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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
김병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1월
평점 :
다음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사람의 탈>, <아버지의 길> 그리고 <디데이>. “노르망디의 코리안,” 딩동댕이다. 오래전 어느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식민지 조선 출신 일본군에서, 소련군으로 그리고 다시 독일 동방대대 소속으로 최전방 서부전선에서 미영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된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과 만났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것 참 이야깃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한 이가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디데이>의 저자 김병인 씨의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마이 웨이>가 개봉 대기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개의 소설에서 조금씩 디테일은 다르지만, 일본군-소련군-독일군으로 죽음의 전장을 전전한 주인공이라는 큰 줄기를 공유한다. <사람의 탈>과 <아버지의 길>이 그런 주인공에 초점을 맞췄다면, <디데이>는 그 위에 하나의 토핑을 더 추가한다. 주인공 한 대식의 라이벌로 일본 제국주의의 화신 후지와라 요이치가 등장한다. 소설은 그래서 대식과 요이치의 시선에서 동일한 사건을 다루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그래서인지 책의 가독성은 그야말로 몰입되는 순간, 폭발해 버린다.
일본의 조선 지배에 항거하다가 불령선인으로 몰려 일본 헌병의 손에 죽은 대식의 아버지의 비극은 그대로 묻혀 버린다. 아들 대식은 후지와라 가의 호의로 남작당에 둥지를 튼, 대식네 일가가 보기 싫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을 품는 요이치. 육상 트랙 경주를 시작으로 대식과 요이치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막을 올린다. 때마침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의 쾌거로 대식은 자신이 최고로 잘하는 달리기를 통해 집안의 간난을 일소에 해결하려는 꿈을 꾼다.
하지만, 일본 지배하의 피지배민족인 조선인이 일본 제국의 신민을 이기는 용서할 수가 없었던 이들은 대식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다. 결국 아버지의 원수인 일본군이 되어 대식은 전장으로 끌려간다. 다른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강제로 징병되었다면, <디데이>에서 주인공은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본군에 지원한다. 피 끓는 제국의 청년이었던 요이치 역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군에 입대한다. 그 둘이 투입된 노몬한 전투로부터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뭐 좋다. 이런 기가 막힌 이야기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건 아마 문학인으로서 결계일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식민지 조국의 민족해방이라는 현실적 문제의식보다, 올림픽 대회에 나가 개인의 영달을 이루겠다는 대식의 욕망이다. 대식이 피와 살이 튀던 노몬한의 전장에서, 비참한 소련 굴라크에서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에서 살고자 했던 이유는 오로지 올림픽 제패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그 꿈을 가슴팍에 일장기를 달고 이루고 싶었던 걸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소설 <디데이>는 암울한 식민지 현실과 개인의 꿈이라는 가치를 교환해 버린다.
“인공적인 느낌이 완전히 배제된 원초적인 질주. 비본질적인 것들을 모두 제거한 순전한 본질로의 회귀, 바로 그것이었다 (179쪽).”
작가는 대신 “명백하고 즉각적인 인과관계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골수 제국주의자이긴 하지만, 전장과 기나긴 포로생활을 통해 갱생의 길을 걷게 되는 또 다른 주인공 요이치를 취사선택한다. 대식과 요이치가 펼치는 애증의 관계는 좀 진부하긴 하지만 소설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극적 요소로 멋지게 작용한다. 할리우드 영화사의 투자가 결렬되면서, 어쩔 수 없이 적과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택한 탓일까. 어떤 면에서 본다면 <디데이>는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그리고 일본의 관객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둘 사이의 어중간한 설정이 위태로워 보인다.
다음으로 “노르망디의 코리안”은 모두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제발 좀 적극적으로 그 ‘실화’의 비밀을 시원하게 벗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아무리 소설이라도 하더라도, 그 소설을 쓰게 된 원전을 밝히기 마련이다. 달랑 미군이 노르망디 해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일본군-소련군-독일군 출신 조선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신빙성과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실에 풍설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원래 있던 사실마저도 그 빛을 바래기 마련이 아니던가.
대식과 요이치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스탈린그라드 탈출기를 위해, 요이치의 독일 유학 설정이 매우 유효했다고 본다. 요이치가 독일어로 대식과 자신이 동맹국 일본 출신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면, 소련군 까레이스키로 몰려 죽었을 테니까 말이다. 엽기적인 굴라크 수용소장 페트로프의 심리전도 인상적이었다.
자,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노르망디의 코리안”의 문학 3부작과 다큐멘터리를 모두 섭렵했으니 다음 달 크리스마스 무렵에 개봉예정이라는 <마이 웨이>만 보면 된다.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영화적 상상력의 소산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