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었던 모든 것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박하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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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로 문학판이 어수선하다. 답답한 심정에 블로그에 글을 쓰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타고난 게으름 탓에 미루다가 결국 쓰지 못했다. 나 같은 보통의 독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역시나 독서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이라는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작가의 짧은 소설 <사랑이었던 모든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목에서 들어나는 사랑은 과거 시제이어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소설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이제 막 13년을 만난 여자 친구와 극적인 이별을 앞두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아마도 40) 다니는 이제 막 자신이 아니면 안되는,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그래도 그 일보다 여자 친구와의 관계 개선이 우선이 아닐까 하는 독자의 노파심은 다니의 과거를 들여다 보며, 자연스레 관심사에세 멀어진다. 왜소증을 앓는 주인공의 핸디캡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다니의 어머니가 그를 작은 거인이라고 의식적으로 불렀지만, 세상은 그의 외모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자신을 돌볼 생각이 전혀 없던 형 때문에 가출을 결심하는 열세 살의 다니. , 그전에 더 극적인 만남이 하나 더 있었구나.

 

열 살 때 편도선 수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다니는 향후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마르틴과의 숙명적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을 가지고 3년 뒤, 카프리 섬으로 가는 페리에서 이번에는 조지라는 자신보다 딱 반세기를 더 산 남자와 만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운명에서 진주 같은 아니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소년이 자라 실종된 아이들을 찾는 일을 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과연 삶에서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그런 만남과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르틴과의 첫 만남으로부터 수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다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과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나의 행복의 현재 좌표에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다니가 마주한 연인과의 이별 문제 그리고 당장 자신에게 맡겨진 실종된 아이를 찾아야 하는 긴박감 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교차되며 독자를 사유의 미로 속으로 인도한다.

 

다니에게 왜 사랑은 모두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일로 간주되는 걸까 하는 생각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궁금했다. 오래 전에 어른이 되었지만, 박탈당한 유년 시절의 추억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싶었던 일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고, 먹고 싶었던 것도 많았던 그 시절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부모님이라는 존재의 부재 탓은 아니었을까. 그래 사랑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일들이 있을 수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다니에게 얼치기 심리 분석을 시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의 삶 속에 영향을 미친 이유들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타인의 삶에 견주어 나의 그것을 반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어느 정도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이겠지.

 

십 수 년 전에 들렀던 카프리 여행에서 고생도 단단히 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카프리 섬에 갔었지 하며 미소를 지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다니처럼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촘촘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는 없었지만, 여전히 그 때 시간이 너무 없어서 사지 못한 수제 샌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곱씹어 봤다. 그 때 만약에 그 수제 샌들을 샀다면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으려나. 소설처럼 세상만사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념이 꼬리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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