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선택삭제
글제목 작성일
북마크하기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공감18 댓글0 먼댓글0)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2025-01-01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완전히 궤도에 오른 그런 느낌이랄까. 한 다섯 권정도 읽으니, 전직 십자군 전사 캐드펠 수사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축적됐다. 성도에서 캐드펠 수사와 싸웠던 무슬림 눈에는 그가 광신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 전사로서의 본업을 그만 두고 수도사로 귀의한 뒤에는 정의와 자비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그의 다섯 번 째 이야기다. 아 참, 3권인 <수도사의 두건>도 곧 수배하는 대로 읽을 예정이다. 나머지는 내일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어야지.

 

이번 편에서는 고대로부터 저주 받은 질병으로 간주된 나병에 걸린 나환자들의 이야기 조금 그리고 정략결혼으로 강제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 어느 귀족 소녀에 대한 에피소드다. 2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마크 수사가 나오는 걸 보면, 아마 3편에 마크 수사가 등장하는 모양이다. 나환자들을 수용하는 병원도 성 베드로 성 바오로 베네딕토 수도회 소관이다. 그래서 병원장도 수도원에서 파견한 모양이다. 마크 수사는 나환자들을 돌보는데 거리낌이 없다. 나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예나 지금이나 귀족들의 혼례는 큰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노년에 도달한 풍채 좋은 휴언 드 돔빌과 앳된 처녀 이베타 드 마사르가 혼례의 주인공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베타의 친척인 고드프리드 피카르와 그의 부인 애그니스가 순전히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어린 이베타에게 적당한 배우자를 찾아 주는 대신 호색으로 유명한 바람둥이 드 돔빌에게 시집보내는 것이다.

 

드 돔빌은 포악하기로 유명해서, 혼례 행렬 구경에 나선 나환자들에게 채찍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 자신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고 길을 비키지 않는다고 나환자 라자루스에게 무례하게 채찍을 휘두르지 않았던가. 한편, 그 드 돔빌을 수행하는 향사 가운데 조슬린 루시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주군의 아내가 될 이베타를 사랑하고 있었던가.

 

피카르들은 자신들에게 방해가 되는 젊은 향사를 처리하기 위해 그에게 모함을 씌운다. 결국 억울하게 누명을 쓴 조슬린 루시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힐 신세가 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조슬린은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언제나처럼 모든 사건을 캐드펠 수사가 우연히 목격하게 되고, 라둘푸스 수도원장에게 보고한다. 그러면 진중한 성격의 수도원장은 그에게 성무일과를 면제해 주고, 사건의 처리를 맡긴다. 날개를 단 캐드펠 수사가 행정 장관 길버트 프레스코트를 능가하는 실력으로 사건의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더 큰 문제는 혼례식에 등장해야 할 늙다리 신랑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 그전에 수도원장은 이베타를 만나 정말 그녀가 드 돔빌과의 결혼을 원하는지 물었지 아마. 순수한 이베타는 조슬린 루시가 감옥에 갇혀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결혼이라는 말을 수도원장에게 건넨다. 하긴 이베타가 자신이 원하는 결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피카르들이 무슨 꼼수를 부려서 또다른 방식의 결혼을 추진할 진 모르겠지만.

 

가만 보면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는 다양한 갈등들이 소개되면서, 반드시 살인 사건이 하나 얹혀진다. 이번에는 드 돔빌이 혼례식 전날 말을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사체로 발견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그에게 앙심을 품고 금목걸이를 훔친 누명을 쓰고 또 도주한 조슬린 루시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과연 그가 범인일까? 그럴 리가 있나. 그렇다면 누가 진범일까?

 

캐드펠 수사는 주도면밀하게 사건 현장을 수색해서, 단서를 모은다. 과학 수사가 기본이 된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가 중세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캐드펠 수사의 액션은 남과 다른 변별력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대충 수사하고 범인을 지목하는 슈롭셔의 행정 장관 프레스코트와는 다른 결의 사나이라고나 할까.

 

도망친 조슬린 루시는 나환자 무리에 합류해서 도주의 기회를 엿본다. 행정 장관이 그가 도주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물샐 틈 없이 막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말 브라이어의 조력 없이 그는 슈루즈베리를 경내를 벗어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이베타도 구해서 같이 탈출해야 한다. 그를 돕는 건, 캐드펠 수사와 동료 향사 사이먼 애귈런 뿐이다. 사이먼은 절대 조슬린이 그런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고, 몰래 그를 돕는다.

 

캐드펠 수사는 자신만의 수사를 바탕으로 드 돔빌의 마지막날을 재구성하고, 그 날 죽은 귀족이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은 바로 드 돔빌이 무려 20년이나 만난 정부로 손베리의 어바이스란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캐드펠 수사는 어바이스의 사정을 듣고 나서 조슬린을 위한 증언을 부탁한다. 그런 와중에 두 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번에는 어린 이베타를 압박하는 고드프리드 피카르가 희생자였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고 잇달아 살인 사건이 비슷한 방식으로 발생한다. 도대체 누가 범인이란 말인가? 물론 진범은 소설에 등장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개인적으로 진범의 정체보다도, 나중에 밝혀지는 나환자 라자루스의 그것이 더 놀라웠다. 그렇지 이 정도 시리즈를 기획할 정도의 필력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인 셈인가. 그리고 보면 5편의 제목이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라고 할 정도라면 이번 편의 진짜 주인공은 드 돔빌-이베타-조슬린 루시가 아닌 라자루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성경에도 나오는 라자루스(나사로)는 죽었다가 살아난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긴 이의 이름을 라자루스로 정한 건 정말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드펠 수사와 함께 하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중세 여행은 참 즐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