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블레이드 러너 2019>가 나왔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E.T.>에 열광하던 대중들은 아무도 리들리 스콧의 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대로 잊혀지는가 했던 <블레이드 러너>는 오랜 시간이 지나 재평가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저주 받은 싸이파이 영화 걸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주인공 릭 데커드 역할을 맡은 해리슨 포드는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와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인디애너 존스>로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영화계 주류 입장에서 볼 때, 신참내기였을 뿐이다. 영화의 배경은 사시사철 화창한 날씨의 라라랜드 로스 앤젤레스가 아닌 미래의 우울하기 짝이 없는 항상 스모그로 가득하고 비가 내리는 디스토피아 로스 앤젤레스다.

 

인류는 타이렐 코포레이션에서 거의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넥서스 6 시리즈를 이용해서 인간이 갈 수 없는 외계 행성 개척에 나선다. 인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 아닌 스스로 사유할 수 있고 감정까지 가진 이 안드로이드들을 레플리컨트라 불렀다. 신체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레플리컨트들의 반란으로 곤욕을 치른 인간들은 지구별에 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그것은 마치 성경 속에 등장하는 에덴 동상에서 쫓겨난 인간들과 같은 신세라고나 할까. 그들을 찾아 제거하는 것을 처형(execution)이라고 부르지 않고 은퇴(retirement)라고 불렀던가. 게다가 인간처럼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일단의 레플리컨트들은 생명연장을 위해 지구에 잠입해 자신들을 창조한 타이렐 코포레이션에 침투를 기도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년 뿐이다.

 

전직 경찰 데커드에게 지구에 은밀하게 침투한 레플리컨트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영화 오프닝에 등장한 첫 번째 레플리컨트 레온을 필두로 해서, 전투형 레플리컨트 로이 배티(룻거 하우어 분), 프리스(대릴 한나 분)와 조라가 그 타겟이다. 오프닝에서 레플리컨트인지 아닌지 밝히는 보이트캄프 테스트 시연 중에 레온은 심문자 홀든을 총으로 쏘고 탈출한다. 한편, 데커드는 타이렐 코포레이션의 수장 엘든 타이렐 박사의 조수 레이철(션 영 분)에게 역시 같은 보이트캄프 테스트를 한 결과, 기억이 이식된 실험적 레플리컨트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녀가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는 레플리컨트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레온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질문이 필요했다.

 

데커드의 아파트를 찾아온 레이철은 자신의 과거 사진을 데커드에게 보여 주며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지만, 그 사진은 타이렐의 조카 사진이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며 그녀를 절망에 빠뜨린다. 한편, 로이 배티와 레온은 레플리컨트 안구제조 기술자 JF 시배스천이 타이렐 회장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은밀하게 다른 레플리컨트 프리스를 이용해서 신뢰를 얻는다.

 

레온의 아파트에서 증거를 찾던 데커드는 조라의 인조 뱀껍질 사진을 발견하고 그녀가 스트립클럽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조라를 찾아 은퇴시킨다. 상사인 브라이언트로부터 데커드는 타이렐 코포레이션에서 사라진 레이철 역시 은퇴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레이철을 군중 속에서 찾아낸 데커드는 순간 레온의 공격을 받고, 레이철은 데커드가 떨어뜨린 총으로 레온을 ‘은퇴’시킨다.

 

로비 배티는 시배스천의 아파트를 찾아 프리스에게 나머지 동료 레플리컨트들이 모두 죽었다고 알리고, 시배스천과 함께 타이렐 회장의 펜트하우스를 찾는다.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 달라는 단도직입적 요구에 타이렐 회장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하고 그 역시 로이 배티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4년의 라이프스팬 연장을 위해 많은 연구를 했는지 로이 배티는 다양한 가설을 제시하고, 타이렐 박사는 하나하나 반론으로 피조물의 요구를 좌절시킨다. 직접 화면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시배스천 역시 로이 배티에게 죽었다는 보고를 데커드는 무전으로 전해 듣는다. 시배스천의 아파트를 찾은 데커드를 시배스천이 수집해 놓았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마네킹들 가운데 매복해 있던 프리스가 공격하고, 데커드는 프리스마저 영화의 무대에서 은퇴시킨다. 레저용 레플리컨트인 프리스에게조차 쩔쩔 매는 데커드에게 개프는 솜씨가 대단하다고 칭찬하는데, 과연 칭찬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여전히 로스 앤젤레스에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로이 배티와 데커드의 마지막 대결이 펼쳐진다.

