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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들 ㅣ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10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어느 작가의 책을 세 권 정도 읽으면 그의 스타일이 보인다고나 할까. 지난 주부터 읽기 시작한 요시다 슈이치의 경우가 그랬다. 그리고 보니 그전의 이언 매큐언도 그렇지 않았던가. 무더운 여름을 나기에 정말 적합한 작가의 책읽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의 두 권은 사서 읽었는데, 이번에 읽은 <일요일들>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사랑에 난폭>도 빌려다 봐야지.
내가 가본 도시 도쿄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메트로폴리스답게 무채색의 도시였다. 하긴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그렇게 큰 도시를 본다는 건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르겠지. 인구 천만을 자랑하는 도시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우리네 드라마에 등장하는 서울처럼 그렇게 멋지고 휘황찬란한 이야기들만 품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조금은 구질구질한 그런 이야기들도 숨어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 일류 대 학벌을 가지고서도 특별한 직업 없이 홀서빙을 하는 호스티스로 산다던가, 의사 여친과 사귀었지만 결국 지금은 외로운 솔로가 되어 매식 대신 스스로 밥 해먹겠다는 결심을 한 그런 청춘들의 이야기 정도.
사람은 어떨 때 외롭다는 느끼게 되는 걸까? 주변에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 그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나의 외로움은 좀 덜어질까. 그렇지도 않을 듯 싶은데. 외로움은 어쩌면 오롯하게 내가 스스로 지고 가야하는 그런 운명적인 게 아닐까. 그래도 친구가 있다면 좀 덜 외로울 지도 모르지. 반듯하게 사는 친구 치카게가 강도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자친구의 집으로 찾아가는 나츠키의 경우를 살펴보자. 나와 다른 점이 친구들과의 관계를 윤택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런 너무 다름이 관계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사카로 떠난 여행길에서 삼총사 중의 한 명이 아야와 겐지의 오붓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가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장면을 보면서 단합여행이나 어떤 선의가 좋은 결과만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도 보통 관계는 아니겠지. 물론 용기도 필요하겠고. 하지만 그 피해자가 내가 될 수 있다면 이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나와는 신분이 맞지 않는 여자친구는 의사가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인이다. 같이 하는 시간이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어렴풋이나마 이별이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 순간의 나.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지만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져 버린다. 미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이라고 해야 할까.
규슈 시골에서 친구 아들의 결혼식 참석차 도쿄에 올라온 김에 시내 구경이 하고 싶다고 상경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화자의 이야기도 외로움의 다름이 아니다. 아들 게이고는 사람이 북적대는 게 싫다. 그래도 어쩌랴, 하나 뿐인 아버지와의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은가. 언젠가 가족이 세상에서 가장 불편하다는 대학친구의 말을 듣고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나중에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그런데 요시다 슈이치 작가는 어쩌면 그렇게 밍밍해 보이는 이야기들에 한 가지 요소를 첨가한다. 문학적 MSG라고 해야 할까? 엄마를 찾아 나선 두 명의 형제들 이야기다. 모든 에피소드에 이 둘은 빠짐없이 등장하고, 외로움이라는 정체 불명의 감정과 경주하는 주인공들의 삶에 개입한다. 이 둘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등장한 거지?라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가의 실력이 역시 대단하다. 뭐 이 정도 실력이 되니 일본 문학계 유수의 상을 섭렵한 거겠지만.
어른들은 자신들만의 고민에 빠져 있으면서도, 엄마 찾아 삼만리에 나선 형제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타코야키와 초밥 그리고 음료수를 사주고, 무엇하나 제 힘으로 이룬 게 없다는 고민을 안고 사는 청년은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의 엄마가 이사간 곳까지 데려다 주기도 한다. 클럽 사사유리에서 일하던 청년 다바타는 매니저 대신 애인을 따라 과연 상파울루에까지 갔을까?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된 것처럼, 자신에게 오는 여자들과의 인연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허우적대는 삶에 빠진 청년이 삶을 허비한 이야기가 자못 흥미진진하다.
이야기는 그렇게 흐르고 흘러 나고야 출신으로 동거남의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던 후쿠다 노리코 씨는 15년 도쿄 생활을 마무리짓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이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작가의 스케치가 자못 놀랍기까지 하다. 왜 때리느냐는 노리코의 항의에 “때릴 이유가 없어서 때린다”는 말이 담은 폭력성에 그만 나는 놀라 버렸다. 강자와는 살 수 없고 오로지 약자를 핍박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교이치 속에 숨은 비겁함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단순한 업무를 반복하는 파견 근무직을(비정규직) 전전하며 살아온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가정 내 폭력 상담소를 찾아 마침내 자신감을 회복한 노리코는 나고야에서 새로운 출발을 결심한다. 노리코가 두 형제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물론이다. 형제 역시 가정 폭력의 희생자로 엄마에게까지 버림 받았지만 꿋꿋하게 잘 살아 나가고 있다. 어쩌면 노리코 역시 형제를 거두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데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그렇게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결말 부분에서는 기대 이상의 짜릿함마저 느낄 수가 있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이런 멋진 이야기를 뽑아내는 이야기 장인 요시다 슈이치의 실력에 그만 반해 버렸다. 자꾸만 읽고 싶어지니 걱정이다. 걱정도 팔자라고? 다음엔 <사랑에 난폭>을 읽을 것이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