가 창창한 소년과 30대 초반 이혼녀의 사랑에 대해 모두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했노라는 사실이 내부첩자인 난시의 밀고를 통해 밝혀진다. 현실의 이야기와 희대의 천재 페드로 카마초가 제조해내는 이야기들의 범벅 속에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1950년대 군부독재 치하 페루를 바탕으로 청년에서 남자로 성장해 가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선보여준다. 어쩌면 또래의 아가씨 뒤꽁무니를 쫓아 다녔어야 할 청년이 거의 자신의 어머니뻘에 해당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무게를 알게 되었노라는 마리토 바르기타스의 고백을 통해 잔잔하게 들려온다.

시나브로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사랑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마리토의 부모님, 특히 그중에서 아버지다. 그는 미성년자를 꼬드겨 불장난을 저지른 훌리아 아주머니에게 책임을 돌리며,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자신의 아들에게 가차없이 총알세례를 주기 위해 권총을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가톨릭 국가인 페루에서 이혼한 여인과의 결합에 대한 사회가 보내는 부정적 시선, 다시 말해서 가부장적 시스템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이 숨어 있다.

한편, 위태롭게 페드로 카마초가 써내는 극본들은 드디어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분열하고 만다. 발자크의 전례를 핑계로 대서라도 서로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들이 크로스오버 하는 현상에 대해 변명을 하지만, 카마초가 쓰는 이야기들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서 버렸다. 극 중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둘쭉날쭉하는 것은 물론이고, 화재나 지진 같은 대참사로 죽은 이들이 다시 등장하지를 않나!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페드로 카마초의 정신분열은 마리토와 훌리아 아주머니의 결혼과정과 그 맥을 같이한다.

우선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의 부모님들도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을 인정할 것이라는 잔꾀를 낸 마리토는 닥치는 대로 급전을 마련해서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자신들의 결혼을 성사시켜줄 은인들을 찾아 나선다.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그들을 결혼시켜 주리라고 믿은 읍장은 곤드레만드레 되어 버려서 일을 그르치고, 나중에 그들의 불법결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읍장과 이장들은 갖은 핑계를 대서 그들의 청을 거절하고 또 심지어는 뇌물까지도 요구한다. 이 어처구니없고 너무나 힘든 결혼의 과정에서, 바르가스 요사는 청년 마리토가 결혼이라는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물론, 이혼한 연상녀와의 결합이라는 사회적 편견은 차치하고서라도) 한 명의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익살스럽게 그리고 있다.

과연 18살 난 철부지 마리토 바르기타스와 32살 이혼녀 훌리아 아주머니의 좌충우돌 결혼기(結婚記)는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가?

모두 20개의 이루어진 장[chapter] 중에서 마지막 장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이십 대에 대한 에필로그 식으로 소개가 되고 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오로지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고 매진하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고 나자, 그제야 비로소 현실세계로 돌아온 작가의 변명처럼 들렸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달뜬 목소리가 차가워지고 냉정하게 바뀌면서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고처럼 다가왔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장장 700쪽에 걸친 무모한 사랑의 파노라마가 끝났을 때의 그 허무감이란.

이 소설은 1990년에 존 아미엘 감독의 연출로 미국에서 <튠 인 투모로우>(Tune in Tomorrow)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바바라 허쉬, 키애누 리브스 그리고 피터 포크 주연으로 페루 리마는 미국의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해서 촬영되었다. 아울러 훌리아 우르키디 아주머니가 자신의 기준에서 바르가스 요사와의 결혼생활에 대해서 저술한 <꼬마 바르가스가 말하지 않은 것>이라는 책도 있다고 하는데 역시 궁금하다.

