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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티무르 베르메스 지음, 송경은 옮김, 김태권 부록만화 / 마시멜로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70년
만에 총통이 귀환했다. 아, 어느 총통을 이야기 하냐고? 우리 모두가 죽었다고 믿어온 바로 그 문제적 인간, 아돌프 히틀러다. 독일 출신의 작가
티무르 베르메스는 “자연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이라는 표현으로 1945년 4월 베를린 방어전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문제적 인간을 문학적으로
소생시켰다. 사실, 히틀러의 사후 그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아 독일제국의 총통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사실 유보트 잠수함을 타고 남미 혹은 미지의
남극 대륙으로 망명해서 제4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횡행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그런 음모론에 비해 베르메스 작가의 선택은
훨씬 탁월하다. 그것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의 부활에 대한 잡다한 논란을 틀어막고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그렇게
21세기 독일의 정치적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에서 부활한 히틀러는 정확하게 자기가 지난 세기에 죽던 시점의 복장 그대로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베르메스 작가가 이 풍자 소설에서 그린 히틀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악(great evil)의 근원자이자 전쟁광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는 그런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냉혹하고, 자기가 내린 결단에 있어서는 추호도 망설임도 없는 그런 독재자라기보다 현실에 직면한 문제들을 끝없이
사유하는 철학자 같은 이미지라고나 할까. 물론 우리의 총통은 예나 지금이나 독일 민족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으며, 제국의 부흥이야말로 민족의
유일한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모두 진짜 히틀러를 텔레비전 코미디물에 등장하는 메소드 배우라고 생각한다. 항상 그들은 정도를 지나치지 않았냐, 얼마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이 정도의 연기가 가능하겠냐고 상찬을 보낼 지경이다. 문제는 1930년이나 21세기나 그를 제외한 모두가 히틀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엄청난 인명이 사상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으며, 그 결과로 독일 민족과 국가는 파멸 직전까지
몰렸었다.
1930년대에도
히틀러는 이제 막 도래한 라디오 방송 시절의 일약 라디오스타였다. 패전과 살인적인 인플레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실업률도 실의에 빠져 있던
독일민족의 각성을 이끌어 내는데 한몫 단단히 했던 나치 선전상 닥터 괴벨스의 선전술도 빼놓을 수 없지만, 히틀러 자신의 카리스마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요인이었다. 현실세계에 다시 등장한 히틀러는 이번에도 최첨단 미디어를 이용해서 단박에 스타 반열에 오른다. 인터넷 시대의 총아로
등장한 유튜브는 인터넷에 올려진 동영상을 철저하게 타자화시키는 전략으로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 잡아왔다. 히틀러를 닮은 코미디언이 동영상 하나
정도는 독일연방공화국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을 행간에서 읽었다면 무리일까.
이렇게
거칠 것 없이 달리던 히틀러에게도 최대의 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홀로코스트였다. 그를 발탁해서 일약 방송스타로 키워준 플래시라이트
사의 여걸 벨리니도 신신당부한 것이 있으니 절대로 방송에서는 유대인에 관련된 것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비서로 열심을 다해 돕던 베라
크뢰마이어 양의 할머니가 연관된 에피소드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독재자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일깨워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은 좌충우돌 부활한 독재자의 본모습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정도의 균형도 잡아주지 않는다면, 소설 <그가
돌아왔다>에는 레드라이트가 들어왔을 지도 모르겠다.
한편
다시 태어나 현실세계에 빛의 속도로 적응한 희대의 독재자는 민주적 절차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독일연방공화국에서 기존의 우익테러 같은 방식은 씨가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모양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발언을 들을 때마다 자신을 호위무사처럼 옹위하던 게슈타포와
친위대를 그리워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세상을 맞은 독재자는 여전히 자신의 인종차별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슬라브 민족을 2등
국민으로 삼아 에너지 자원의 획득을 위한 정복전쟁에 대한 망상을 저버리지 않는다. 문제는 70년 전에는 그의 망상이 엄청난 폐해를 초래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가
돌아왔다>의 재미를 더해 주는 작은 에피소드들도 눈여겨 볼만하다. 예를 들어, 뉴스 프로그램 중에 계속해서 화면에 등장하는 자막과 단신들은
뉴스 진행자가 전해 주는 뉴스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히틀러식 텔레비전 분석의 정점이다. 선진국병이라 불리는 저출산과 낙태 문제를 극렬하게
비난하면서,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훗날 동부전선에 투입될 정예 사단 수가 줄어들 거라는 식의 사고는 정말 못말릴 정도다. 공원에서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면서 뒤처리를 하는 애견인들을 미친여자라고 부르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마케팅 천국의 시대에 비용이 안드는 선전술의 방식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지지자를 규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덧글배틀도 마다하지 않는 총통사령부의 문제적 인간은 역시나 히틀러다운
발상이다.
소설의
말미에는 히틀러의 집권기를 다룬 만화를 그린 김태권 작가가 그린 서울에 나타난 히틀러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작가는 히틀러가 구사하는 독일어
대신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영어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코스프레한 히틀러로 한껏 희화화한다. 하지만 한 때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독재자가 요즘 우리 사회 갈등의 현장 곳곳에 준동하는 우익과 결탁했을 때 과연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으로 남겨 두었다. 과연
우리 사회가 독일처럼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으로 어떤 가치까지 관용적으로 대할 수 있을지 그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