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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래도 번역과 교정 탓을 해야 할까? 세상에 이렇게 사소한 오류부터 시작해서 오탈자가 많은 책은 또 근래에 처음이다. 그전에 읽은 돌베개에서 나온 프리모 레비의 책과 너무 달라서 어안이 벙벙해질 판이다. 역자는 이탈리아어 전공자가 아니라 영어와 중국어 전공자라고 한다. 역시 중역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용비어천가, 썸씽 같은 표현은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뚝뚝 끊기는 번역 때문에 과연 이 책이 같은 작가가 쓴 책일까 싶었다. 될 수 있으면 한 작가의 책은 고정 번역자가 맡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서경식 선생이 프리모 레비의 저작 중에서 중요하다고 손꼽은 5개의 작품 중에 4번째 작품에 도전한다. 그동안 읽은 세 권의 저작이 넌픽션이라면 이번에 고른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레비가 1982년에 발표한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아우슈비츠 경험을 증언한 <이것이 인간인가>와 <휴전>이 생존과 귀환의 기록이라면,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빨치산 유격대의 활약을 통한 저항의 기록인 셈이다.
때는 1943년 여름, 히틀러가 이끄는 베어마흐트(독일 국방군)가 불구대천의 숙적 스탈린의 소련을 침공한 지 2년이 되던 해다. 소설은 러시아의 어느 숲에 은거한 시계수리공 멘델 나흐마노비치(메나쳄, 위로하는 사람-1915년생)과 만난 십대 청년이자 모스크바에서 회계를 공부하기도 한 낙하산 낙오병 레오니드(1924년생)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설을 이끌어갈 주인공의 공통점은 둘 다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대조국전쟁이라 불린 독소전쟁에서 나치에 대항하는 빨치산 투쟁에 나서길 원하지만, 유대인들은 믿을 수 없다며 처음 만난 벤야민 부대에서 거절당하기에 이른다. 눈앞에 닥친 나치라는 가공할만한 적군에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보다 높은 불신의 벽을 느낄 수가 있었다.
러시아, 벨로루시를 거치며 멘델과 레오니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체험을 한다. 프리모 레비는 두 사람의 영웅적인 빨치산 투쟁기록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이면을 담는데 주력한다. 우선 폴란드를 분할한 러시아 비밀경찰 조직에 의해 폴란드의 민족주의 엘리트 인사들을 집단처형한 카틴숲 대학살로부터 시작해서, 해방은 목전에 둔 바르샤바 봉기 당시 악행으로 이름을 날린 카민스키 여단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책을 읽다 말고 바르샤바 봉기 기록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는데,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을 일소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독일 본토 사수를 위해 재집결한 독일군에게 일격을 당한 소비에트군이 바르뱌사 봉기군에 대한 지원을 주저했다고 한다. 어쩌면 종전 후, 폴란드에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위성국가를 세우기 위해 민족주의 계열 레지스탕스의 활동이 껄끄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외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동안, 폴란드 봉기세력은 막강한 화력을 동원한 독일군에게 처절하게 분쇄되고 학살당했다.
한편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츠크 전투에서 승기를 잡기 전까지 우크라이나 일대를 장악한 독일군이 스탈린 체제 아래서 조성된 집단농장 시스템을 철폐하고 해방군으로 행세하다가 본색을 드러내고, 러시아 침공이 결국 게르만 민족의 생존을 위한 동방정복의 목적이었다는 것이 확실해지면서 침략자 독일군에 대항 저항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에 기술된 대로, 독일군이 교활한 이이제이 전략으로 빨치산에 대한 강경책 대신 유화정책으로 전환해 가는 과정도 흥미롭게 읽었다. 빨치산 부대 소속으로 사랑하는 아내 리프케를 독일침략군에게 잃은 멘델의 시점에서 다룬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향도 잃고, 사랑하는 사람도 잃은 유대인 빨치산에게 돌아갈 곳은 과연 어디였을까. 동시에 스탈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시오니스트들의 주장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읽을 수가 있었다. 볼셰비키 혁명 과정에서 붉은 유대인(특히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들의 뛰어난 활약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풍조 또한 생긴 것도 사실로 보인다. 당장 눈앞의 대적인 나치에 맞서 싸우기는 하지만, 전쟁이 끝나는 대로 불편한 존재인 무장 유대인 빨치산 조직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리란 예상도 조금도 틀리지 않는 분석이었다.
멘델은 노보셀키의 도브 유격대 출신 시슬에 이어 레오니드의 연인인 라인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무리 적군 혹은 아군의 손에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운명이라고 해도 생존본능과 사랑에 대한 감정마저 숨길 순 없었던 모양이다. 율리빈과 게달레 유격대로 갈아타면서 조우하게 되는 대원들의 가혹한 운명 역시 멘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소설에서 또 하나의 역설적인 장면은 정작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이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 현실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은 소비에트 혁명의 대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폴란드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더더욱 그들의 종착역일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솔리니의 인종법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그나마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고 판단된 이탈리아를 목적지로 삼은 게 아닐까. 그 와중에 등장한 드레스덴 폭격에 대한 저자의 신랄한 비판도 눈길을 끈다. 반면, 동포 유대인들을 수용소에서 구하기 위해 등장시킨 작전은 작위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너무 멀리 나갔다고 해야 할까. 제한된 지면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출발한 비극의 연장선을 유대인 빨치산 유격대라는 이야기로 이끌어냈다.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극단적 시오니즘에 대한 시선과 연합국의 승전이라는 거시사에 묻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용사들의 활동을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킨다. 왜 그렇게 많은 유대인들이 절멸 수용소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가스실로 갔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해야 할까?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치 독일의 최종해결책과 그에 못지 않은 스탈린의 강제이주에 반대한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의 발굴만으로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교정과 번역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지만 말이다. 새로운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두 번이라도 읽을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