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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여자
카트린 아를레 지음, 홍은주 옮김 / 북하우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올해 들어 한 15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해서 도통 손에서 놓을 줄 몰랐던 프랑스 출신 작가 카트린 아를레의 <지푸라기 여자>가 그 중에서 제일 재밌었다고 한다면 표본이 너무 적다고 욕을 먹으려나. 다 읽고 나서 두 가지 점에서 놀랐는데, 하나는 이 책이 자그마치 60년 전에 쓰였다는 사실과 다른 하나는 완전범죄를 그린 소설이라는 점에서였다. 정의가 항상 승리하는 게 아니었던가? 미안하다 객쩍은 농담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본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가 자꾸만 떠올랐다.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타인의 삶을 사는 리플리의 모습이 소설의 주인공 힐데가르트 마이스너의 그것과 겹쳐 보였다. 전후 패전 독일 함부르크에 사는 서른네 살 먹은 힐데가르트의 현실은 보잘 것 없지만, 그녀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할 준비된 여자다. 그런데 그것이 심각한 범죄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도 수상한 시절을 살다 보니 주변의 모든 것에 회의적인 시선을 두기 마련인데, 이런 독자와 달리 자신을 가난에서 구해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그녀의 도발적인 자세가 어째 불안하기만 하다.
어느 억만장자가 신붓감을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보자마자 힐데가르트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상황이라고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자신을 어필하는 편지를 보내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냥꾼의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린다. 마침내 기다리는 답장이 도착하고, 코트다쥐르의 칸에서 미래의 공모가 안톤 코르프와 만남을 가진다. 물론 코르프가 그녀가 꿈에 그리던 부를 안겨줄 드라마 속 주인공은 아니다. 그는 그 꿈을 실현시켜줄 남자의 오랜 비서란다. 코르프는 가난탈출에 목숨 건 힐데가르트가 거부할 수 없는 은밀한 유혹을 제안한다. 자신이 모시는 억만장자 칼 리치먼드의 마음을 빼앗아 그와 결혼해서 그의 재산을 가지라는 유혹이다. 물론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의 배려를 잊지 말라는 차원에서 그녀를 입양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한다. 미래에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우리의 가련한 힐데가르트는 능란한 공모자 코르프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어 임무에 착수한다.
자 이쯤에서 우리의 억만장자 칼 리치먼드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독일 출신의 괴팍한 노인네는 수상한 방법으로 돈을 끌어 모았는데, 그렇게 자신에게 집중된 재산은 자본주의의 특성상 자가 증식을 거듭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재화의 모습으로 그에게 보답했다. 돈의 힘으로 이 세상에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칼 리치먼드는 주변의 자메이카 출신 하인들을 개처럼 부리는 등 그야말로 졸부 행세에 여념이 없다. 그의 비서 안톤 코르프는 무소불능한 자본 권력을 행사하는 자기 주인의 헛된 자존심이야말로 그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제는 자신의 의붓딸이 된 힐데가르트를 간호인으로 동원해서 공략에 나선다.
이 정도라면 <지푸라기 여자>가 그저 그런 재밌는 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이십대 작가 카트린 아를레는 자신이 삶에서 체험한 것들을 뛰어넘는 범상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소설의 서사를 비틀기 시작한다. 힐데가르트와 코르프의 굳건해 보이는 동맹은 졸부 칼 리치먼드의 급사 때문에 종착역을 알 수 없는 과속에 돌입한다. 결국 모든 것의 시발점이었던 막대한 유산 상속을 위해 힐데가르트는 새로운 유언장의 공증을 위해 자기 남편의 죽음을 감추는 자충수를 둔다. 문제는 칼 리치먼드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닌 타인에 의한 살인이었다는 점이다. 아니 도대체 이 소설이 어떻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이렇게 노선 이탈을 마구 감행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물론, 독자는 기대를 벗어난 서사구조의 일탈에 스릴을 느끼면서 힐데가르트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의 여신의 마지막 결정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도저히 힐데가르트의 의도에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고지식한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가난이 싫어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한 패전국 출신의 아무런 미래도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무력한 여성이 마주하게 되는 운명을 무조건 사회 부조리 혹은 소설의 곳곳에서 등장하는 연합군의 폭격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독일 사람들은 특히 그들이 선거를 통해 선출한 합법적인 지도자가 누구였는지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무조건 개인의 노력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가난이 싫어 돈 많은 갑부와 결혼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도리어 묻는 힐데가르트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는지 묻고 싶다. 그런 점에서 안톤 코르프가 지적한 대로, 부자가 되기 위해 지난한 노력과 시간, 행운 그리고 모욕 등을 감수할 수 있는 자만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예언(전적으로 공감하는 바다)이 과연 이십여 년 산 작가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점이 믿을 수가 없다.
카트린 아를레 작가는 추리 범죄소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기발한 트릭 대신, 힐데가르트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묘수랍시고 쓰지만 개미지옥처럼 서서히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통제를 벗어난 상황에 대한 묘사에 집중한다. 악당이 결국 모든 것을 거머쥐게 되는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하긴 진실과 가치가 전도되고,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미상불 지푸라기에 매달린 여자가 낯설 일도 아니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은밀한 유혹>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을 거듭해온 <지푸라기 여자>가 요즘 원소스멀티유즈 미디어셀러의 대세를 타고 새롭게 단장을 할 모양인가 보다. 모쪼록 진부한 해피엔딩 결말 대신 원작에 충실한 비극적 결말의 영화적 구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