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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ㅣ 블루 컬렉션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난 왠지 아멜리 노통브의 글을 보면, 문득 아니 에르노가 떠오른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노통브의 <오후 네 시>를 읽고 나서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었는데, 쉽고 간결하다는 점에서 이 세 명의 작가에게 비슷한 레테르를 붙여 주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노통브의 책 중에서 세 번째로 판매성적이 좋다는 <오후 네 시>를 읽었다. 물론 객관적인 정보는 아니니 대충 알아서 들어주시길. 토마 귄지그의 책을 읽은 덕분에, 여파로 인해 부랴부랴 벨기에 출신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책도 읽게 됐다. 그녀의 책 중에서 가장 인기라는 <적의 화장법>이 다음 타자로 대기 중에 있다.
<오후 네 시>? 도대체 무슨 뜻일까? 책을 읽기 전부터 호기심에 사로잡힌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치는 교사 생활을 하다가 정년으로 은퇴한 에밀 아젤. 그는 자신의 60년 사랑 아내와 낙향해서 전원생활을 꿈꾼다. 그의 사랑스러운 동갑내기 아내 쥘리에트와 번잡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소박하고 아늑한 시골 생활에 대한 기대로 넘실거린다.
하지만, 이런 에밀의 기대는 어느 날 오후 네 시, 한 불청객의 방문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그의 이름은 베르나르댕, 이웃에 사는 무뚝뚝한 심장전문의란다. 그렇게 에밀과 쥘리에트의 안온한 나날이 조금씩 악몽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활발한 토크로 에밀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간결한 대답만을 일삼는 베르나르댕의 방문에 에밀은 갖가지 방법을 다 사용해 보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에밀의 의식에 한 곳에서는 자신을 찾아온 이를 잘 대접하라는 사회적 예의가 이 끈질긴 불청객을 내치라는 자아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매일 같이 두 시간씩 말 수 없는 심문자에게 고통당하는 65세 노인의 심리를 노통브는 그야말로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눈에 보이는 공포보다도,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찾아드는 심리적 불안을 조성하는 일상의 공포는 그야말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과연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집에 없는 척하고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이 불청객에게는 그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후 네 시가 되면 집에 찾아와서 차 한 잔 마시고 정확히 6시가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에밀은 그래서 그를 모욕하는 방법도 고안해 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그럴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데, 베르나르댕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밀과 쥘리에트는 베르나르댕의 아내를 저녁식사에 초대하는데 그것은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다. 소설의 초반,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의 전원일기는 조금씩 궤도를 이탈해서 베르나르댕의 자살소동 그리고 뒤를 이은 비극적 결말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개인적으로 별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이런 멋진 이야기를 빚어낸 아멜리 노통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후 네 시라는 특정한 시간은 에밀과 쥘리에트의 사적인 공간을 담보로 한다. 외부인 베르나르댕은 그렇게 타인의 시간과 공간을 허락도 없이 침입한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교양과 예절로 무장된 에밀, 특히 쥘리에트는 외부의 침입자를 격퇴할 방법이 없다.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점잖게 타일러서 되돌려 보내겠지만 베르나르댕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참 아이러니한 것이, 소통을 위해 이웃을 찾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타인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베르나르댕의 모습은 난감하기만 하다.
단조로운 일상을 지루하게 생각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삶의 일부분이 된 일상의 반복을 그리워하게 되는 건 아닌지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 시>를 통해 되돌아보게 됐다. 읽기 쉬우면서도 간결한 그녀의 작법 스타일에 그만 매료되어 버렸다. 다음에는 그녀의 최고 걸작이라는 <적의 화장법>에 도전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