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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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우리 독서 중독자들의 본능을 자극했던 이창현 유희 팀의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속편이 돌아온다는 뉘우스를 램프의 요정 서재를 통해 알게 됐다. 이웃 동네에서 연재한다는 소식에 물넘고 산넘어 가봤지만, 진입장벽이 있었다. 당근 패스했다. 내가 그런 걸 할소냐하는 의기양양함과 더불어. 이래봬도 나도 당당한 독서 중독자의 일원이란 말이지. 그런 거에 넘어가면 무리의 자격이 없으니까.

 

사실 연재 소식에 앞서 지난달에 읽다가 못 다 읽고 도서관에 반납한 기억이 있다. 그래도 기록을 해놓아서 어제 퇴근하고 나서 정처 없이 운동한답시고 동네를 배회하다가 결국 도서관으로 향했고, 서가에서 뽑아서 그 자리에서 후딱 다 읽어 버렸다. 그리고 빌린 다음 집에 와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사실 우리 책쟁이들의 일들은 매일 같이 이곳 북플과 서재에서 일어나는 일상이니 뭐 새로울 것도 없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 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미 산 책을 세 번이나 다시 사는 건 새롭지도 않거니와(램프의 요정에서 어, 이 책은 그전에 사신 기록이 있는데요라는 점원의 말을 가뿐하게 무시하고 사는 게 우리 독서 중독자들의 근본 없는 오기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지갑으로 손이 가는 걸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 <다락방의 미친 여자> 중고를 접하고 잠시 고민한 기억이 난다. 사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난 이 책을 내가 결단코 완독하지 못하리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집에는 그런 책들이 한가득이니 말이다.

 

저자들이 예리하게 짚어내는 대로 사자나 슈, 예티 혹은 선생이나 경찰처럼 우리 독서 중독자들은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 출몰하는 부적응자들이 아닐까? 그들이 주장대로 어쩌면 아니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 책 읽지 않는 정상인들 사이에서 남들처럼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고, 가끔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퍼마시고 또 뭐가 있더라. 당근 거래도 하고 화초재배도 하는 척하지만, 결국 우리는 사회 부적응자 다른 말로는 독서 중독자들이라고 불리는 걸 마다하지 않는 책쟁이들이 아닐까.

 

갑자기 싸한 냉소주의가 몰려 온다. 아니 언제부터 사람들은 책을 멀리 하게 되었고, 이런 책쟁이 혹은 독서 중독자들에 대한 냉소주의가 만연해 버렸단 말인가. 보통의 평범한 닝겡들은 책을 읽지 않는 건 물론이고 책을 사는 데 단돈 1원도 쓰지 않지만, 우리 책쟁이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책 사는데 때려 박지 않는가. 아닌가? 지난 십년 간, 램프의 요정을 통해 사들인 책값이 무려... 고만 해야 될 것 같다. 도대체 독서 모임에 출몰하는 예티와 내가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 그리고 보니 이창현 유희 이 작자들은 독서 중독자의 진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지 싶다. 대다나다.

 

어제 이 책을 다시만나면서 혜성처럼 명멸하는 책들을 도서관에서 직접 찾아 대면하는 그런 영광의 순간들을 갖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아 이런 책도 있구나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아니 그게 서점이었다면 당장에 전리품처럼 사들고 집으로 귀환했을 지도 모르겠다.

 

지난 일요일 밤에 중고서점에서 2만원이상 사면 2천원 깎아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버스 타고 전철을 갈아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램프의 요정 범계점을 방문했다. 우선 이 자리를 빌려 안양이 아닌 산본에 먼저 램프의 요정이 들어선 것에 감사한다. 그곳에 많은 책도 팔아먹고 또 그 이상의 책들을 사들이면서 충분히 보답했다. 그리고 오픈 즈음해서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문을 여나 하고 고대하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날 세 권의 책을 사들였는데, 주일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없고 한적해서 좋았다. 캐런 헤스의 <황사를 벗어나서>, 항타고드 오손보독의 <에리옌> 그리고 니콜 크라우스의 <위대한 집>을 샀다.

