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옮기는 사람 제안들 37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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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욕탕>에 이어 다와다 요코의 <글자를 옮기는 사람>을 읽었다. 원래 다른 책 읽고 있었는데... 순서가 무슨 상관이겠냐만. 워낙에 분량이 적어서 금방 읽었다.

 

자전적 이야기인지 소설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책 정보를 검색해 보니 소설이란다. 아 그렇구나. 카나리아 무리의 어느 섬으로 번역가인 화자가 내과의사네 별장 신세를 지게 된다. 아 미션이 있었지. 짧은 단편소설을 번역해야 한다. 아마 독일어 작품인 거 같고, 자신의 모국어(일본어)로 번역해야 한다지.

 

주어와 술어가 뒤죽박죽된 성 게오르크의 용사냥에 대한 이야기가 간간히 화자의 번역 작업물로 끼어 들고, 화자는 예의 섬에서 원주민과 만나 이런저런 일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서사를 옮긴다. 참 그리고 보니 이 소설의 원작이 <문자이식>이라고 했던가.

 

섬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정작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거나 그러진 않는 모양이다. 뭐랄까, 화자는 다와다 요코 작가처럼 어쩌면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섬의 풍경에 대해 작가적 시점에서 예리한 진단을 내린다. 섬에는 물이 부족한데, 그건 바나나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그렇다면 바나나 나무를 키우지 않으면 되지 않나?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바나나를 재배해서 돈벌이를 해야 하니까. 카나리아 무리에서 바나나 재배를 하나 싶다. 그 동네 일에 대해 잘 모르니. 그렇다고 해서 부러 검색해서 모르는 지식을 채우고 싶은 욕망도 생기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원래 리뷰의 제목을 <선인장, 바나나 나무 그리고 드래곤 바람>이라고 할까도 싶었다. 그 정도로 작가는 카나리아 무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섬에는 염소 외에는 모든 가축 키우기가 금지되어 있다고 했던가. 그래서 치즈도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만 있는 모양이다.

 

병행해서 진행되는 번역 작업물은 왠지 비밀암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와 술어의 순서가 엉망이다. 그렇지만 굳이 재조립해서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또 넘어간다. 그냥 여유작작하는 나의 독서 스타일인가 보다. 굳이 무언가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과연 이 부분에서 저자의 집필 의도가 무엇인가하고 따지고 싶지도 않다. 이걸 독서의 내공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무식한 독서 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읽는다. 소설의 어디선가 만난 문구처럼, 내가 읽은 것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은 나의 뇌리 속에서 사라질 건 사라져 버리겠지.

 

그 다음에 또 무슨 이야기가 있더라. 곧 섬에 올지도 모른다는 신비에 휩싸인 게오르크가 있었던가. 그것은 마치 마감에 맞춰 번역에 집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다는 작화자의 게으름과 상충하는 그런 이미지로 다가온다. 게오르크-용가리-공주의 삼위일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화자는 공주로 대체될까. 에이 그건 아니겠지. 어느 의미에서 사악한 용가리는 일상을 파괴하는 요물을 상징한다. 그리고 성 게오르크는 일상의 회복을 가져다 주는 그런 인물일까.

 

자 다음은 화자가 몰입하지만 또 성과를 내지 못하는 번역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중언어자답게 번역은 창작만큼이나 작가에게 밥벌이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번역의 과정은 타자의 창작물이 나의 시선과 사유를 거쳐 다른 방식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게 아닐까. 어느 순간, 역자인 화자는 자신이 번역한 작품을 자신도 모르겠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내가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걸 알 수 있겠냐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다. 나도 마찬가지다. 난해함의 연속인 다와다 요코 작가의 책들을 만나면서, 내가 다와다 요코가 아닐진대 어떻게 그가 구사하는 언어들을 무슨 수로 다 소화해낸단 말인가.

 

정신없이 그렇게 읽다 보니 다와다 요코의 <문자이식>은 그렇게 끝나 있었다. 오늘 아침 짙은 안개를 헤치고 출근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두 번째 만남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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