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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도 결코 이러지 않았다
찰스 부코스키 지음, 황소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지난 토요일에 희망도서로 크리스티앙 보뱅의 <흰옷을 입은 여인>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바로 달려가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지난달에 신청했는데 이렇게 수급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니. 보뱅의 책은 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다루고 있었다. 어라, 그렇다면 원작자의 시를 읽어야 하나 싶었다. 다음날에도 또 도서관에 갔는데, 파시클에서 나온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을 빌렸다. 그리고 옆의 칸에 있던 찰스 부카우스키의 책도 빌렸다. 그리고 시집을 제껴 두고 후자부터 읽었다. 이유는 너무 재밌어서.
익히 그의 책들을 읽으면서 찰스 부카우스키가 아주 뻔뻔하고 수치심이 없는 작가라는 걸 익히 알고 있어서 그런지 보통 같았으면 바로 발생했을 거부감이 상당 부분 제거됐다. 그는 1920년 독일의 안더나흐라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49세에 전업작가가 되기 전까지 다양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의 어딘가에서 58년을 살았다고 하는 걸 보면, 자신의 시집을 팔아먹기 위해 유럽 여행을 나선 시기가 1978년 정도가 아닐까 추정해 본다.

배우자 린다 리도 함께 동행해서 니스에 사는 린다의 삼촌 버나드를 만나러 갔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이유는 부카우스키가 프랑스 방송에 출연해서 막말을 해서였던가. 린다의 어머니는 자신이 반드시 가야 한다는 카페에 가기 위해 헛걸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인 부카우스키는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아침마다 숙취에 시달린다. 아니 이놈의 인간은 술이 빠지면 삶이 영위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그 술이 그에게 뮤즈라도 되는 것이었나. 그렇다면 할 말이 없고.
아무래도 이 괴짜 작가는 본국에서보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더 인기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봐도 부카우스키는 자유로운 영혼이지 싶다. 시와 소설을 쓴다고 해서 고상한 인간인 척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그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니 말이다. 자신에게 사인을 받겠다고 찾아온 팬과도 술에 취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의 팬들은 그런 그의 기행을 기대하고 팬 사인회를 찾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신이 태어난 안더나흐에서는 90살 먹은 삼촌과 재회하기도 한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너무 떠난 지 오래되어 독일어를 잊어 버려서 친지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는 상황이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독일의 성을 돌면서는 춥다고 린다와 함께 블랑켓을 뒤집어 쓰고 활보하기도 한다. 그렇지 이래야 우리의 부카우스키지.

가는 곳마다 술타령은 빠지지 않는다. 인터뷰하기 전에도 정중하게 와인 한 병을 요구하기도 하고, 물론 팬 사인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말을 빌리면, 돈 받고 술 먹는 공짜 여행 만큼 좋은 것도 없는가 보다. 기차 여행에서도 술은 빠지지 않는다. 식당칸과 주류 판매코너는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사항들이다. 독일 현지에서 자신의 작품 번역을 맡은 번역가와 영화감독과 만나서 교류를 쌓기도 한다. 물론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면서 말이다. 어딜 가든 술은 넉넉하게 준비하는 치밀함도 보인다. 다시 생각해 봐도 웃기지 않은가. 작가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일에만 이렇게 집중을 하다니. 아, 그리고 보니 어디선가는 경마장에도 갔었던가. 널리 알려진 대로 부카우스키는 경마 마니아이기도 하다.
술 마시고 싸운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부카우스키가 불패의 주취전사라는 말은 아니다. 호기롭게 싸움판에 뛰어 들었지만 대개는 상대방에게 졌다고 한다. 그런데 져도 크게 불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실력이 되지 않음을 일찌감치 깨달았다고나 할까.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니 빠른 인정이 속 편할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신나게 프랑스와 독일을 주유한 주정뱅이 작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언어와 다른 문화 때문에 골치 앓을 필요가 없는 자기네 나라가 역시 최고였다는 말과 함께. 아니 그런데 내 나라를 떠나면 그런 사소한(?)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마치 영어가 만국 공통어라도 되는 듯, 타국에 가서 그 나라 말은 모르겠으니 영어만 쓰겠다는 건 횡포가 아닌가.
찰스 부카우스키의 유럽 여행에는 사진작가가 동행해서 좋은 사진들을 많이 남겨 주었다. 물론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도 있겠지. 부카우스키는 사진을 많이 찍어야 그나마 괜찮은 사진을 남길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한 진실을 그 시절에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에는 디카가 없어서 무조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말이지. 그러니 사진 찍는 데도 비용이 제법 들었으리라. 그 또한 이렇게 책을 만들기 위한 일환이라고 한다면, 제작비용으로 퉁칠 수 있겠지. 유럽에서 부카우스키가 퍼마신 술값과 마찬가지로.
찰스 부카우스키,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그런 뻔뻔한 작가다.
[뱀다리] 부카우스키의 시집도 있던데, 다음에는 그의 시집을 좀 빌려서 읽어봐야겠다.
내가 이 작가의 시를 이해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