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급투쟁 - 난민과 테러의 진정한 원인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희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2015년 세계는 난민 문제와 그와 관련된 이슬람 테러로 홍역을 앓고 있는 중이다. 난민 사태의 발단은 시리아 내전, 리비아 붕괴 그리고 이라크 지역에서 발흥한 IS(이슬람 국가)의 폭력과 테러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대규모로 서방세계로 유입되면서 시작됐다. 슬로베니아 출신 진보성향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이번에 발생한 난민 사태에 대한 냉철하면서도 균형 잡힌 시선을 <새로운 계급투쟁>이라는 팸플릿에 담아냈다.

 

그전부터 슬라보예 지젝의 명성을 가히 지젝빠라고 할 수 있는 로쟈 작가를 통해 적잖이 들어온 터라 처음 만나게 되는 지젝의 책을 접하면서 내가 과연 다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긴 했지만, 역시 대중을 위한(?) 팸플릿 성격의 책이라 그런지 예상보다는 쉽게 빠져들 수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금번 난민 사태를 보는 서구인의 시선에 대한 기존의 사고와는 다른 지젝의 분석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가설 중의 하나는 난민들이 최종 목적지로 설정한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에 자리 잡은 시리아나 이라크 난민들이 절대 서방사람들에게 고마워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시리아나 이라크,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원인제공자가 바로 그들이라는 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이런 ‘실패한 국가’ 정부들이 국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발생한 대규모 난민 사태의 원인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영토분할로 생긴 폐해가 그 1차적 원인이며, 에너지자원을 둘러싼 국경을 초월한 다국적기업의 탐욕에 방점을 찍는다.

 

또한 진보진영에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무조건 국경을 개방하고 모든 난민을 받아들이라는 주장 역시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젝은 비난하고 있다. 물론 극우파의 인종차별적 주장보다는 도덕적으로 우월할지 몰라도, 국경개방과 난민수용 문제가 궁극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난민사태의 원인과 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으로 실패한 국가들의 안정화가 최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젝 주장의 핵심이다. 이슬람이라는 서구사회와는 상이한 풍습과 문화를 바탕으로 한 난민들이 서구사회에 동화되는 것은 정말 난망한 것이 현실이다. 지젝에 따르면 난민들은 서방국가들의 최상위 복지시스템의 혜택은 원하지만, 그들의 복지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이데올로기를 수용할 생각없이 자신들만의 생활방식을 고집하며 바꿀 생각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뼈아픈 지적일 수도 있겠지만, 균형잡힌 철학자로서 지젝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라고 주문한다.

 

오래전 베트남의 보트피플을 연상시키는 그런 절박함으로 정든 조국을 떠나 목숨을 걸고 서방행을 택하지만, 그들은 바라보는 서방의 시선은 착잡하기만 하다. 유럽연합 내의 이동은 쉥겐 협정 국가 간에는 자유롭지만, 그 외의 나라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것이 사실이 아니던가. 상품에 대해서는 국경을 초월한 이동을 무제한으로 허용하지만, 그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자주적 인간에 대해서는 통제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꾸만 원심력을 발휘해서 느슨해지려는 경제공동체 유럽연합의 미래에 최근 발생하고 있는 대규모 난민사태는 치명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민사태에 따른 이주민 문제는 이제 유럽이 공통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공동의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지젝은 좌파 진영의 휴머니즘에 입각한 온정주의를 배격하면서 실제적인 공존을 위한 방법에 대한 논의를 주문한다. 어느 사회나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의 규칙을 정해서 이를 위반할 시에는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신 나머지에 대해서는 무제한의 관용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우리가 처한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공존과 융화를 보장하는 ‘주도 문화’가 해답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울러 세계적 환경변화가 불러올 대규모 사회 변화와 인구 이동에 대비해서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이 될 수도 있다는 유연한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는 지적도 눈여겨 볼만하다.

 

지젝은 작년 파리 테러 때문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무자비한 보복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경계를 요청한다. 그런 주장 뒤에서 웃고 있을 세력이야말로 멈추지 않는 서방과 이슬람 세계의 전면전을 부추기는 주범이라고 그는 분석한다. 요원하기는 하지만 지젝은 새로운 방식의 계급투쟁을 의제로 삼아, 세계적 연대를 강조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주장에 도달한다. 유토피아적 발상일 수 있겠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패배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로 팸플릿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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