1권을 읽을 때부터 아주 마음을 곤란하게 만든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번역을 맡은 황보석씨라는 이름이었다. 이 분은 불문교육을 전공하고, 그동안 영문으로 된 책을 주로 번역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에는 스페인문학도 번역을 하시는지 바르가스 요사 작가의 글을 번역했다. 아무래도 영문판 책을 중역(重譯)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것이 1권 99쪽에 보면 “오래된 계급”과 “상류계급이 많은”이라는 부분을 보면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스페인어보다는 영어에 대한 이해가 더 쉬울 거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송병선 교수처럼 전문 스페인문학 번역가가 아니라는 점이 눈에 밟혔다.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에 등장하는 바르가스 요사의 또 다른 페르소나 혹은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페드로 카마초의 그 무서운 집념이 빚어내는 예술혼의 정수였던(정신이 분열되기 전까지!) 그의 이야기들은 정말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즐거움을 한 아름 안겨 주었다. 어쩌면 바르가스 요사가 동경하던 파리의 다락방에서의 궁핍한 시절의 애환이 담겨 있을지도 모를 그 이야기들이 슬프지만 재밌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래도록 지속되지 못했던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가 깊어가는 겨울 녘에 애잔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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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 - 개정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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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작가의 젊은 날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듣는 건 재밌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지만, 바다 건너 저 멀리 사는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라틴 아메리카 그중에서도 페루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에게서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법대생으로 페루의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일하면서 작가의 꿈을 꾸던 젊은이의 세월을 뛰어넘는 가슴 벅차오르는 로맨스와 자신의 꿈을 좇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다. 



(왼쪽부터 차례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엘카야오, 산이시드로 그리고 미라플로레스)

주인공 마리토 바르기타스(마리오 바르가스를 그의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는 방년 18세의 산마르코스 대학 법대생으로 판아메리카나 라디오 방송국에서 뉴스 연출을 맡고 있다. 말이 연출이지, 자기도 고백하다시피 일간지에 실린 기사들을 짜깁기하고 있다. 법대생이지만, 작가 지망생인 마리토는 언젠가 작가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정말 천국보다 낯선 도시인 페루의 리마의 지명인 미라플로레스, 산이시드로 그리고 엘카야오 등을 찾아보는 재미가 이젠 낯설지 않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마리토의 일상은 다음의 두 명이 등장하면서 파란이 일기 시작한다. 한 명은 사촌 아주머니의 여동생으로 최근에 볼리비아에서 이혼하고 돈 많고 유력한 신랑감을 찾아 페루의 수도 리마로 온 훌리아 아주머니.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역시 볼리비아 출신의 방송작가 페드로 카마초가 그들이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전형적인 피카레스크 구성의 소설로 착각했다. 하지만, 곧 마리토의 실제 이야기와 우리의 천재작가 페드로 카마초의 라디오 연속극이 번갈아 등장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헤나로 부자가 경영하는 판아메리카나 방송국의 자매방송국 라디오 센트랄에서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맡은 페드로 카마초는 정말로 볼품없는 외모의 기인으로 등장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쿠바에서 대본을 무게로 사다 쓰던 헤나로 부자는 볼리비아에서 위대한 카마초 작가를 수입하면서 페루 리마에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한마디로 말해서, 카마초가 그야말로 마구잡이로 찍어 내듯이 내갈겨 쓰는 대본과 라디오 방송이 대박을 낸 것이다.

페드로 카마초라는 희대의 작가를 통해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바르가스 요사가 젊은 시절에 습작하거나 공모하기 위해 준비한 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자기보다 14살이나 위의 훌리아 아주머니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풋내기 작가 지망생에게 그녀가 경고했던 배고픈 삶은 훗날 파리에서 지내던 바르가스 요사에게 그대로 현실로 다가왔다.

이 볼리비아 예술가가 쓰는 글에는 스스로 가장 완벽한 나이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오십 대 중년의 사나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산이시드로의 화려함 속에 사는 산부인과 의사 혹은 항구 엘카야오 주변의 치안을 맡은 경사, 기묘한 폭행사건을 맡은 판사, 평생 아내와 자녀들에게 독재자로 군림해온 쥐사냥꾼 그리고 도로에서 우연히 어린아이를 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유명 제약회사의 직원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한 인물군을 섭렵한다.