 

로이 배티와 나머지 레플리컨트들이 타이렐 박사에게 원하는 건 단 하나다. 바로 생명연장, more life. 그런데 안드로이드를 만든 인간에게도 그런 능력은 없다. 인간 자체가 유한한 존재이지 않은가. 유한한 존재가 창조한 피조물이 유한할 수밖에 없다는 건 너무나 당위의 문제가 아닌가. 더 살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의 욕망 앞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을 원작으로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도 읽어 봤지만, 영화의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1980년대 이 저주 받은 걸작에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안드로이드가 지닌 인간성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지나친 난개발로 인한 환경 재앙, 다양하게 차용된 신화적 구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예의 숨은 코드들을 찾는 데서부터 어쩌면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신화가 시작된 건 아닐까.

 

우선 데커드가 은퇴시키는 레플리컨트들은 모두 여자다. 전직 경찰인 데커드는 레온이나 로이 배티 같은 강력한 남성 전투형 레플리컨트의 적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를 따라 다니며 감시 혹은 조종하는 역할을 맡은 개프가 남기는 오리가미가 상장하는 면모들을 고려해볼 때, 데커드 역시 레플리컨트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레이철이 인간의 기억이 이식된 최신형 실험 레플리컨트라면, 데커드는 레플리컨트를 은퇴시키기 위해 개발된 진화된 레플리컨트가 아니었을까. 로이 배티가 자신을 창조한 타이렐 박사를 만나 수명을 늘려 달라고 협박하는 장면과 자신의 창조주를 결국 죽음이 이르게 하는 과정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킨다. 창조주의 역할은 창조에 그치고, 그 창조에 역행하는 소멸의 몫은 결국 피조물의 담당이라는 상징이려나.

 

데커드 역시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만약 그가 레플리컨트라면), 진짜 레플리컨트 레이철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역설은 또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타인의 기억까지 이식된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다는 상상력은 또 어디서 유래한 걸까. 진짜 같은 가짜가 진짜를 대신한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설지도 않지만.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들은 처음에는 인간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지만, 갈수록 기쁨, 분노, 좌절 같은 감정들을 개발할 수 있는 걸작품이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데커드에게 레플리컨트 사냥을 의뢰한 캡인 브라이언은 처음에 6명의 레플리컨트들이 우주선을 탈취해서 지구에 잠입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은퇴 순으로 보자면, 생명연장을 위해 타이렐 코포레이션에 침투하다가 감전사한 한 명을 제외하고 조라, 레온, 프리스 그리고 로이 배티가 차례로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면 다른 한 명의 레플리컨트는 어디로 간거지? 브리핑할 적에도 다른 한 명에 대해서는 아예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들은 남은 한 명의 레플리컨트가 데커드라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기억도 이식(임플랜트)이 되는 마당에, 데커드를 만드는 건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을까. 물론 2049년까지 그가 살아 남았으니 레플리컨트가 아니라는 반증이 되려나.

 

그리고 자그마치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영화의 마지막에서 불투명한 미래 속으로 레이철과 함께 도주를 감행했던 데커드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새로운 파트너 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2049년의 로스 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다. 신비하면서도 음울한 배경을 고조시키는 음악은 프리퀄에서 신디사이저의 제왕 반젤리스의 배턴을 이어 받아 아이슬랜드 출신 요한 요한슨이 맡았다고 한다. 트레일러에 나온 부분만 듣고서 혹시 반젤리스가 아닌가 싶었지만 유사했지만 다른 작곡가가 맡은 모양이다. 전작에서 연출을 맡았던 리들리 스콧이 총제작을 맡았고, 캐나다 출신 감독 드니 빌뇌브가 시퀄의 연출을 맡았다. 지난 여름부터 촬영에 들어갔고, 8월 25일에는 헝가리 오리고 스튜디오 현장에서 구조물 해체 중에 건설 노동자가 죽는 사고가 발생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촬영은 11월에 헝가리에서 완료됐고, 12월부터 로스 앤젤레스에서 편집 중에 있다는 뉴스다.

 

2008년에 시퀄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내러티브는 레플리컨트들이 활약했던 외계 미개척지에 대한 부분과 타이렐 회장이 죽은 뒤 벌어진 일 등에 대해 다뤄질 예정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내용은 어떤지 베일에 가려져 있는 현실이다. 드디어 공개된 트레일러를 보면, 라이언 고슬링이 해리슨 포드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버려진 건물 외벽에 한글로 “행운”이라는 말이 씌여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 단어가 가진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 행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영화 개봉은 2017년 10월 6일, 앞으로 221일 남았다.

 

[뱀다리] <블레이드 러너>가 우리나라에 처음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 제목이 <서기 2019>이었다고 한다. 흥미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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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21일이라... 지금은 한참 멀었지만, 시간이 금방 가게 되면 어느덧 영화 개봉일이 다가올 거예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