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 1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윌리엄 바이넘의 <창의적인 삶을 위한 과학의 역사>를 살펴 보려고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앉은 자리에서 <심야식당> 첫 번째 권을 다 읽었다. 왜 이걸 보면서 어제 봤던 먹텐 생각이 나는 거지.

 

<심야식당>은 마스터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운영하는 식당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밤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그리고 그들 모두 한자락씩 이야기 보따리를 품고 있다. 마스터는 별 거 아닌 요리로 손님을 맞이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요리를 요구하는 진상들도 있지만, 점잖게 그들을 내쫓는다. 모름지기 그런 품과 재료가 많이 소모되는 요리라면 값비싼 레스토랑에 가야할 것이다. 허름한 <심야식당>에서 그런 요리를 요구하지 말지니.

 

나폴리 출신 후리오(?)인가 하는 친구는 심야식당에서 처음으로 나폴리탄 파스타를 먹어 봤단다. 그도 그럴 것이 나폴리탄 파스타의 원조는 이탈리아 나폴 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긴 캘리포니아 롤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것처럼 말이지. 심야식당에서 스승을 만난 후리오는 고향에서 출동한 식구들에 강제 연행되어 끌려 갔다지.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수를 놓는다.

 

자식 자랑을 늘어지게 하던 야마모토인가 하는 손님은 십대 소녀 딸의 갑작스런 임신 소식에 기겁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마 마스터에게 자신의 딸에게 줄 도시락을 주문했지. 딸이 사는 곳에 가서 조용히 문고리에 도시락을 걸어 두고 발걸음을 돌리는 아버지의 마음이란. 그리고 다음해 봄에 딸을 꼭 닮은 손주 자랑에 나선다.

 

열 몇 가지 에피소드들에서 아베 야로 작가는 짧게 끊어치기 기법을 선보인다. 조폭 출신의 켄자키 류 씨나 게이맨 코스즈 같은 경우에는 심야식당의 단골로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1회성 단발로 출연했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다양한 삶의 군상을 이어주는 공간으로 심야식당이 작동하고, 그 중심에는 묵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 많은 마스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탁월한 밸런스가 아닌가.

 

하루 지난 카레를 고객들에게 무한대(?)로 공급하기도 하고, 멋쟁이 의사 선생에게 빠져 다이어트를 하면서 동시에 요요현상에 시달리는 고객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마스터. 아마 성시경이 요리를 할 줄 안다면 이런 마스터에 적합한 캐릭터가 아닐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이런 마스터가 운영하는 술집이 있다면 나도 단골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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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너튜브를 통해서 한국어 자막이 달린 <심야식당> 두어편을 봤다. 사실 시간이 좀 촉박해서 만화는 슬렁슬렁 봤다고 고백해야지 싶다. 일본 도라마는 훨씬 더 짜임새와 밀도가 높았다.

 

네코맘마의 주인공 엔카 가수 치도리 미유키의 경우를 보자. 어느날 6시반 정도 마스터가 신주쿠 골목의 메시야’(동네밥집)의 문을 닫으려고 하던 차에 무명의 여가수 지망생 치도리 미유키가 등장해서 네코맘마 흰쌀밥에 가다랑어포를 얹어 달라고 한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밥에 마스터는 바짝 말린 가다랑어포를 직접 대패에 갈아서 얹어 준다. 그리고 어찌어찌해서 메시야에서 라이브를 하던 치도리 미유키는 대스타의 반열에 올랐다가 병에 걸려 죽고 만다. 그녀가 가고 난 뒤에, 진짜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마스터. 일본 갬성이 폭발하는 순간 이 아니었나.

 

간간히 요리에 대해서도 도라마는 설명해준다. 별 것도 아닌 계란말이를 촉촉하게 만드는 방법을 게이바 사장 코스즈 상이 등장해서 소개한다. 서로의 직업(?)을 좋아하지 않지만 류 짱과 사이 좋게 계란말이와 문어모양 비엔나 소시지를 나눠 먹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 이미 ASMR의 효과를 잘 알았는지 요리하는 소리 그리고 그렇게 마스터가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소리 내어 먹을 적에는 정말 야심한 시간에 뭐라도 맹글어 먹어야 하나 싶더라. 그리고 보니 이십년도 전에 손예진의 드라마 데뷔작 <맛있는 청혼>을 보고 그렇게들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지 아마.

 

개인적으로 마스터의 왼쪽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궁금한데, 아마 나중에 이것도 풀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 싶은데, <심야식당>도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긴 하지만 역시나 관외대출 불가라고 한다. 천상 도서관에 갈 때마다 조금씩 읽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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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0-19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고놈의 관외대출....요건 그래픽노블도 아닌데 또 왜, 벽이 높네요. 레삭매냐님의 책사랑 방훼꾼.

˝심야˝라는 시간이 주는 매력이 있겠어요? 그시간대 손님에는 어린이는 아예 없겠네요?^^

레삭매냐 2023-10-19 12:50   좋아요 1 | URL
아 맞습니다.

심야라는 시간이 아예 아해들을
배제하는 그런 요소가 있었네요.
예리하십네다 고저.

밤에는 좀 더 센치해지는 그런
갬성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대화의 밀도도 깊어지구요 ^^

서니데이 2023-10-19 1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심야식당 오랜만이네요. 전에 드라마도 조금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도 아마 가수 지망생 편은 있었던 것 같아요. 성공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불운이 아쉽게 느껴졌던 것 같네요.
심야식당이 집 근처에 있다면 가끔 가볼 것 같아요. 특별한 요리가 아니어도 신기할 것 같아서요.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10-19 12:5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어렵게 성공한 엔카 가수
가 결국 사망하는 에피가 참... 그렇
더라구요.

저도 고런 심야식당이 있다면 들러
보고 싶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유부만두 2023-10-20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야식당은 한국판 중국판도 드라마로 만들어졌어요. 중국판은 사람들 사연도 다채롭지만 (액션이 더 나옴) 음식 영상이 꽤 자극적이에요. 공복에 보면 위험할 정도에요.

레삭매냐 2023-10-24 08:37   좋아요 0 | URL
크하,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 그리고
중국판까지 있군요 기래.

중국 버전이 왠지 궁금하네요. 허풍
이 쎈 나라니 액션과 음식 모두 자극
적이지 않을까 싶네요 ^^

유부만두 2023-11-09 08:4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자극이 강합니다. 조폭들이 우루루 나와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