여기서도 예외 없이 예술과 자본은 충돌한다. 카마초가 쓰는 라디오 방송국 대본으로 헤나로 부자가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국의 광고 매출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다. 작가에게 사인을 원하는 열혈팬들의 모습은 21세기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팬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주인공 마리토가 인정한 진정한 예술가 페드로 카마초는 자신의 창작 작업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모두 무시해 버린다. 심지어 자신의 고용주인 헤나로 부자(카마초는 그들을 노예감독이라고 호칭한다)까지도. 카마초의 노예감독들은 적어도 그가 승승장구하는 동안에는 그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 위대한 작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매번 마리토를 통해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최소한 1권에서는 바르가스 요사 작가가 실제로 결혼했던 훌리아 우르키디 이야네스 여사와의 아슬아슬한 연애보다도, 청년기의 작가 시절과 작가가 꿈꾸었던 위대한 글제조업자로서의 표상 페드로 카마초의 일대기가 재밌게 느껴졌다. 선입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그는 특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감추지 않는다. 외교 문제로의 비화는 물론이고, 나중에 가서 인근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두 명의 아르헨티나 남성들과 물리적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리토가 볼 때, 정식으로 문학 교육을 받지 않은 페드로 카마초의 수준은 문맹에 가깝다고 판단을 한다. 하지만, 그가 써내는 글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다. 아마 모든 글을 쓰는 이들이 원하는 독자 혹은 청자와의 진정한 소통의 비결에 마리토는 다가선다. 물론 바르가스 요사 작가는 2권에서 폭발한 예의 갈등의 점화를 위해 아주 조금씩 암시와 복선의 지뢰를 도처에 매설해 둔다.

마리토는 자신이 듣는 이야기는 모두 소설의 소재로 사용한다. 이 장면에서는 마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라는 선언으로도 유명한 아니 에르노가 생각났다. 구식 레밍턴 타자기를 마치 권투시합하는 권투선수처럼 두들겨 대는 카마초에 대해 처음에는 속물로 대하다가, 그와의 대화에서 자신은 삶을 쓰고, 현실의 충격이 필요하다는 말에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그 때, 이미 마리토는 드라마의 본질을 깨달았던 것일까?

과다한 대본 집필로 정점에 다다른 카마초가 드디어 분열증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동시에 마리토와 훌리아 아주머니의 공공연한 애정행각이 드러나게 되면서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기 시작한다.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조급한 마음에 두 번째 책을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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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4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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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여름, 처음으로 일본의 천년고도 교토를 찾았다. 열흘간의 간사이 지방 여행에서 나는 특히 교토를 만끽할 수가 있었다. 그 좋다는 교토의 벚꽃 지는 계절을 못 보아서 그런진 몰라도 지금도 벚꽃이 질 무렵이면, 교토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최근에 그런 교토에 대한 나의 그리움에 불을 싸지른 책이 있으니 바로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의 <유정천 가족>이 그 주인공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너구리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고집스레 교토의 거리를 공간적으로 배경으로 한 일련의 작품들을 꾸준하게 발표하는 교토 대학 출신의 도리미 도미히코 작가는 “판타지 가족 소설”이라는 틀에, 둔갑술에 능하고 거의 인간처럼 묘사되는 너구리들이 아마 자신의 소설에 주인공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유정천 가족>에는 주인공인 너구리, 인간 그리고 텐구라는 세 부류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아카다마 포트와인을 즐기는 아카다마 선생(텐구)을 필두로 해서, 선생이 흠모해 마지 않는 아름다운 미모의 벤텐(인간) 그리고 시모가모 너구리 일족이 나온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시모가모 집안의 삼남 야사부로로 훌륭하게 바보의 피를 이어받아, 엉뚱하고 기발한 장난을 치는 데 있어 따를 너구리가 없다. 둔갑술은 말할 것도 없고. 아울러 악당 너구리들로 등장하는 에비스가와 집안의 멍청이 금각, 은각 형제 역시 <유정천 가족>에서 슬랙스틱 코미디에 어울릴 법한 사이드킥으로서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있다.

한편, 교토의 다다스 숲에 평화롭게 은거하며 사는 시모가모 너구리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아버지로 위대했던 너구리 시모가모 소이치로가 흉악한 인간들의 모임인 금요구락부의 송년 모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쇠 냄비요리의 재료로 잡혀먹혔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그런 연유로 야사부로의 작은형 야지로는 우물 속의 개구리로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고, 소이치로의 자식들은 모두 변변치 못하다는 세간의 평을 듣고 산다.

