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가공선 창비세계문학 8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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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나라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문학 부분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는 느낌이다. 문학상 수상이 그 나라 문학의 척도가 될 순 없겠지만, 우리와 달리 이미 두 명의 노벨문학상까지 배출했단 점을 고려해 볼 때 마냥 백안시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창비 팟캐스트에서 황정은 작가의 소개로 언제고 읽어야지 벼르고 있던 코바야시 타끼지의 <게 가공선>을 오늘에서야 작심하고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게 가공선>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걸작이라는 말 그대로, 러시아 캄차카 반도에서 게를 잡는 게 가공선 어부와 선원들이 선장과 감독의 비인간적 처우에 저항해서 연대하고 조직해서 승리를 거둔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29년은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가 그야말로 기승을 부리던 시기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국제사회에 제국주의 열강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우리나라와 타이완을 병탄하면서 그야말로 욱일승천의 기세였다.

 

일본 산업화의 이면에는 소설에 묘사된 대로, 노동자 농민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착취가 자리잡고 있었다. 북양어업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내는 자본가들은 정치권과 결탁해서 일본의 영역을 사할린을 넘어 러시아 영토 캄차카 반도까지 확장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 재벌, 군국주의 정부 그리고 군부 연합체는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자 빈민을 착취하면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도모했다. 소설에 나오는 내지나 일본 도호쿠 지방의 빈민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쫓겨나 홋카이도로 이주해서 부농이 되는 꿈을 꾸지만, 밑천 하나 없이 맨몸뚱이로 황무지를 개간해서 옥토로 만든 그들을 기다리는 건 가혹한 토지수탈 뿐이었다. 그렇게 막장으로 내몰린 농민, 탄광 출신의 광부, 가난한 학생들은 계절노동자로 변신해서 홋카이도 남단의 하코다테에서 출항하는 핫꼬오마루에 승선한다.

 

 

 

 

 

코바야시 타끼지가 묘사하는 게 가공선 핫꼬오마루의 모습은 지옥도 그 자체다. 반항적인 어부를 윈치에 매다는 가혹행위는 다반사고, 게가 한창 잡히는 혹한의 계절에 무리하게 어부들을 폭풍(토끼)이 몰아치는 바다로 내몰고, 그들이 설사 귀환하지 못한다고 해도 선주인 자본가는 배를 보험에 들어놔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식의 인명경시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대나무 채찍과 몽둥이 찜질로 몸이 아프거나 다친 어부들도 예외 없이 게 으깨는 작업과 게 가공 작업에 내모는 비인간적 감독의 모습은 끔찍하다. 마치 한 편의 르포르타주를 보는 것처럼 작가는 그렇게 생생한 비극을 연출한다.

 

얼마 전 들은 다산북스 팟캐스트에서 강신주가 박사가 지적한 대로, 비참한 죽음이라는 벼랑 끝에 내몰린 어부들은 비로소 자각한 주체가 되어 그들을 억압하는 세력에 맞서 저항과 연대를 시작한다. 작가의 서술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일본 군부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두려워했는지 잘 알 수가 있었다. 배가 난파되어 러시아 령에 상륙한 일본 어부들은 얼치기 중국 통역을 통해 적화선전을 접한다. 그것을 비롯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말더듬이-학생 그리고 까불지마 어부는 본격적인 태업과 파업을 조직한다. 노동자들은 비로소 조직화된 힘이야말로 그들을 자본가의 탄압에서 구해줄 저항 무기라는 점을 깨닫는다. 물론, 자신들에 낸 세금으로 유지되는 군대가 자신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일보후퇴였다.

 

 

 

적은 팜플렛 분량의 소설이지만, 그 울림과 반향은 예상했던 것 이상이다. 어부와 선원의 갈등은 지금도 재현되고 있는 노노갈등의 전형처럼 다가와서 한편 씁쓸하기도 했다. 일종의 이이제이 전술이라고나 할까? 그저 살아남기 위해 치르는 치열한 내전의 모습은 비극의 원형을 담보한다. 장르문학이 판치는 현대 일본문학에 이런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현상은 동서고금은 막론하고 상이하지 않다는 점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작가가 특정한 인물이 주도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각성해서 저항을 이끌게 하는 설정도 마음에 들었다. 과연 우리 편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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