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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두들 등반기
W. E. 보우먼 지음, 김훈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주말 도서관 방문은 이제 일상의 패턴이 되었다. 빌린 책을 반납하고 또 빌릴 책들을 둘러 본다. 참 지난 주말에는 아예 도서관 행사 때문에 주차가 안된다고 해서 멀리 차를 대고 도서관으로 가야 했다. 뭐 그 정도 쯤이야.
W.E. 보우먼의 <럼두들 등반기>를 우연히 서가에서 만났다. 내가 예전에 이 책을 재밌게 읽었더랬지. 이번에도 재밌는 책이 읽고 싶었다. 골치가 아파서 말이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을 만한 책을 나는 원한 모양이다. 그러기에 <럼두들 등반기>는 제격이었다. 1956년에 나온 책이라고 하니 67년의 시간여행을 한 셈이다.
6명의 영국 사내들이 12,000미터 그러니까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가상의 산 럼두들에 등반하는 과정을 그린 산악 코믹소설이다. 등반대장은 바인더라는 별명을 가진 이로 나레이터 역할에 충실하다.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는데, 전혀 전문가적인 소양을 지니지 않고 있다는 점부터 이 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신나는 예고탄을 쏘아 올린다. 전문 길라잡이라는 정글은 출발지인 영국에서부터 문제를 일으킨다. 럼두들 등반대와 홀로 떨어져서 이동한다. 아니 국내에서 이 모양인데, 아무도 오르지 않은 전인미답의 럼두들에서 그의 실력을 믿어도 되는 걸까?
절벽타기의 명수라는 벌리는 캠프에서부터 나가 자빠진다. 의사 선생인 프로운도 비실대기는 마찬가지다. 과학자 위시도 다른 멤버와 다를 바가 없으며, 영상전문가 셧은 기껏 찍은 필름들을 햇빛에 노출시켜 영상들을 못쓰게 만드는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엉터리 등반대를 데리고 럼두들 등반에 나선 바인더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사실 이런 엉터리 선수들이 구성되어야 산악 코믹소설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자못 진지하면서도 근엄한 말투로 등반대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바인더야말로 개인적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은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참 럼두들이 위치한 요기스탄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발탁된 통역사 콘스턴트를 빼놓을 뻔 했다. 의사소통은커녕 현지인들을 빡치게 만드는데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 자리를 빌어 언급하고 싶다.
럼두들로 출발하기 전부터 럼두들 일행은 난관에 부딪힌다. 막대한 장비와 보급품들을 현지로 나르기 위해 포터들이 필요한데, 실수로 그만 3천명(이 숫자도 어마어마하지 않은가!)이 아닌 자그마치 삼만명이나 되는 이들이 집결한 것이다.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럼두들에 오르는 동안, 그들이 겪게 되는 수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등반대원들이 차례로 크레바스에 빠지게 되고, 한 명씩 차례로 동료들을 구하러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느닷없이 샴페인 파티가 벌어진다. 그들은 결국 포터의 등에 얹혀 캠프로 이동하게 된다. 리더인 바인더는 이 모든 탓을 고소 피로증으로 돌리고 싶어한다. 동시에 대원들과의 일대일 면담을 통해 그들의 사생활의 영역에 침투해서 무언가 팀원으로서의 단결력을 다지려는 무의미한 시도를 거듭한다.
대원들을 자극해서 한시라도 빨리 정상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시무시한 요리 실력을 지닌 요기스탄 사람 요리사 퐁이었다. 아무도 그가 만드는 요리를 먹고 싶어하지 않았다. 복통과 더불어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그 때문에 모든 대원들을 정상을 향해 질주한다. 퐁을 상대하는 것도 결국 리더 바인더의 몫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수화로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은 정말 요절복통의 끝판왕이었다.
럼두들에 오르겠다는 투지에 불타는 서구인들에 비해 열악한 신체 조건을 가진 요기스탄 출신 포터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 럼두들 등반대는 럼두들 등정에 실패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산이 아닌개벼’는 애교에 가깝다. 사실 왜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싶었다. 참 서문을 맡은 빌 브라이슨과 김훈 역자의 도움으로 수시로 등장하는 숫자 153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게 아니라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저자 보우먼은 요기스탄 출신 포터들의 활약을 다루면서,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이들이 왜 자신들의 짐을 타인에게 맡기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타인의 도움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에 이런 비판적인 시선을 당당하게 표현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어쩌면 그들의 치부를 정확하게 타격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별 반향을 보이지 않다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도 든다.
15년 전에 읽을 적에는 마냥 재밌게만 읽었었는데, 지금 다시 읽게 되니 저자의 다른 의도에도 관심이 갔다. 원래 해학과 풍자라는 게 이런 비꼼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2023년의 <럼두들 등반기>는 재미와 동시에 다른 생각할 거리들을 나에게 제공해 주었다. 물론 재미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했고.
[뱀다리] 국내에는 마운틴북스와 은행나무에서 두 번 출간되었다가 모두 절판됐다. 역자가 같은 분이라는 점이 재밌다. 번역이 좀 바뀌었을까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