너구리들의 지도자인 차기 니에세몬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이던 야사부로의 큰형 아이치로와 악당의 면모를 유감없이 갖춘 그들의 작은아버지 에비스가와 소운의 대결이 그야말로 불을 뿜는다. 에비스가와들의 음모에 맞서 과연, 시모가모 너구리들은 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천년고도 교토를 무대로 한 너구리들의 대혈투가 벌어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래전에 본 애니메이션 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래의 전승설화나 민담에서 너구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인데, 일본에서는 우리와 달리 거의 모든 형태의 둔갑이 가능한 너구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현 일본 국왕이 너구리에 대한 논문을 집필할 정도면 말이다.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도 바로 그런 점에 착안해서, 너구리 삼부작의 효시로 <유정천 가족>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을 해본다.

곳곳에 등장하는 ‘매우 진한 바보의 피’를 이어받은 너구리들의 좌충우돌 이야기와, 가장을 잃은 시모가모 너구리들이 홀로 남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험한 세파를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작가가 의도했던 “판타지 가족 소설”의 원형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소설에 나오는 주술적 리얼리즘을 배제하고, 너구리들의 자리에 인간을 대입시켜 보면 우리네 던적스러운 살이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 책 표지의 일러스트에서 이미 소설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시모가모네 둘째인 개구리 야지로가 변신한 가짜 에이잔 전철에 엄마, 야이치로, 주인공 야사부로 그리고 야시로가 탑승해 있다. 가짜 전철의 뒤편에는 너구리들의 영원한 스승 아카다마 선생과 선생의 애제자인 아리따운 벤텐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야사부로는 결말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아카다마 선생의 바람신 천둥신의 부채도 오른손에 쥐고 있지 않은가! 말이 필요 없다, 이보다 더 멋진 표지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유정천 가족>은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의 너구리 삼부작 중에 첫 편이라고 하는데, 과연 다음에 나올 차기작에서는 과연 어떤 너구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질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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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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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작가의 책들을 꾸준하게 모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읽지 않았다는 거.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가 들어 있다는 소식에 이번에는 꼭 그의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지난 금요일에 드디어 시리즈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제 주문을 해서,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렸다. 마치 그동안 추앙해 오던 이와의 첫 만남 같았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짜릿한 독서 경험이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페루 출신의 작가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더불어 1960년대,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붐 문학을 주도한 작가로 유명하지만, 콜롬비아 출신의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마르케스에 비해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젊어서는 쿠바혁명에 동조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신자유주의를 예찬하는 정치적 변신을 하기도 했다. 문학 작품은 물론 정치적 활동도 활발해서 1990년에는 페루 대통령 선거에 나서, 후지모리에게 패한 전력도 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1973년에 발표된 바르가스 요사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그의 조국 페루의 동부에 있는 로레토주의 수도 이키토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1956년, 아마존 정글에 배치된 자랑스러운 페루의 육군 병사들은 숨 막힐 듯한 무더위와 습한 분위기 때문에 용솟음치는 남성적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인근 마을의 부녀자들을 습격하는 패악을 저지른다. 리마에 자리 잡은 육군 본부에서는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라는 사관생도 출신의 청교도적 품성을 지닌 매우 유능한 젊은 장교를 이키토스에 파견하여 예의 급한 문제를 처리하도록 한다. 병사들의 난행을 막기 위해 비밀리에 그 임무가 모호한 특별봉사대를 조직해서 운영하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이미 3대째 군인 집안으로 자란 판탈레온 대위는 조국과 군대를 위해 봉사하라는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금주, 금연 그리고 금욕이라는 삼금(三禁)을 삶의 철칙으로 삼는 판탈레온은 이키토스로 부임하자마자 특별봉사대원들을 선발하기 위해 지역 민간업자들과 관계 형성을 위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먹게 된다. 이런 판탈레온의 일탈적인 행위로 신혼의 아내 포치타와의 가정생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한편, 판탈레온의 비밀 임무 수행과 더불어 아마존 밀림 지역에 프란시스코 형제가 이끄는 ‘방주의 형제단’이라는 이단적인 신흥종교가 발흥하면서 기존의 가톨릭 교회와 충돌하면서 갈등을 고조시킨다. 그들은 십자가에 각종 곤충과 동물들을 못박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군중은 묘하게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게 된다. 어쨌든 육군의 유능한 행정장교 판탈레온은 아마존 지역에 근무하는 병사들의 본능적 욕망을 시간과 횟수로 수치화하면서, 수국초특(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를 드디어 가동시키기에 이른다. 모든 일탈적인 행위를 배제한 ‘단순하고 정상적인 봉사’를 모토로 삼은 판탈레온과 그의 협력자들은 부패한 지방 경찰의 착취에 시달린 미래의 봉사대원들을 순조롭게 스카우트한다.

