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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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의 저자 토머스 하디의 책을 처음으로 읽게 됐다. 때마침 좋아하는 배우인 캐리 멀리건 주연의 동명의 영화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가 다시 영화화되어 개봉 예정이라고 해서, 책을 읽기 전에 영화 트레일러를 찾아보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러브스토리이자, 최초의 페미니스트 문학이라는 평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발표된 1874년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전개와 진행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근래에 소위 말하는 막장드라마에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보통 고전 작품의 전개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는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작품은 <콘힐 매거진>이라는 익명으로 연재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모두 57개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계된 진행을 따라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밧세바 에버딘(다윗의 부인이자, 솔로몬왕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다)과 관련된 세 명의 남자 주인공들 간의 치열한 러브스토리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밧세바를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28세의 남자 가브리엘 오크는 뛰어난 목동이자 농부로, 밧세바를 만난 근 순간부터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그를 습격한 불운 덕분에 양떼를 모두 잃어버리고 고용 목동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밧세바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 두 번째 남자는 웨더베리에서 이름난 농장주인 윌리엄 볼드우드로 그녀가 장난으로 보낸 밸런타인 편지 한 장으로 그녀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밧세바에게 가장 치명적인 사랑은 바로 프랭크 트로이 하사다. 밧세바의 고용인인 패니 로빈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뻔하기도 하지만 엇갈린 운명 덕분에 패니가 아닌 밧세바와 트로이는 결혼하게 되지만, 이 결혼은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밧세바를 사랑하면서도 냉철하게 판단한 가브리엘 오크의 표현대로, 그녀는 과거에 가난했지만 비교적 교육을 잘 받았고 뛰어난 외모로 뭇 남성들의 인기를 끌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첫 만남에서 그녀를 평가했듯이 허영심과 특정한 남자의 소유물이 되고 싶지 않다고 당차게 이야기하는 밧세바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여성상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그런 자신의 자존감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죽은 숙부의 유산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농장주로 데뷔하고 나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경제력의 힘이었다. 당시 서구사회를 휩쓸고 있었던 생시몽주의 다시 말해 공상적 사회주의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시대를 앞서간 빼어난 밧세바 에버딘이라는 캐릭터와 그녀와 관계된 남자들의 로맨스를 엮어 가는 솜씨와 소설의 전개와 진행방식도 뛰어 나지만, 소설의 초반에 하늘에 떠 있는 별들로 시간을 세는 남자 가브리엘 오크의 세계를 기술하는 장면은 특히 놀라울 정도였다. 터무 없는 전개방식의 현대 막장물보다, 우리 세계를 감싸고 있는 우주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한 묘사와 어쩌면 인류가 지향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상주의를 꿈꾸며, 시대를 뛰어넘는 영원한 주제인 남녀간의 사랑 문제(삼각관계를 뛰어넘는 사각관계)를 다루는 대가의 실력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무일푼 신세가 된 가브리엘 오크가 밧세바 농장의 불을 끄고 그녀에게 목동으로 고용되어 찾아간 맥아 제조소에서 앞으로 같이 지내게 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1915년 무성영화로 처음 영화화된지 딱 백년 만에 다시 영화로 우리 곁을 찾아오는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가 너무 궁금하다. 새로운 할리우드의 뮤즈로 부상한 캐리 멀리건이 과연 강인하면서도 허영심 많고, 또 한편으로는 부서지기 쉬운 팔색조 같은 다채로운 밧세바 에버딘의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할지 기대가 된다. 역시 뛰어난 고전은 시대에 구애 없이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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