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김숨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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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독서모임 도서였던 김숨 작가의 <바느질하는 여자>를 다 읽으면서, 간간이 그녀의 전작 소설집 <국수>도 읽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자보다 후자가 더 훨씬 더 재밌었다. <국수>가 어쩌면 작가의 스타일을 잘 드러낸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메멘토 모리’라는 중세 이래 무한반복된 주제의 변주와 더불어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찌질한 모습일까 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타이틀인 <국수>를 가장 먼저 읽었다. <바느질하는 여자>에서처럼 남성성이 배제된 여성들만의 이야기다. 아이를 낳지 못해 자신의 집에 시집온 늙어가는 계모를 위해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화자의 이야기에는 처량하게 다가온다. 아니가 서넛 딸린 집에 와서 처음으로 만든 음식이 아마 국수였지. 요즘 누가 국수를 직접 반죽해서 먹나 하는 이야기는 ‘요즘 누가 누비옷을 지어 입나’라는 <바느질하는 여자>의 이야기와 묘하게 공명한다. 어쩌면 세태를 거스르는 그런 이야기에 작가가 집착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반죽의 시간이라는 추상화된 시간을 통해 과거에 대한 회한과 현재의 순간들을 훌륭하게 담아낸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표제작 <국수>에 나온 반죽의 시간이라는 표현은 내가 김숨 작가를 규정하는 구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국수라는 소박하면서도 간소한 음식을 통해 되돌아 올 수 없는 과거의 시간들을 갈무리하는 작가의 솜씨가 비범하다.

 

<바느질하는 여자>에서 우물집에 살며 서쪽방에 자리잡은 누비대를 떠나지 않는 어머니의 귀기 서린 이미지를 이 소설집의 곳곳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병과 사투를 하다가 세상을 뜬 며느리를 찾아가는 시어머니의 넋두리를 담은 <막차>에서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형해화된 현대 가족 시스템에서 자식된 도리는 하지 않으면서 금전등록기처럼 위급한 상황마다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는 행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지만 관계가 어디 그렇게 일방적일 수 있는가. 목울대를 울리게 하는 그런 질문에 작가는 귀기서린 결말로 독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시신을 모시고 귀향하는 길을 다룬 <옥천 가는 길>에서는 한술 더 뜬다. 응급차에 탄 자매와 응급차 운전사의 대화를 들으면서 비로소 독자는 응급차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그토록 생전에 가고 싶어하시던 옥천으로 모시는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다. 생전에 효도하라는 말을 귀에 목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터부처럼 막상 그 후회는 언제나 타이밍을 맞추는 법이 없다.

 

2016년을 휩쓰는 텔레비전 막장드라마에서는 넘볼 수 없는 성공신화를 육화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대중의 채워질 수 없는 저급한 갈망을 자극하지만 김숨 작가의 소설에서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인생극장을 조망한다. 주식으로 돈 벌어 보겠다고 시아버지의 얼마남지 않은 재산을 담보로 투자에 나섰다가 쫄딱 망하고, 원치 않는 부양을 하게 된 며느리의 푸념, 폐휴지를 주어 가며 추위와 고독 속에서 여생을 견디는 독거노인의 진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이유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가장의 폭주 등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내러티브가 연달아 독자의 가슴을 예리하게 타격한다. 어쩌면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언젠가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의 엄습 때문일까. 도대체 우리 삶의 행로에서 두려워해야 하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순간, 운명을 거슬러 삶에 회심의 반격을 기대해 보기도 하지만 아슬아슬한 결말에 도달해서 기다리는 것은 비극의 전조일 따름이다.

 

표제작 <국수>와 더불어 가장 주의를 기울여 읽은 소설은 <구덩이>다. 구제역이라는 희대의 재앙 때문에 돼지 살처분에 동원된 굴착기 기사인 화자의 인생유전이 내러티브의 전개와 동시에 진술된다. 구제역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죄 없이 죽어야하는 가엾은 동물들의 운명을 바스켓으로 다루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가 아내와 아들을 버린 원죄와 정확하게 귀결된다.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십수년간 보류한 자신을 생물학적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들의 심정이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한창 돈을 벌 수 있을 때, 건사하지 않은 가정으로 무슨 염치로 돌아갈 수 있냐고 김숨 작가는 독자에게 동의를 구한다. 그런 그의 내적 갈등은 돼지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거듭된 설사를 유도하고 피고용인의 의뢰에 따랐을 뿐이지만, 하수인으로 몰려 결국 폭력적 결말로 치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화자가 돼지들을 묻기 위해 파는 ‘구덩이’는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목적이 운명이 되는 순간, 비극은 현실이 돼 버린다.

 

김숨 작가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작가가 우리사회의 참 다양한 이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죽음의 변주와 삶에 대한 일상적 분노 그리고 숙명과도 같은 메멘토 모리라는 일관된 주제들을 수려하게 담보해낸 역작이 바로 <국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작가에는 일말의 유머를 기대해 본다면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김숨 작가가 곧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 과정을 다른 <L의 운동화>라는 제목의 경장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새로운 소설에는 또 어떤 서사와 스타일이 담겨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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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0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해석도 좋군요.^^
따로 따로 봐도 하나 하나 뜯어 놓고 봐도
음, 비슷한 관점인 것 같아요.
마지막 해석에 조금 갈리지만 ..
뭐..어디까지나..읽는 이의 마음이니..
참 좋습니다.
죽음의 변주 ㅡ삶에대한 일상적 분노 등 ㅡ으로 읽으시는 면 ㅡ신선 ㅡ해서.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어느새 2월 입니다.
멋진 시작 되시길 바랍니다 ^^

레삭매냐 2016-02-01 15:20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

책읽기는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독자의 자유라는 생각에 두서 없이
이런 저런 감정들을 나열해 봤습니다만.

[그장소] 2016-02-01 15:31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해석에 대해 ㅡ자유로울 수록
더 많은 상상력이 나올 수록
좋다고 보거든요.
읽을 수록 다채롭게 해석이 가능한 작품은
그야말로 보물이란 생각을 하고요!^^

어쩐지 ㅡ슈트라우스 ㅡ죽음의 변용 을
들어 줘얄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