수국초특의 임무수행은 순조로워 보이지만, 아마존 오지에 흩어져 근무하는 수많은 병사의 욕망은 무한하다. 판탈레온은 지역 책임자인 스카비노 장군과 끝없는 마찰을 빚으면서 수국초특의 증원과 예산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왜 병사들에게만 특혜를 베푸느냐는 민간인들의 항의는 물론, 부사관과 장교들에게까지 서비스를 확대하라는 압력에 놓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방주의 형제단은 멀쩡한 사람들을 십자가에 순교시키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경찰과 군의 주의할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난장판 가운데, 과연 판탈레온 대위의 기상천외한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아마존 정글이라는 오지에 떨어진 병사들의 은밀한 욕망과 군에 의해서 비밀리에 인가된 특별봉사대라는 조직의 만남을 블랙 코미디라는 형식을 통해, 해학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가톨릭 신앙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페루 사회이지만, 그 사회구성원의 저속한 성적 욕망의 폐해에 대한 작가의 냉소는 신랄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조직된 특별봉사대에 대한 시민의 시선은 시기와 비난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글을 쓰던 도중에 필요악(necessary evil)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아, ‘죽은 사람 깨우기’(109쪽)와 분홍돌고래 기름에 대한 아마존 사람들의 미신과 판탈레온의 실제 체험보고서에서는 그만 웃겨서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청교도적인 바른 생활 사나이 판탈레온 대위의 추락은 특별봉사대의 조직과 더불어 어쩌면 예기된 사태일지도 모르겠다. 곧은 대나무일수록 더 잘 부러진다고 했던가. 상명하복의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판탈레온은 임무의 효율적 달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매진하지만, 수국초특 조직이 커질수록 그에 따르는 비난의 수위 역시 높아져만 간다. 그의 임무에 대한 갈등을 더하게 하는 요소로 <신치의 소리> 방송의 해설가 신치 역시 자신의 몫을 요구하면서 판탈레온을 곤경에 빠뜨린다. 공정한 방송 대신 사리사욕에 빠진 부도덕한 신치의 모습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서의 언론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일침이다. 





작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선다. 사실 첫 장을 읽으면서, 몇 개의 대화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구성과 연속성의 부재로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읽다 보니 금세 적응이 됐다. 판탈레온이 작성한 군인 스타일의 보고서와 회신 그리고 포치타의 장문의 편지 등으로 이루어진 구성이 아주 신선했다. ‘미스 브라질’ 올가와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게 된 판탈레온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의 ‘봉사’를 비난했지만 결국 그들 역시 특별봉사대원의 ‘봉사’를 받고 있었더라는 에필로그가 무척이나 씁쓰름하게 다가왔다.

촌철살인의 블랙 유머와 사회의 위선에 대한 통렬한 냉소가 곳곳에서 작렬하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재밌고, 심지어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타고난 이야기꾼인 바르가스 요사의 블랙 유머만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한 개인의 고독, 분노 그리고 두려움에 대한 망상도 엿볼 수가 있다.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이들이여, 환상의 나라 판티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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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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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밀림을 무대로 해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특별봉사대 이야기에 흠뻑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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