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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싱글과 시니어의 크루즈 여행기
루시 나이즐리 지음, 조고은 옮김 / 에스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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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도서관 방문은 주간행사다. 지난주에도 도서관에 갔고, 짧은 체류 기간 때문에 보통는 그래픽노블을 주로 본다. 우리동네 도서관에서는 대부분의 그래픽노블은 대출이 되지 않고 관내열람만 허용이 된다. 그러니 빠른 시간에 후딱 읽어야 한다. 그날의 픽은 루시 나이슬리라는 작가의 <어느 싱글과 시니어의 크루즈 여행기>였다.
1985년 생 루시 나이슬리는 본토박이 뉴요커인 모양이다. 2015년에 나온 이 책의 바탕이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나선 카리브해 크루즈 여행 당시 그는 프리랜서였던 모양이다. 거의 아흔 줄의 할아버지는 2차대전 참전용사로 관측기(?) 조종사셨고, 할머니는 평생 교사로 일하셨다. 다른 가족들은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노인들을 모시지 못하고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있던 저자가 크루즈 여행이라는 십자가를 지게 됐다.
치매에 시달리시는 저자의 조부모들을 모시기는 처음부터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할아버지는 바지에 실례를 하셨고... 그런 할아버지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과 루시 나이슬리는 배틀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다. 그렇다, 상대적으로 젊은 우리들은 우리도 언젠가 그들처럼 되고 또 죽는다는 사실을 시시각각 망각하면서 살고 있다. 아니 그 사실 자체를 외면하면서 살고 싶은 게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점은 루시 나이슬리는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이 자신의 근처에 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자신도 따뜻한 카리브 바다를 즐기고 싶지만, 항상 앞서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챙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러다 잠을 설치기 일쑤다. 동시에 1년 전, 자유로운 여행을 하면서 만난 스웨덴 청년과의 썸의 추억도 등장한다. 그 땐 그랬지 하면서. 롱디 관계는 어렵고, 또 그런 저런 이유로 멋쟁이와의 만남은 지속될 수 없었다.
크루즈 정원이 4,700명이라고 했던가? 정말 많은 인원들이 승선해야 하는 이유로 배에 타는 데만 세 시간이 걸렸다고. 크루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재진행형이라면, 각 에피소드 말미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유럽 전선에 파견되었을 때 경험한 것들의 기록이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예비군에 들어오라는 어느 모병관(?)의 의견을 단호하게 할아버지는 거절했다고 한다. 이미 조국에 대한 의무는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어디에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하버드에서 문학교수로 일하는 아버지에게 분당 4.5달러를 내고 10분 통화를 하기도 하는 루시 나이슬리. 자신도 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노마드 같은 삶을 살기에 인생에서 학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부모님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내가 보기에 씨잘데기 없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부제인 “트래블로그”를 무사히 마친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무지 힘들었겠지만, 이런 경험이 <어느 싱글과 시니어의 크루즈 여행기>의 바탕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들에게 남이 하지 않은 경험이야말로 좋은 글감이 되기 마련이니까.
동시에 어쩌면 곧 돌아가실 지도 모를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을 갚았다는 차원에서 뿌듯한 감정도 들지 않았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자식도 마다하는 동반여행이라고 적고 실제로는 고생길을 감당한 자랑스러운 손녀의 위업을. 게다가 이런 멋진 작품까지 썼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나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