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가든
이언 매큐언 지음, 손홍기 옮김 / 열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대망의 이언 매큐언 전작 완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어제 작가의 초기작 <시멘트 가든>을 읽었다. 그리고 바로 이언 매큐언 선생 최고작이라는 <속죄>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도 역시나 재밌다. 이런 몰입도로 최근에 책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작가의 최고 걸작이라는 아우라 때문에 내가 빨려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시멘트 가든> 이야기를 하려다가 또 삼천포로 빠져 들었다. 언제나 늘 그렇듯이.

 

<시멘트 가든>은 일 년 전에 위화 작가의 책에서 영감을 얻어 중고서점에서 구입했지 아마. 구입해서 조금 읽다 말았는데, 소설의 화자 15세 소년 잭의 아버지가 정원을 꾸미려고 엄청난 분량의 시멘트를 구입하는 장면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 시멘트가 과연 어떤 소재가 될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난 5월부터 본격적인 이언 매큐언 전작 읽기에 돌입했는데, 그 중에 가장 빨리 읽은 책이 아닐까 싶다.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물론 짧은 분량 탓도 있겠지만, 젊은 시절의 이언 매큐언이 구사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소설 서두에서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잭과 줄리, 수 그리고 막내 톰의 아버지가 지병인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전언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잭의 아버지는 시멘트 포대를 엄청나게 사들여 정원을 꾸미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아버지가 정원 가꾸기에 빠져 있는 동안, 이제 막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접어든 잭은 큰누나 줄리와 함께 여동생 수를 상대로 의사놀이라고 그들이 명명한 성적 유희에 빠져든다. 무언가 바로 폭발할 것만 상태인 잭의 가정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병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엄마가 세상을 뜨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이제 고아가 된 십대 아이들은 위탁가정으로 뿔뿔이 흩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어머니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준비해둔 시멘트가 등장할 차례다. 아무 것도 모르는 톰을 제외한 잭과 줄리, 수는 시멘트로 어떻게 엄마의 죽음을 은폐할 것인가. 그리고 엄마의 죽음에 관한 비밀은 영원히 지켜질 것인가.

 

이언 매큐언이 전매특허로 구사하는 소설에서 어떤 결정적 사건을 전후로 한 인과관계의 전개는 초기작 <시멘트 가든>에서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평면적인 구성으로만 전개되는 건 아니다. 한 개의 트랙이 엄마의 죽음과 은폐에 관한 것이라면, 다른 한 가지 트랙은 성적으로 호기심이 충만한 소년의 상실감이 어떤 방식으로 파괴된 삶의 균질성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작가의 리포트라고나 할까. 어머니는 죽는 순간까지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은행 예금의 관리를 큰딸인 줄리에게 부탁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몰라도 당장의 시급한 불을 끄기 위한 재정적 장치는 마련된 셈이다. 아마 엄마가 준비한 돈이 없었더라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그들의 가족이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두려움 때문에 구축한 그들만의 세계는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세계일 수밖에 없다. 줄리의 멋쟁이 남자친구 데릭이 그들의 세계에 침입했을 때, 그들의 세계는 붕괴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잭과 줄리의 성적 호기심 혹은 충동에서 유발된 관계는 파국의 순간을 정점으로 인도한다. 이언 매큐언이 초창기에 작품을 발표하던 시절에, 문학 기자들이 그를 엽기작가로 판단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파격적인 이야기들을 나는 <시멘트 가든>과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통해 접했다. 그런 초기 작품들에 비하면, 그 후에 발표된 작품들은 상당히 완화된 소재의 일상성을 담보한 작품들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소설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들은 예외 없이 반드시 일어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소설에서 그리는 우리 인간 삶의 진실,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건 뒤의 사후처리는 오롯하게 남겨진 자들의 몫이 아니었던가. 어머니의 죽음은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두려움에서 비롯한 상궤에서 어긋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인가는 예상했던 그대로다. 이제 30세의 나이로 첫 장편소설 <시멘트 가든>을 발표한 청년 매큐언의 출발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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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7-07-10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기작이라니 더욱 궁금하군요. 얼마나 파격적일까.

레삭매냐 2017-07-10 13:50   좋아요 1 | URL
후기에 발표된 작품들에 비해
어둡고, 소화하기가 부담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목나무 2017-07-10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런 어둡고 금기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좋아서 이언 매큐언을 좋아하게 되었네요.^^
오늘부터 다시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읽어보려구요. <넛셸>이 생각만큼 재미없어서 다시 초기작을 읽어보려 합니다. ^^

레삭매냐 2017-07-10 16:04   좋아요 1 | URL
<첫사랑, 마지막 의식> 그리고 <시멘트 가든>
이 작가가 초기에 추구한 세상의 다크 사이드
를 대변하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작가의 기질이 완전하게 변하진 않았지만,
뭐랄까 순화된 느낌 정도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