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 소녀 - 테마소설집 : 십대의 성과 사랑을 말하다 바다로 간 달팽이 13
김도언 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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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된 순전한 이유 중의 하나가 청소년들의 성과 사랑을 담았다는 소설집의 말미를 차지하고 있는 주원규 작가 때문이었노라고 말한다면 과언일까. 그리고 보니 아주 오래 전에 보낸 청소년기에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그 시절에는 하면 안되는 것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금지된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끝나자마자 하지 말라는 짓은 죄다 해본 것 같다. 물론 소설집에도 나오듯이 그런다고 들끓는 갈증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주원규 작가의 <엑소 도둑>부터 먼저 읽기 시작했다. 소설집을 대할 때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순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읽어도 된다는 점이 아닐까. 역시나 청개구리 심뽀로 그렇게 했다. 요즘 인기 아이돌 그룹이라는 엑소를 등장시키고, 그 엑소의 멤버 카이라는 청년의 티팬티를 훔쳐 달라는 정화의 부탁에 주인공 막구가 긴장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역시 단편답게 잔가지들은 죄다 쳐내 버리고 본론으로 치고 들어간다. 물론 그 임무가 어려우니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 걸그룹 뺨치는 미모의 정화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면, 막구와 자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어째 거래가 불온하다는 생각이 어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런 어른의 경고는 막구에겐 들리지 않는다. 이 일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간도 정해져 있다. 그래서 예전 동료 돌격대를 소환한다. 그리고 돌격대가 좋아하는 피자빵을 제공하면서 협력할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어렵사리 얻은 카이의 티팬티를 정화에게 가져다 주었더니, 온라인 사이트에 올려 팔아먹을 궁리를 하고 있다. 그렇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순수’한 팬심이 아니라 금전이었던 것이다. 일종의 클리셰이이긴 하지만 성과 사랑마저 금전으로 치환되는 순수하지 못한 그네들의 성정을 주원규 작가는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파고든다.

 

표제작 <안드로메다 소녀>에는 정말 안드로메다 출신의 소녀 소희가 등장한다. 이제는 아련히 스러져간 원더걸스의 만두소희가 떠오르는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정글 같은 남학교에서 소설가를 꿈꾸는 나는 소희 같은 외계인과 같은 존재다. 그런 이방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동질감은 가질 수밖에 없다. 안드로메다에서 온 이들은 분리된 게토로 몰아넣고 차별화하고 장면은 현실세계에서도 볼 수 있는 제노포비아(xenophobia)의 다름 아니다. 서유럽에서 악화일로에 있는 반무슬림 정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이에게 조금의 관용(똘레랑스)도 허용하지 않는 경직화된 사회가 보이는 듯 싶었다. 안드로메다가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지구로 왔다는데, 지구마저 그들이 기대한 안식처가 아니기에 다시 돌아가겠다는 소희의 말은 이상하게 들린다.

 

구지구와 신지구(나는 처음에 이 단어를 old earth와 new earth로 이해했다)로 분리된 공간이 등장하는 <수지> 역시 비슷한 선상에서 읽을 수 있다. 무조건 새로운 것이 좋다는 걸까, 구지구에 사는 찌질한 인생들은 라디오헤드의 우울하기 짝이 없는 노래 <크립>을 들으면서 밤마다 달을 보기 위해 신지구를 찾는다. 달조차 신지구와 구지구의 차이가 있단 말인가. 어느새 일상화된 차별은 서로 공존하는 공간마저 그렇게 나누고 있었다. 십대들에게 그런 공간마저 허용하지 않는 공고한 기득권의 폭력적 양태를 은근하게 비꼬고 있다.

 

꽃처럼 빠르게 시들어 가는 열망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이라고 할 수 있는 <팬티>는 남고생이었다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상상해봤을 그런 발칙함에 도전한다. 나는 꽃처럼 아름다운 교생 선생님의 첫 수업 시간에 칠판을 빛의 속도로 지우겠다며 창문을 열었다가 그만 교생 샘 영희 씨의 치마를 마릴린 먼로의 그것처럼 펄럭이게 만든다. 주저없이 담임샘의 몽둥이가 나의 머리통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들었지만, 이 사건으로 나는 반의 일약 영웅이 됐다. 야릇한 상상에 젖어 사촌누나의 팬티라고 생각하고 습득한 팬티(엄마의 팬티였다)를 가지고 자위를 시도하다가 누나에게 현행범으로 걸려 변태라는 치욕적인 오명을 얻게 된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영희 씨가 자신이 멘토로 따르는 협이 형의 형수감이라는 얘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어이 그녀의 팬티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실물보다 상상이 주는 판타지가 큰 법인 것처럼, 어렵게 이뤄진 나의 열망은 역시 빠르게 소멸해 버렸다. 뒤 따르는 에피소드는 사족처럼 다가온다.

 

<여수 여행>은 또 어쩔 수 없이 그룹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연상케 한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아련한 로맨스를 떠올리게 한다면, 김해원 작가의 <여수 여행>은 임신한 십대 소녀만 바라보고 살던 엄마의 상실감과 어쩌겠니 그래도 계속 살아야지라는 체념 섞인 이야기로 버무려져 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굳이 무시하면서 사는 우리네 삶을 예리하게 타격하는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고 산전수전을 다 겪어도 원하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허둥대는 건 마찬가지라는 작가의 말에 왜 이렇게 공감이 가는 걸까.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청소년들의 성과 사랑을 다룬 <안드로메다 소녀>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적재되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다가도 그래, 나도 그 때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에 과거의 상념 속으로 젖어 들기도 했다. 어느새 소년은 나이를 먹어, ‘왜 안돼’라고 외치던 시절을 지나 왜 안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나이를 먹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구차한 변명을 대야 하는 그런 순간이 다가올수록 쩔쩔맬 상상을 하니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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