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준의 新생활명품
윤광준 지음 / 오픈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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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에 나와 있는 대로 잘 모르지만, 사진가이자 오디오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윤광준의 새로나온 생활명품 소개책을 읽게 됐다. 9년 전에도 ‘새로운’ 생활명품 책을 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아마 신문에서 연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그의 생활명품 책과 만날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명품 소개가 그렇듯, 내가 아예 모르는 정보들도 있었고 단가 때문에 만날 수 없는 그런 물건들도 다수 있었으며, 이제는 LP 레코드를 듣기 않게 돼서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그런 정보들도 있었다. 예전에는 미디어가 카세트테이프와 LP 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이제는 음악의 대부분을 mp3 파일로 듣다 보니 저자가 소개한 ECM 레이블에 대해서도 시큰둥했다. 그리고 보니 오래 전 CD에 미쳤을 때, 도이치 그라모폰이나 EMI 클래식 음반들 그리고 더 오래된 복각CD들을 찾아 다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때 명동에 있던 디아파송인가 하는 CD전문점에도 자주 들렀던 것 같은데 아직도 있을까. 아마도 없어졌겠지 싶다.

 

집안 청소를 도맡아 하다 보니 청소기에도 관심이 많다. 이미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진공청소기는 먼지를 빨아들이는 흡인관의 튜브 부분이 고장나 버렸는데 새로 사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아니 차라리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더 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독일산 명품 밀레 청소기의 유혹은 과연 대단했다. 여윳돈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달려 가서 사고 싶었다. 문득 아무리 디지털 시대가 발전해서 달나라에도 갈 상황이라고 하지만, 책의 경우만 하더라도 전기가 없다면 전자책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니 수천년이 지나도록 로제타 스톤 같은 아날로그 스타일의 기록이 유효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너무 멀리 나갔나.

 

이제는 은행마저 인터넷은행 시대가 되어 점점 피할 수 없는 디지털 시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인간의 감성을 아날로그로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어제 들른 카페에서도 보니 중고 LP판들이 몇 장 있더라. 카페에는 아마도 mp3 파일로 튼 재즈 음악들이 넘실대고 있었는데, 레코드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았다. 빈티지 스타일의 북카페를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북카페라고 하는데 읽을 만한 책 대신 왠 놈의 디자인 책들만 가득한지. 생활명품 이야기 하다가 샛길로 샜다. 역시 지금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의 대표주자는 바로 연필이다. 세계 최초로 연필의 6각 모양을 도입하고, 흑연과 점토의 이상적 조합으로 파버카스텔 9000이라는 시대의 명품을 만들어낸 파버카스텔 사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나 흥미로웠다.

 

 

나도 개인적으로 볼펜보다 연필을 즐겨 사용한다. 파버카스텔을 즐겨 사용했다는 고흐나 헤밍웨이 급은 아니지만, 종이에 사각거리며 무언가 중요한 정보들을 적어 나가는 과정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리고 보니 내가 사무실 책상에서 애용하는 수동식 연필깎기도 중국에서 만든 파버카스텔 제품이었구나. 예전에 산 전동 연필깎기는 미국에서 산 제품으로 110볼트라 트랜스가 없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고작 연필 하나 깎겠다고 트랜스까지 동원해야 하나.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생활명품을 찾아 불원천리를 마다하고 찾는 그런 스타일인가 보다. 생막걸리로 유명한 울산 복순도가를 찾기도 하고, 반년 동안 독일에도 두 번씩이나 갔다고 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온전하게 발효시킨 생막걸리를 고집하는 복순도가의 마케팅 전략은 이웃한 일본이나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의 다양한 스타일의 술 제조를 못하게 만드는 낡은 주세법의 틀 안에서 이룬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일반 막거리보다 8배나 비싸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말에 이해가 갔다. 개인적으로 막걸리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당장에라도 한 잔 마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처음 읽은 글은 바로 핀란드의 명품가위 피스카스였다. 전 세계 명품산업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제조업의 힘은 일상의 사소한 것에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이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물론 피스카스가 독일 제품은 아니지만, 사실 가위 같이 평범한 제품 하나에도 소비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그립을 편하게 만들고 어린아이도 다치지 않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가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이케아 성공의 비결을 최근 어느 칼럼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이케아 사장은 스웨덴의 모든 아이들이 자기 회사가 만든 질 좋고 저렴한 책상하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던가. 단순하게 이윤만 생각하면 시장에서 뛰어들었다가 퇴출당한 기업과 비교를 통해 기업의 목적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케아의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조국 스웨덴에 세금내는것을 회피하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탈세를 저질렀다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지만 말이다. 사는 게 다 그런 거겠지 뭐.

 

어쨌든 윤광준 씨의 생활명품 소개를 통해 여전히 세계는 넓고 내가 모르는 브랜드들이 차고 넘치며, 구매와 소비를 자극하는 생활명품들이 산재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당장 주황색 칼라의 피스카스 가위를 사고 싶었지만, 일반 가위보다 훨씬 비싸서 그냥 포기해 버렸다. 한 자루에 1,800원씩 하는 파버카스연필보다 여기저기서 거저 얻은 연필을 사용하기로 했다. 파버카스텔을 사용한다고 해서 내가 하는 메모의 질이 달라지는 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인간은 이렇게 실용적이다.

 

[뱀다리] 책의 뒤편에는 책에 소개된 생활명품 제품들을 살 수 있는 사이트들과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친절하시기도 하여라. 그 중에서 관심이 가던 트로이카 문진의 가격대를 알아 봤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로구나. 분명 갖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가격이 비싸서 바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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