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떻게 해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읽게 되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어느 신문에서 장정일 작가의 글을 보고서였던 것 같은데.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책 세 권을 빌려 왔다. <몰락하는 자>,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그리고 <옛 거장들> 이렇게 세 권이었다. 그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에 가장 관심이 갔지만, 우선 <몰락하는 자>부터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읽는 다는 게 중요하지 다른 뭐가 중요하겠냐만.

 

불과 지난 주에 읽은 책이건만 왜 다른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오직 글렌 굴드만 기억나는 걸까. 1932년 캐나다 터론토에서 태어나 50평생을 불꽃 같이 살고, 우리에게 <골트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역사에 남을 레코딩을 남겨 주고 떠난 기인 피아니스트.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니, 유대인으로 오해 받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오래 전에 한창 클래식 음악을 듣던 시절에 그가 죽기 전에 녹음을 마친 소니에서 나온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샀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던 CD들이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그렇게 소중했었는데 말이다. 사실 대위법 같은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주로 피아노나 바이올린 소품을 즐겨 들어서 굴드의 <골트베르크>에는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게 되면서 1955년에 그가 녹음해서 변방의 피아니스트에서 일약 세계적 피아니트스로 발돋움하게 된 녹음도 찾아 들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튜브는 시대의 총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소설 <몰락하는 자>는 천재 글렌 굴드를 중심으로 소설의 화자인 철학자 “나”와 굴드의 천재성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몰락하는 자” 베르트하이머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특히나 음악 분야에서는 노력으로 천재성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진부한 이야기는 굳이 더 할 필요가 없겠지. 소설에서 베르트하이머도 충분히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지만, 굴드의 연주를 듣는 순간 철학자 나처럼 연주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나는 그렇게 아끼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학교 선생님의 딸에게 그냥 줘버리지 않았던가. 내가 부모에게 반항하는 취지에서 피아노 연주자의 길에 들어섰다고 했던가? 아니면 베르트하이머였던가. 불과 읽은 지 일주일 밖에 안된 책에 대해서도 이렇게 기억을 하지 못하다니. 솔직하게 말해서 오로지 이 책을 읽으면서 의 관심은 글렌 굴드 뿐이었다.

 

 

유튜브로 그의 1955년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감상했고, 나아가 바흐의 <푸가의 기법>도 들어봤다. 항상 자신이 애용하는 피아노 의자를 가지고 다니며 뜨거운 수건으로 손을 마사지하고, 자신이 연주하는 멜로디에 허밍을 넣었다지 아마. 아마 어쩌면 정격연주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이들에게 현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이단아였으리라. 연주회장의 긴장과 스릴을 무척이나 싫어했던 굴드는 집안에서 아늑한 환경에서 들을 수 있을 레코딩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실제로 1964년 4월 10일 로스앤젤레스 연주를 마지막으로, 실황연주로 그의 음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나와 죽은 베르트하이머 그리고 굴드가 빈에서 호로비츠를 사사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굴드가 내가 생각하는 그 피아노의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에게 사사받았는지는 미지수다. 굴드에게 영향을 준 연주자로는 폴란드 출신 미국 피아니스트 조제프 호프만이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생소한 인물이다. 아르투로 슈나벨 정도까지는 알지만 말이다. 한때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클래식 음악은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음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진입장벽부터 쉽지가 않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갈 때, 청바지에 편한 복장으로 간다는 소릴 들어 보았는가.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의 피아니스트 역시 집안이 부유해서, 자식의 피아노 공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달리 피아노 같은 경우에는 사적인 레슨비가 절대로 필요하다.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과 천재성 그리고 경제적 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몰락하는 자 베르트하이머는 가난한 타인에게는 아낌없이 선행을 타인에게 베풀지만 자신과 동생에게는 유독 혹독하다. 마침내 결혼해서 자신의 그늘에서 탈출한 동생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안락한 집을 떠나 멀리 스위스에까지 가서 자살한 모습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은 떠나 갔을 지 모르겠지만, 이승에 남은 이에게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겨 주지 않았던가.

 

베르트하이머가 피아노 연주의 세계를 떠나 정신과학에 안착했다면, 철학자인 나는 멀리 스페인의 마드리드 프라도 가에서 에세이 작가로 새출발에 나섰다. 다만, 그 주제가 굴드론이라는 문제였지 않았을까. 그만큼 천재성의 스펙트럼이 보여주는 자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의 범주를 가뿐하게 뛰어넘는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뭐 그렇게 가는 거겠지.

 

결말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책을 펼쳐 보니 죽은 베르트하이머의 방에 들어가 마침 레코드 플레이어 위에 놓여 있던 굴드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듣는 장면으로 끝난다. 역시 그랬군. 이번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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