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패션의 탄생 - 만화로 보는 패션 디자이너 히스토리
강민지 지음 / 루비박스 / 2011년 5월
평점 :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의 강민지 씨가 그리고 쓴 <패션의 탄생>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말하는 명품의 역사를 엿보게 됐다. 그녀는 모두 26명의 근대 패션을 주름잡았던 디자이너들의 삶을 통해 그네들이 만들어낸 패션이 어떻게 우리 삶 속에 스며들었는지 적확하게 잡아냈다. 사실 평소에 패션이 관심이 없다 보니 옷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지만, 패션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보면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의 탄생>은 근대 패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티에리 에르메스와 루이 뷔통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구찌오 구찌처럼 에르메스는 마구상 제조업자로 패션계에 입문했다. 에르메스와 루이 뷔통은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시대에서 자동차로 여행하는 시대에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의 휴대용 여행 가방을 개발하면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패션은 단순히 보기에 좋은 옷뿐만이 아니라 사회발전과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는 순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려서부터 패션에 관심을 보이던 세계 유수의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입지전적 자수성가를 이룬 인물들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화려한 칵테일 드레스 같은 오트 쿠튀르 전성시대를 지나 프레타포르테로 대변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로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패션 사업은 장인들이 한 땀씩 직접 손으로 바느질하는 가내수공업 스타일의 제작 방식에서 탈피해 대중이 원하는 제품을 공급해야 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천재 디자이너와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도 같은 CEO의 결합은 필연적이었다고나 할까. 패션의 대중적 소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세계 패션을 선도하는 프랑스 전통의 오트 쿠튀르 지지자들에게는 불편한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독창적이고 뛰어난 패션이라고 해도 홍보가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저명한 디자이너와 영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기의 스타와의 만남 역시 운명적이었다. 위베르 드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의 만남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자신이 디자인한 옷과 신발 그리고 가방을 선전하는데 마다할 디자이너가 누가 있겠는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해 프라다가 다시 한 번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화를 통한 스타마케팅은 선택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전적인 방식에 비하면 캘빈 클라인의 도발적인 광고 시리즈는 좀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런 주류 패션 업계의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패션계의 뒷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치 가문의 내력인 것처럼 구찌 일가의 막장 드라마 뺨치는 불화, 적국의 장교를 사랑한 가브리엘 샤넬의 로맨스,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자유분방한 영국 펑크록의 기수였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에피소드는 매력 만점이다. 비교적 신세대 디자이너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장 폴 고티에나 존 갈리아노의 등장 역시 흥미진진했다. 물론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디자이너로 최고의 위치에서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단박에 추락한 존 갈리아노의 예에서 보듯 아무리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라도 하더라도 정도를 넘어선 행동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존 갈리아노는 프랑스 법정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6개월의 실형과 3만 달러 상당의 벌금형에 처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치 장교와의 로맨스로 부역 혐의를 벗지 못한 채 조국 프랑스에 묻히지 못한 가브리엘 샤넬 역시 역사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패션의 탄생>은 뛰어난 구성과 강민지 씨의 멋진 일러스트레이션에도 곳곳에서 보이는 사소한 오탈자와 부족한 역사 인식으로 책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전쟁이 끝난 건(크리스찬 디올 편, 150쪽) 1941년이 아니고 1945년이다. 전쟁이 1941년에 끝났다면 자유프랑스군을 이끌고 영국에서 망명정부를 이끈 드골 장군이나 조국해방을 위해 목숨 바친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희생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은이나 편집자의 꼼꼼하지 못한 감수가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