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일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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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연달아 벨기에 출신의 작가 토마 귄지그의 책을 읽게 됐다. 첫 번째 책에 나와 있는 “아멜리 노통브의 뒤를 잇는‘이라는 카피 때문에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노통브란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폭발해 버렸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 <적의 화장법>과 <오후 네 시>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난 <제비 일기>라는 백 쪽이 조금 넘는 그야말로 에세이 같은 그녀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됐다.

주인공 위르뱅(이조차도 가명일지 모르겠다)은 최근의 실연으로 모든 감각의 자살을 맞이한다. 성적 유희로 대변되는 촉각은 말할 것도 없고, 청각과 시각, 그리고 필연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미각마저 상실해 버렸다. 그나마 그를 위로해 주는 것은 오감은 후각 정도? 오토바이광인 그는 파리 시내를 질주하다가 사람을 치고 직장에서마저 잘리게 된다. 그리고 어느 당구장에서 우연히 만난 러시아 사내 유리를 만나면서 킬러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다.

소설의 화자 위르뱅은 의뢰받은 고객을 “클린”하는 서비스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면서 느끼게 되는 죄책감은 어쩌구? 그는 철저하게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을 클린하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죄책감을 털어낸다. 인간 존재를 머리에 총탄 두 방으로 지우는 일에 쾌감을 느낀 그는 가끔 프리랜서 잡에도 도전해 보지만, 의뢰받은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위르뱅이 이 살인청부에 매력을 느끼는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넉넉한 보수다. 역시나 먹고 살기 위해서는 킬러도 돈이 필요하구나! 다시 한 번 사회경제적인 요소를 간과할 수 없는 우리네 팍팍한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한편, 감각과 쾌락에 부재에 시달리는 위르뱅은 여성동료 킬러의 존재에 집착한다. 실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존재는 그에게 판타지로 작동한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떠올랐다. 위르뱅과 그를 고용한 조직에서 많은 “클린”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여론이나 경찰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그들을 방관하는 걸까? 마지막 장관 일가족 작업에서 비로소 위르뱅은 텔레비전을 통해 자신의 작업에 대해 보게 된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빼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통브의 <제비 일기>는 전형적인 느와르 스타일의 소설이다. 어쩔 수 없이 주인공 캐릭터에 배어 있는 여성성이 냉혹한 킬러의 그것과는 많이 상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해서 작년에 읽은 루이스 세풀베다의 단편 <감상적 킬러의 고백>과 비교를 하게 됐다. 노통브의 킬러 소설은, 살인이라는 금기를 다루면서 독자의 감정이입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독자는 위르뱅의 클린작업과는 전혀 무관한 3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관조적인 입장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위르뱅의 클린을 주시한다. 작가는 독자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면서도, 동시에 차단하는 묘한 줄타기를 선보인다.

<제비 일기>는 확실히 재밌다.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신속한 전개 역시 마음에 들었다. 이 짧은 소설로 아멜리 노통브의 작법 스타일을 가늠해 보기가 쉽지 않겠지만, 첫 만남치고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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