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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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 만나는 김금희 작가가 소설에서 펼쳐 보이는 그녀의 생각은 무엇일까하고 생각해본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만난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나와 그들이 느끼는 간극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게 아닐까. 그 간극이 가까워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가, 너무 차이가 났을 적에는 깜짝 놀라 털어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극이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어쩌면 트라우마가 되어 마음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둘 지도.

 

폭염주의보가 내린 어느 주간에 만난 <너무 한낮의 연애>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맨 끝에 실린 작품 발표 연보를 보니, 발표 순서대로 수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표제작으로 <너무 한낮의 연애>를 실은 것을 보면 작가의 대표선수이기 때문이겠지 하고 추측해 본다. 평소라면 느낌 가는 대로 읽고 싶은 단편을 읽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무덥다. 출판사와 작가가 잘 차려준 밥상을 불평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소설의 내용은 필용과 양희의 철 지난 러브스토리다. 직장에서 잘 나가던 필용은 어느새 구조조정의 문턱에 서 있다. 청춘이 아직 빛을 발하던 시절, 양희의 뜬금없는 사랑 고백으로 필용의 생활이 엉망이 되어 버렸던 것처럼 좌천을 가장한 인사이동이라는 형태의 구조조정 역시 필용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랑과 먹고사니즘의 평행 변주곡이라고 해야 할까. 헛헛한 마음에 양희가 무대에 올리는 연극을 찾아나선 중년 남자의 정처 없는 여정이 그저 애처롭기만 하다.

 

일상화된 구조조정 이야기는 맨 끝의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의 ‘고양이 탐정’ 모과장에게 스트레이트로 달려간다. 1971년 이래, 세계화(globalization)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된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노동의 불안정성고 느슨한 연대를 먹이로 삼아 성장해왔다. 자신의 외로움을 구원해준 고양이를 찾는 일에서 직장의 노동에서 느끼지 못하는 성취를 느끼는 남자 이야기는 쓸쓸하기만 하다. 그것은 마치 보통의 일상에서는 허접하지만, 롤플레잉 게임 세계에서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찬란한 영웅으로 변신해서 미진한 성취를 극복하는 현대인의 초상처럼 다가온다. 그 와중에서도 직능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끝없는 스펙을 쌓아야 하는 현대판 시시포스의 형벌을 보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했고.

 

두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조중균의 이름에서 맥락 없이 조중동이 떠올랐고, 읽다 보니 허먼 멜빙의 필경사 바틀비가 생각나더라. 두 작품 사이의 무언가 연관성을 찾아보려 하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외톨이 같은 부적응자가 전면에 나선다. 자기 일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닌가? 일도 잘하면서 직장상사의 비위도 잘 맞추고, 동료들과도 화합하는 팔방미인 스타일의 인재를 원하는 시대에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화자는 역시 신자유주의 경쟁의 참가자로, 상대적으로 나은 스펙을 바탕으로 일자리에 천착하는 인턴사원이다. 어디에서고 실패한 사람들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려야 한다는 자본주의 정글 속 게임의 법칙을 목격한 것 같은 느낌이라 기분이 그랬다.

 

암 진단을 받고 어쩌면 곧 죽을 지도 모르는 큰오빠의 진두지휘를 받아 사남매와 제자 한 명이 평생 부모님을 죽인 원수라고 생각해온 노숙자를 찾아가 복수극을 벌인다는 이야기도 황망스럽다. 살인 및 방화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도 그렇지만, 큰오빠가 진짜 삶의 원수인지 아니면 그 큰오빠가 원수로 지목한 엉뚱한 사람이 원수인지 모를 그럴 웃픈 상황 가운데 실성한 듯 웃음을 터뜨려서 모두 날려 버리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소비자가 왕이다’라는 아주 비현실적 구호로 무장한 소비자(물론 진상고객은 아니다)와 다툼을 벌이는 와중에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꾸역꾸역 돈을 물어다 주는 남편의 행적이 중첩되는 <고기>도 흥미롭다. 대개의 검사장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능력에 벗어나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다 줘도 묻지 않고 소비에 전념하는 그 가족의 도덕적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낯설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였다. 그래도 내 작은 항의의 행위가 다른 이에게 밥줄이 달린 문제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이 소설집의 타이틀은 <너무 한낮의 연애>가 가져갔지만, 개인적으로 최고작은 <세실리아>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 고향 이야기가 등장해서인지도 모르겠고,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대학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게 해주는 구조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송년회나 이혼 같은 삶의 파편화된 조각 속에서 과거를 소환하는 일탈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가 체험해 보지 못한 타인의 이야기에 조금의 돈과 시간을 투자해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오락은 없지 않을까. 일견 교활해 보이는 독자의 이러한 소비심리를 김금희 작가는 예리하게 후빈다. 전 남편에게 칼국숫집에서 받은 청사초롱이 그려진 청첩장을 하수구에 흘려버린 주인공 정은은 대학 동아리 친구 세실리아를 찾아나선다. 긴 시간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지만, 너털웃음으로 그녀가 자신을 언젠가는 찾아올 줄 알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세실리아.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는 말은 한 순간에 피고 지는 얼음꽃처럼 차갑기만 하다. 어쩌면 우리가 맺는 관계의 본질은 모두 그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냉담한 결말.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는 동안 내공을 집중하지 않고, 마치 여름휴가를 즐기듯 그렇게 즐겼다. 날씨 탓인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심각한 내용이 등장할라치면, 내부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알아서 차단해 버렸다. 아주 내 마음대로 독서였다고나 할까.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해석을 붙여봤다. 언제나 그렇듯, 책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니까. 문득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곧 장편으로 만나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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