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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달력 - 마야 문명 최대의 수수께끼에 얽힌 진실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박병화 옮김 / 열음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솔직히 말해, 독일 출신의 작가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의 <마야의 달력>의 제목을 들었을 때 이 책이 단순하게 마야 문명의 시간에 대한 글인 줄만 알았다. 책을 읽다 보니 내 생각이 아주 틀렸다는 걸 깨닫게 됐다. 물론 시간 일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책의 주제는 역자가 후기를 통해 친절하게 알려 주었듯이 “마야 문명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었다.
수레나 동물의 도움 없이 찬란한 마야 문명을 이룩한 것으로 알려진 고대 마야인들이 어떻게 해서 지금 기준으로 봐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시간의 개념을 파악하고, 행성의 운행과 복잡한 역법 체계를 만들어냈는지 알 도리가 없다는 사실에 작가는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이비 과학까지 동원해서 고대 우주인설, 혹은 대서양 어딘가에 사라진 아틀란티스 사람들의 문명 전파설 그리고 최근 2012년 지구종말설에 이르기까지 정말 백가쟁명식의 다양한 이설들이 끊이지 않는단다.
하지만 정작 구트베를레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마야인들의 참모습이다. 1519년 에르난 코르데스의 아즈텍 정복 이후, 몰려든 스페인 세력은 인신공양하는 아즈텍인들을 야만인이자 이교도로 규정하고 기독교식 문명 전파를 서두른다. 작가가 서론에서 규정한 대로, 시간과 달력으로 대변되는 기독교식 질서가 과연 메조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얼마나 호응을 얻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하지만, 천연두라는 무서운 전염병을 선두로 한 스페인 정복자들의 야만적 폭력과 공동의 적에 맞서 대항할 연대를 하지 못한 아즈텍인들은 그들에게 거의 전멸되다시피 한다.
작가는 마야 문명에 담겨 있는 인류 창조 신화에 세 번째로 등장하는 ‘옥수수 인간’에 주목한다.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메조아메리카인들의 주요한 식량 자원인 옥수수는 그들의 식생활과 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불가분의 관계라고 한다. 유럽인에게 밀과 보리가 그리고 동양인에게 쌀이 주식이었던 것처럼 메조아메리카 사람들의 주식인 옥수수를 유럽에 전파하려고 하지만, 메조아메리카 특유의 조리 레시피를 몰랐던 유럽 사람들의 실패는 처음부터 예견되었다고 작가는 냉정하게 꼬집는다.
옥수수의 생성과 소멸은 그대로 그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 마야인들의 삶에 적용됐다. 옥수수의 생산은 그들의 생존에 직결된 문제였고, 옥수수를 언제 심고 또 언제 수확할 것인가는 그네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마야의 주술사 혹은 시간예언자들은 그런 이유로 해서 요즘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복잡하기 짝이 없는 역법 체계를 고도로 발전시켜야만 했다. 동시에 태양력과 종교에 사용되는 달력이 이중으로 필요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고의적인 사료 파괴로 고대 역사의 상당 부분이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마야 문화 전반을 구트베를레트는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시간이라는 특정한 주제 뿐만 아니라 정치, 전쟁, 문화, 사회 그리고 종교에 이르는 다양한 부분의 이해를 <마야의 달력>을 통해 넓힐 수가 있었다. 작가는 요즘 한창 기승을 부리는 13.0.0.0.0. 다시 말해서 2012년 12월 21일 지구종말설을 철저하게 현실, 현세 지향적이었던 마야인들의 특성을 이유로 들며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음모설을 즐기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특수(?)를 맞아 나오는 그런 책들이 한편으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