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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이 숨 쉬는 방
탁명주 지음 / 강 / 2016년 11월
평점 :
세 권 책의 존재를 알게 되고 지난 주부터 읽고 있다. 두 권은 샀고, 다른 한 권은 샀는데 산 책이 바로 탁명주 작가의 <도마뱀이 숨 쉬는 방>으로 강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김소진 작가에 대한 추억으로 주저 없이 강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골랐다. 책을 다 읽은 작은 소회는 기대 이상이었다. 작년과 올해 읽은 한국소설 중에 가히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별 열 개를 주어도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로 아우라를 <도마뱀>은 품고 있었다.
처음 등장하는 <컨테이너>의 결말은 참으로 슬프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인생들이 그래도 살아 보고자, 강둑 매립지 부근에 버려진 컨테이너를 거처로 삼아 새출발을 시도해 보지만 그들에겐 세컨드 챈스(second chance)는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탁명주 작가는 사회에서 도태된 이들에게 패자부활이 주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냉정한 면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요즘에도 밀린 집세 때문에 야반도주를 한다는 상황에 이물감이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하긴 수도 서울의 복판에서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도 나오는 마당에. 무언가 씹고 싶어하는 큰딸을 위해 산후조리를 못해 허리가 아픈 아내를 대신해서 달달한 고기볶음을 하는 아빠의 모습에 눈에 땀이 차오른다. 자신은 공복을 달래기 위해 수돗물을 삼키면서도 자식들을 위해서는 그렇게 헌신적이었던 가장의 최후는 그래서 더더욱 비장미를 자아낸다. 아, 답답한 현실을 어쩌란 말이냐.
잘 나가던 강남 사모님이었지만 남편의 판단착오로 아파트를 날리고 변두리로 주저 앉았지만 시장에서 장보고 낑낑 대며 물건을 사나르는 건 죽어도 못하겠다는 일말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부업>. 어쩌면 주인공 역시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진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웃한 개아짐이 개가 좋아서 수많은 개들을 거느리고 있는 게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개를 길러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통장에 생활비가 꽂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하찮게 생각하던 부업 여성들처럼 자신도 부업 전선에 나설 결심을 한다.
<부업>은 비슷한 처지에 내몰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독>과도 일맥상통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직원들에게 차별당하는 현실이 리얼하게 그려진 학교 급식소가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생리 때문에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처럼 취업전선에 내몰려야 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르포르타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정규직 직원들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힘든 일들을 모두 하루살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미룬다. 그들을 관리감독하는 일이야말로 정규직인 자신들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네 삶 속 곳곳에 그렇게 일상화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양심이 씀벅거린다. 바버리 사모님이 한 때 자신을 모욕한 인물이라는 사실에 화자는 놀라면서도, 소심한 복수를 통해 상처 받은 상처를 표백 소독하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하수구로 흘려보낸다. 이런 카타르시스라도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잘나가던 이들도 언제라도 인생역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보너스다.
동창 수화의 남편인 형기 씨와 동업자이자 불륜 관계에 있는 이유빈 씨가 등장하는 <전염>도 삶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그런 작품이다. 단편 소설들을 읽다 보니 삶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는 가운데 드러내는 부작용이나 파편들을 잡아내는 데 탁명주 작가는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인과관계에 대한 추적의 하모니라고나 할까. 다시 <전염>으로 돌아가, 불륜남이 던진 남모를 메시지를 음미하면서, 거의 사기에 가까운 말에 속아 넘어간 다단계 판매 ‘라인’을 운영하며 동창회에서 새로운 라인을 구축하려던 이유빈 씨는 결국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다른 동창의 전언을 통해 전해 듣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이 수화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수화가 이유빈 씨를 가지고 놀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뒤를 따를 결심으로 시속 180km로 달려가다가 어머니가 남긴 머플러 생각에 자신이 정상궤도를 이탈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배신의 코드는 표제작인 <도마뱀이 숨 쉬는 방>에서 다시 반복 변주된다. 악착 같이 번 돈으로 필리핀에서 외동딸을 유학보내고 뒷바라지하러 나선 화자는 굳게 믿었던 최사장에게 사기를 당하고 만다. 해외 한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요지경 같은 일상, 가사를 위해 고용한 현지인들에 대한 편견 등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작가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직조해낸다. 동생이 필리핀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현지 리포트처럼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했다. 놀랍군 놀라워. 엔딩에서 자신 뿐만 아니라 공장을 경영하던 남편도 최사장에게 골프장 회원권 사기를 당했다는 말에 화자는 할 말을 잃는다. 도대체 이 세상에는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의 반증이려나. 화자는 파리나 모기 같은 날벌레들을 잡아먹는 도마뱀을 포식자로 등장시키고 있는데, 현실계에 반영해 본다면 자신과 남편은 날벌레 그리고 자신들에게 사기를 친 최사장이 상위 포식자인 도마뱀으로 치환시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라는 미로에 갇힌 고단한 삶의 진실을 날것 그대로 노출시킨다.
<공생>에서는 이주민노동자에 대한 노골적인 편견과 차별을 등장시킨다. 작가가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주제들이 하나 같이 민감하면서도 모두가 알고 있기에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존 버저 작가도 자신의 저서 <제 7의 인간>에서 언급했듯이, 이주민노동자의 존재는 고용주와 피고용주 모두에게 윈윈관계가 아니다. 전적으로 고용주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형성된 관계다. 제3세계에서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차출된 외국인 산업전사들은 헬조선 사람들이 기피하는 그런 제조업 작업장에 투입된다. 물건이 없어져도, 도둑이 들거나 불편한 사건이 벌어져도 모두 그들의 책임으로 간주되는 현실을 작가는 소설에서 정확하게 지적한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라기 보다, 잠정적 범죄자라는 의식부터 바꿔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나와 다름이 무조건 나쁘다는 편견부터 교정해야겠지만 말이다.
다른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민감한 이슈들을 한 개씩 품고 있다면 후반의 <닻>과 <택배>는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타겟으로 한다. 디자이너 출신 엄마의 인형처럼 살아온 주인공이 체험한 성형의 역사는 솔직히 남자로서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냥 생긴 대로 살면 안되나 하는 생각에서부터, 주체적 사고 없이 부모가 조종하는 대로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 그리고 복원수술까지 결심한 주인공의 감정에 ‘닻’을 내리기가 사실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마지막 이야기인 <택배>는 쫌 신파조이긴 했지만, 가슴 훈훈한 결말로 이 멋진 소설집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리고 마지막 소설인 <택배>에서도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편리라는 이름으로 받는 택배에 택배노동자 아저씨들의 눈물이 배어 있을 거라고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을 반성해야겠다. 최소한 내가 그분들에게 갑질하는 진상고객은 아니라는 점에 위로를 받아야 하나. 오늘도 알라딘에 주문한 존 버저 작가의 신간을 택배로 받았는데 잘 배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새벽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느라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예전에 교회에서 만난 한국말은 거의 못하던 스리랑카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들부터 시작해서, 필리핀에 사는 동생이 경험한 가사도우미들과의 일화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또 한편으로 편견과 차별은 내가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부족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대해 보다 잘 안다면 적어도 인간이라면 그럴 수 없을 텐데 하는 생각 말이다. 소설 <도마뱀이 숨 쉬는 방>을 읽으면서, 나와 다른 이들이 가진 삶의 주파수, 생각 혹은 사유에 동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라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