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 사자심왕 리처드의 반격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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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기게 연재와 출간을 이어가고 있는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 그 다섯 번째 편을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도서관에 읽을 만한 책이 없다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도, 또 다른 작가의 생각을 빌어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천 년 전 서사는 다채롭게 각색되기 마련인데, 지난 천년 이슬람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살라딘의 명성은 김태권 작가의 책에서도 여전히 빛난다. 이미 전편에서 장기와 누레딘의 뒤를 이어 마침내 시리아와 이집트로 나뉜 이슬람 세계를 통일하고, 성지 예루살렘 회복에 나선 살라딘은 히틴 전투에서 십자군 정예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그들의 오랜 숙원을 이루는데 성공한다. 물론, 이슬람군의 군사적 성공은 성지 실함이라는 서방 세계의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번에는 잉글랜드, 프랑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군주들이 직접 십자군 원정에 나서게 된다.

 

 

김태권 작가는 이번 편의 상당 부분을 살라딘의 호적수로 등장하는 사자심왕 리처드에게 할애하고 있다. 프랑스왕 루이 7세의 왕비이자 아키텐의 상속녀였던 엘레오노르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와 재혼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중세 기사의 전형으로 불리는 리처드였다.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보인 리처드는 그 중에서도 특히 최고의 전사로 추앙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버지와의 내전도 마다하지 않는 불같은 성미로 치열한 왕위 계승 다툼 끝에 왕위에 오른 사자심왕은 바로 성지 회복의 기치를 내걸고 원정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기사는 바로 리처드왕 시대에 잉글랜드에 살던 유대인에 대한 박해였다. 고대 이래 뿌리 깊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리처드 시대에 잉글랜드에서 폭발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여기까지 딱 절반으로 잡고, 다시 무대를 예루살렘으로 돌려 히틴 전투의 대승을 바탕으로 마침내 예루살렘을 프랑크 족의 손아귀에서 탈환한 살라딘이 서방인 들에게 어떻게 관용을 베풀었는지 김태권 작가는 공을 들여 기술한다. 아무리 적으로 싸우는 사이였지만, 명예를 존중하는 기사에게는 관용을 베풀었고 샤티용의 르노 같은 파렴치한 싸움꾼에게는 그런 관용을 허용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중세 기사도의 전범을 살라딘이 보여 주었노라고. 그리고 다시 한 번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그야말로 꽃미남으로 등장한 이블린의 발리앙이 40대 중반의 남자였다는 점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뛰어난 전사 발리앙도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살라딘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만다. 발리앙처럼 살라딘의 앞에서는 모두가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했지만, 이교도와의 약속 따위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유권해석으로 스스로의 명예를 실추한 기사들의 배은망덕한 행위를 꼬집는 것도 작가는 잊지 않는다.

 

원정길에 사이프러스에 들러 결혼식도 올린 리처드는 마침내 팔레스타인 땅에 상륙해서 서방 최고의 전사답게 자신의 싸움꾼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죽했으면, 김태권 작가가 리처드를 일본 만화 북두신권에 등장하는 주인공 켄시로에 대입했을까. 이슬람 수비대가 지키던 아크레 공방전을 승리로 이끈 리처드는 길고 지루한 협상 끝에 항복한 무슬림을 모두 학살하는, 살라딘의 관용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슬림을 충격으로 몰아 넣는다.

 

아무래도 3차 십자군 원정의 주인공이 리처드이다 보니 다른 두 명의 지휘관인 필리프 2세나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느낌이다. 3장 <예루살렘의 장> 초반에 나오는 십자권 원정로를 보면 잉글랜드군과 프랑스군은 바닷길로 진격한 반면, 프리드리히는 육로로 통해 동로마제국을 거쳐 소아시아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도 앙숙이긴 하지만, 필리프 2세와 잘만 협상을 하면 프랑스 영토를 거쳐 손쉽게 진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필리프 2세는 중무장한 잉글랜드 군대를 자신의 영지에 들여 놓는 그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겠지. 리처드가 잉글랜드에서 아버지 헨리 2세를 상대로 치른 내전을 생각해보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김태권 작가는 기존의 십자군 원정의 기술에 비대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는 자세가 돋보였다. 뒤에 실린 도움을 받은 책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나도 읽은 아민 말루프의 책이 눈길을 끌었다. 타리크 알리의 <술탄 살라딘>은 나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역사 기술과 연구가 서양에 치중되다 보니 십자군 원정을 보는 시각 역시, 그네들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단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 고문서와 문헌을 참조해서 무기와 복식 등등의 세밀한 점까지 신경 쓴 점도 멋지다. 당대에 그렇게 기록을 남기고 그림을 그렸던 중세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이 천년 뒤에 이런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될 줄 알았을까 궁금하다.

 

오래 기간 연재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이제 6권을 마지막으로 완간된다고 한다. 한 때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작가의 다음 번 창작 오딧세이는 무엇이 될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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