 

캐런 헤스의 책은 오늘 은행에 가서 업무를 보는 동안, 버벅대는 직원에게 시위하는 차원에서 가방에 꺼내 몇 장을 읽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이십분 대기 플러스 삼십분이라니. 업무상 은행에 자주 가는 나는 전과가 있는데, 그전에 하도 일처리를 못해서 비슷한 짓거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직원분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한 기억이 나서 그렇게 했다. 시그널을 보냈는데 상대방이 못 알아 차렸을 수도.

 


그렇게 책사냥에 성공한 나는 집으로 복귀하기 위해 인근 롯데백화점을 지나 전철을 타러 가고 있었다. 저녁 술자리 약속이 있는지 전철역 부근에서 쭈구리고 앉아 있던 어떤 분이 내 뒤에 오는 지인을 보고 반색하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던지. 그 순간을 카메라로 담고 있을 정도였다. 하긴 오늘 회사에서 집에 오는 길엔 소문난 고깃집 입장을 위해 웨이팅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냅다 거리에서 키갈하는 커플들 볼거리가 많았다.

 


이것저것 쓰다 보니 이게 리뷰인지 아니면 일기인지 헷갈린다. 오락가락 저자들의 이야기처럼 이런 게 다 우리네 삶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내일은 월급날이다. 내일 월급 받으면 앞으로 줄창 입을 반팔셔츠 두 벌하고, 노스페이스에서 반값 세일하는 조리나 한 켤레 사야겠다. 신난다. 책은 이제 고만 사고. 다 필요 없고,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처럼 조용한 골방과 책이 내게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우리는 독서 중독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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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5-25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요.
책이 도대체 뭔지 이렇게 독서중독자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플이 폭파되면 모두 다 흩어질런지요!
이런 책은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들만 공감할 것 같습니다^^

같이 책을 읽던 지인이 어느 날 재테크에 눈을 떠 과감하게 책세계를 떠난 적이 있는데 여전한 저를 아직까지도 한심하게 보고 있더라고요.

그냥 타고 났다고 생각하고
이 생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다 갈 것 같은, 다행인지 불행인지의 힘든 삶을 계속 살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3-05-25 08:10   좋아요 1 | URL
예전에 소설리스트라는 사이트
가 있었는데, 폭파되었을 때
참 아쉽더라구요.

독서 중독자들에게 램프의
요정 서재/북플만한 놀이터
가 또 있을 지요.

독서 중독자에서 재테크의
달인으로의 변신이라...
경천동지할 만한 트랜스포
메이션이 아닌가 싶습니다 허-

사고 읽고 쓰고의 무한반복이
우리 독서 중독자들의 숙명이
지 싶습니다.

빨강앙마 2023-05-25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저도 책을 고만 사야합니다..ㅠㅠㅠㅠㅠ 그래서 구판절판, 절판, 품절책인 제 책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오프은행직원들 일이 왜이리 더딘지..ㅠㅠㅠ 저도 차라리 그냥 제가 할테니 공인인증서 등록이나 제대로 해주세요..무슨 서류를 그리 못떼시냐며..ㅠ.ㅠ;;;;;; 그런적이 있지요.. 저도 책을 읽는 시위를 해야했나... 그러고있습니다..,.ㅡ.,ㅡ

레삭매냐 2023-05-25 15:4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요. 책은 고만 쟁여야
하는데, 만날 대는 핑계지만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
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슈슈슉~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업무를 처리하
셨었는데 요즘에는 영 -
신종 업무가 더 많이 생겨서
일까요?

그레이스 2023-05-31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이런 제목에 끌리네요 ^^

레삭매냐 2023-06-01 08:2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제목이 열일한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