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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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 난 러셀이 위대한 철학자라고만 생각했는데 <로지코믹스>를 읽으면서 그에 다른 면들을 알 수가 있었다. 러셀은 수학자로 출발해서, 논리학자 그리고 철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생성의 비밀과 진리를 탐구한 구도자였다. 그리스 출신의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와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콤비는 20세기 초반 치열하게 전개된 논리학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만화적 상상력을 가미해서 소개한다.

영국 백작 가문에서 태어난 버트런드 러셀은 조실부모하고 펨브로크로지에서 종교적으로 엄격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여느 천재들처럼 러셀 역시 어려서부터 그 따분하다는 라틴 어는 물론이고, 훗날 자신의 학문 탐구에 도움이 될 독일어를 열심히 익힌다. 이 책 <로지코믹스>의 저자들은 논리와 광기의 연관성에 집착하는데, 어린 러셀이 밤마다 들은 ‘고삐 풀린 짐승의 감정이 가득 서린 신음’이 자신의 큰아버지가 내는 소리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함께 상이군인 “올드 파커”를 만나면서 훗날 자신이 걷게 될 평화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만나 자연과학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수학에 매력을 느낀 러셀은 논리학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다. 대학에 진학해서 만난 첫 번째 부인 앨리스와의 로맨스도 잠시뿐, 러셀은 논리학을 통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즐거움의 세계 속에서 자신을 투영한다. 수학의 토대를 찾기 위한 러셀의 정진을 계속된다.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교수였다. 화이트헤드와의 사제 관계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이어지는 사제의 순환이었다고나 할까.

오늘 아침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 사설에서 서울대의 모 교수가 주장했다는 사이비 도제식 교육이 화이트헤드, 러셀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관계처럼 끝없는 학문의 발전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러셀이 주창한 역설처럼 교수지만 그 스스로는 교수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없는 명제에 작금의 교수 사태를 대입해 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학문적 명제라도 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게오르크 칸토어 그리고 나중에 반유대주의로 학문의 빛나는 성과가 탈색하긴 했지만, 여전히 아우라를 발하는 프레게 교수와의 만남의 핵심을 <로지코믹스>는 그야말로 코믹하게 다룬다. 어쩌면 너무 복잡해서 글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예민한 부분까지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다룰 수 있다는 만화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정말 대단한 성과를 창출해냈다.

화이트헤드와의 공동 연구 역시 진리를 찾는 여정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숙명이었으리라. 스승의 젊은 부인에 대한 애정, 끝없이 자신을 극한으로 내모는 십 년간의 연구 과정이 <수학 원리>라는 걸작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지만, 정작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또 다른 천재 쿠르트 괴델뿐이었다는 냉소적인 시선도 빠지지 않는다. 정말 어렵다 어려워. 새롭게 등장한 비트겐슈타인과 상부상조하면서 현대철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 러셀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스승을 극복해야 하는 제자의 운명 같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논리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기호화된 언어의 중요성을 깨달은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설명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읽는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 알고 싶은 것은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으나,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구나!

현대 논리의 토대를 찾는 전개과정을 전면에 내세운 <로지코믹스>가 결말에 그리스 비극 아이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와 이종 교배를 시도한 장면은 정말 의미심장하다. 만화에 등장한 자기언급처럼 논리와 광기는 정말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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