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각본집 영화 오디세이를 책으로 만나다
크리스토퍼 놀란 지음, 김은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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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관람의 여운이 가시기 않은 상태에서 <오디세이 각본집>을 만나게 됐다. 주말 행사처럼 된 도서관 방문을 했다가 신간코너에서 <오디세이 각본집>이 들어와 있는 걸 봤다. 바로 빌려서 바람처럼 읽기 시작했다. 뭐랄까 영화를 복기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아>를 원전으로 삼아 21세기 <오디세이>를 새롭게 창조해냈다. 원작의 얼개는 그대로 갖추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시인이었던 호메로스도 당시에 떠돌던 마법이 지배하던 시대의 구전 전승 설화들을 집대성해서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오디세이아>를 만들지 않았을까.

 

호메로스가 인간의 기억력에 기반해서 서사를 구축했다면, 놀란 감독은 새로운 세기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를 동원했다. 귀로 듣는 서사보다, 눈으로 보는 서사의 힘이 전세계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 잡아 버렸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고대 서사는 외눈박이 괴물 사이클롭스, 무자비한 거인족, 인간을 동물로 만들어 버리는 마녀 키르케 그리고 바다에서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동원해서 일련의 고정된 이미지들을 관객에게 각인시켰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주목하는 인물은 바로 주인공 오디시어스다. 장장 10년에 걸친 불가능해 보이는 트로이 전쟁을 지략으로 승리로 이끈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영웅의 귀환 서사는 다만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의 귀환이 무기한 지연되면서, 이타카 왕국의 질서는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왕비 페넬로페의 힘만으로는 당장 눈앞에 닥친 바다민족의 침공이라는 대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현실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오디시어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방문한 스파르타의 국왕이자 트로이 전쟁에서 오디시어스의 전우였던 메넬라오스는 바다민족과 싸우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헬라인들의 청동기 문명은 어디서 왔는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되어 있는 바다민족의 침공으로 이후 400년간의 암흑 시기를 맞이하게 됐다. 어쩌면 신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혹독한 대가를 오디시어스가 치른 것처럼, 헬라 민족도 비슷한 궤도를 겪게 된 게 아닐까.

 

오디시어스는 트로이 왕국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과연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회의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 고뇌하고 번민하는 오디시어스의 모습은 고대인이라기 보다, 현대인의 가까운 모습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헬라인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제우스의 법을 지키라는 명제를 트로이 목사 사건으로 깨부순 사람이 바로 오디시어스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 그들이 신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헬라 문명을 공격한 정체불명의 바다민족에 대해 비난할 수 있을지 묻고 싶어졌다. 어쩌면, 트로이 마지막 날의 모습은 훗날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당하게 될 대재앙의 계시가 아니었을까.

 

오디시어스가 귀환길에서, 자신의 함대에게 공급할 식량과 보급품을 위해 가는 곳마다 거래와 협박 그리고 약탈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에게 현지인들은 협력의 대상이 아닌 오직 약탈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말을 할 수 있었던 사이클롭스에게 왜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느냐는 부하의 말에 개미와 말하는 걸 봤느냐며 핀잔을 주는 오디시어스의 모습이 연상됐다. 자신의 섬을 침략한 오디시어스와 그의 부하들은 외눈박이 폴리페모스에게 그저 한끼 식량에 불과했던 것이다.

 

신의 분노와 싸우며 고향 이타카로 가기 우해 고군분투하던 오디시어스와 그의 부하들은 그들이 방문한 섬의 현지인들에게는 모두 믿을 수 없는 이방인이자 약탈자에 불과했다. 그랬기 때문에 라이스트리고네스 섬의 거인족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헬라 이방인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해서 그들을 압도적인 무력으로 몰살시켜 버리지 않았던가.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도 살아남은 아무도 없다는 말에 무모하게 도전에 나서는 오디시어스의 모습은 만용에 가깝다. 신이 정한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맞서는 오디시어스. 가장 갈망하는 것들은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신탁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 거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결국 태양신의 신성한 소들을 잡아먹고 하데스로 향하게 되는 오디시어스 부하들의 모습에서 결국 다시 한 번 필멸의 존재성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오디세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각본집을 읽으면서 고대 역사를 다시 한 번 현실에 적용시켜 보게 되었다. 한 때 찬란했던 그리스 문명이 트로이 전쟁으로 정점을 찍고 결국 하강곡선을 타고, 암흑기를 거쳐 훗날 지중해의 새로운 패권국가가 되는 로마에게 정복되었다. 19세기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며, 팍스 브리타니카를 구축했던 대영제국도 역시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몰락하고 과거 식민지였던 미국에게 패권을 내주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도 이제 저물고 있다는 시그널을 사방에서 볼 수가 있다.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트로이 함락을 지켜보던 고대 전사 오디시어스의 모습이 세계 경찰국가의 위상을 잃고, 하루가 다르게 몰락하는 과거 거인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면 너무 나간 해석일까.

 

무려 3천 년 전부터 구전으로 전승되어 온 내러티브가 또 새로운 천년에도 이렇게 위력을 잃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새로운 창조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서사가 가진 힘의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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