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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비가 내리고
날이 차가워지면서,
어느 순간에 여름날의
무더위가 훌쩍 날아가 버렸다.
선선한 날씨가 독서하는데
있어서 집중력을 높여 주는 효과를 준 모양이다.
여름날 제자리걸음하던 독서에
비해,
책을 술술 넘어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때마침 만난 나카마치 신의
<모방살의>는 이 계절에 딱 맞는 그런
책이었다.
일본에서는
장르문학,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인기 없는 추리소설이 꾸준히 소비되는 것 같다.
우리가 순문학에
치중하면서,
태생적으로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추리소설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아서일까.
다양한 형태의 토종
추리소설을 기대하기란 역시 난망하다는 느낌이다.
제법 많은 일본 추리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새로운 작가 이름을 듣고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비채 블랙 앤드 화이트
시리즈로 처음 소개된 나카마치 신의 <모방살의>는 ‘서술트릭’으로 독자를 매혹시킨다.
7월 7일 오후 7시,
사카이 마사오란 이름의 젊은
추리소설가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는 사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역시 고전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타살의 흔적이 없고 죽은
장소는 밀실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작가는
마사오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가정 아래,
소설을
진행시킨다.
볼 것도 없이 표면상에
보이는 것처럼 자살이라면,
이야기 구성이
되겠는가.
자
그럼,
누가 그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힌 것인가?
교차해서 등장하는 두 명의
화자를 나카마치 신은 절묘하게 배치한다.
그리고 사카이 마사오가 죽은
이후의 날짜들을 며칠 단위로 배열한다.
서술이라는 기본구조로 독자를
속이는 트릭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두 명의 화자는 각각 다음과 같다.
한 명은 나카다 아키코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쓰쿠미 신스케 군이다.
전자는 저명한 소설가이자
소설의 신으로 불리는 세가와 고타로의 딸로,
현재 의학전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겠지만,
죽은 사카이 마사오와는
사랑하는 사이로 결혼을 약속하기도 했다.
자신의 피앙세가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죽었으니 남은 사람이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또 다른 편에서 마사오의
죽음을 추적하는 사람은 한 때,
고인과 문학 동인이기도 했던
역시 추리소설가로 지금은 주간지에 살인 리포트 따위의 글을 연재하는 쓰쿠미 신스케다.
원작이 사십년도 전에
발표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도쿄와 도야마
간(사실 거리가 얼마인지 자세히 알 수가
없다)의 대중교통 수단이나 거리감 등은 현재와 매우 다를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정보들도 주인공들이 하나 같이 직접 방문해서 탐문하는 고전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추리소설가로 등단은 했지만,
발표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해 고민하던 작가가 신병을 비관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카이 마사오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가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할 리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 가운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카이
마사오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한 꺼풀씩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우선 도쿄에서
온 여탐정으로 알려진 나카다는 마사오가 죽기 전에 도가노 리쓰코라는 묘령의 여성으로부터 거액의 수표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그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나카마치 신이 신인 시절에
발표한 글이어서 그런진 몰라도,
나카다의 추리에는 빈틈이
많고 논리적 비약이 상당히 눈에 띈다.
리쓰코가 마사오를 죽였을
거라고 단정한 나카다는 그녀가 제시한 사진 알리바이를 깨는 데 전력을 다한다.
한편,
쓰쿠미는 마사오의 작품
발표에 걸림돌이었던 <추리세계>의 편집차장 야나기사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의
알리바이에 도전한다.
야나기사와의 여동생이 사카이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문은 쓰쿠미의 추측을 확신으로 만든다.
추리소설 속에
죽은 추리소설가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소설은 더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그의 죽음을 추적하는
나카다와 쓰쿠미가 탐정 뺨치는 실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직업이 추리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 쓰쿠미야 그렇다 치고,
일개 편집자인 나카다 쪽은
거장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요즘 같은 디지털 카메라
시대라면 불가능할 필름 카메라 사진을 이용한 카메라 트릭이라던가,
일본 특유의 한자 이름
읽기(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트릭 등은 정말 클래식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무명작가의 미발표 원고를
거장이 표절했다는 설정과 독자가 예상하고 있던 반전을 한 번 더 비트는 나카마치 신의 기교는 작가의 한판승으로 봐도 좋을 듯
싶다.
작가는 누가 범인이냐고
추궁하는 줄거리의 전개에 독자가 집중하도록 하는 함정을 파놓고 허를 찌르는 결말의 반전을 준비한다.
도대체 누가
범인인가,
고전 중의 고전이지만 또
추리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사건발생,
추궁,
전개 그리고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착착 붙은 구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야기를 실제적으로 이끌어
가는 나카다와 쓰쿠미에게 사건에 관련된 캐릭터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정보를 공유해 주는 장면이 다소 비현실적이긴 했지만 소설의 진행상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없었더라면 화자들이
어떻게 이야기의 실마리를 이어갈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결말의 쎈 한 방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모방살의>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