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만에 위화 작가의 소설을 만났다. 제목은 <원청>이다. 장소는 남녘의 어딘가로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린샹푸의 도망간 아내 샤오메이가 사는 곳으로 추정된다.

 

출발은 시진이라는 곳에 새롭게 둥지를 튼 목수 린샹푸의 파란만장한 과거를 들추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려서 조실부모한 린샹푸는 어려서부터 목수일을 좋아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신 뒤에, 실력 있는 목수 스승들에게 기술을 배웠다. 대대로 수조기와 참조기 금괴를 모아온 지주 집안 출신의 린샹푸가 결혼할 시기가 되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어느새 24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아창과 샤오메이 남매(?)가 나타났다.

 

아창은 대처로 떠나고 남은 샤오메이와 린샹푸는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그들이 과연 잘 살았을까? 아니다. 샤오메이는 린샹푸 집안 대대로 모아온 수조기, 참조기 금괴를 들고튀었다. 어디로?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왜 린샹푸를 떠났는지에 대해서도. 그러다 어느 날 아이를 배고 린샹푸에게로 돌아온다. 자신의 혈육을 품은 샤오메이를 내칠 수 없었던 린샹푸는 그녀를 다시 받아들인다. 그리고 딸 린바이자가 태어나고, 그들의 행복은 얼마 가지 않았다. 샤오메이는 다시 집을 나갔다. 이번에는 수조기, 참조기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남쪽 원청출신이라는 말만 듣고, 젖먹이 린바이자를 데리고 재산을 정리하고 나머지는 집안의 오랜 집사 톈다에게 부탁하고 린샹푸는 정처 없이 도망간 와이프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원청 부근이라고 생각한 시진에 새롭게 정착하는 린샹푸. 시진에서 사람 좋은 천융량을 만나, 거의 한 가족같이 살게 된다. 특유의 목공 기술을 발휘해서 천융량을 조수로 삼아 동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12년이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청나라는 망하고 민국이 들어섰다. 세상은 어수선했다. 북양군벌과 국민혁명군이 전투가 벌어지고, 패잔병들이 백성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약탈하기 일쑤였다. 시대가 어수선하니 비적과 토비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분열의 시기, 중국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혼란상에 대한 위화의 남다른 스케치가 빛을 발하는 장면이었다. 시진의 상인회장 구이민네 아들과 린바이자의 약혼식날 시진에 잠입한 비적들이 바이자를 인질로 잡아갔다. 이에 천융량의 부인인 리메이롄은 자신의 장남 천야오우에게 토비들에게 가서 자신이 바이자를 대신하겠다고 말하라고 시킨다. 오직 돈에 눈이 먼 토비들은 바이자를 풀어주고, 천야오우를 인질로 잡아갔다.

 

야만의 시대에 대한 위화 작가의 묘사는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국민혁명군에게 패배해서 시진으로 다가오는 북양군벌 일당을 걱정한 2만 명에 달하는 시진 사람들은 피난길에 나선다. 대나무 뗏목을 만들어서 도망가려다 숱한 사람들이 엄동설한의 차가운 물속에 수장된다. 결국 구이민은 정든 고향과 재산 그리고 집을 버리고 도망갈 게 아니라 패주 중인 북양군벌의 여단장과 거래에 나서서 시진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로 결정한다. 그 대가는 천벌에 달하는 패잔병들의 겨울 동복과 은화 6만 냥의 군자금이었다.

 

한편, 비적 떼에게 인질로 잡혀간 천야오우에게 벌어진 일들은 야만의 시대에 대한 위화식 증언이 아닐까 싶다. 사로잡은 인질에게서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뜯어내기 위해 비적들은 악랄한 고문과 매질도 서슴지 않았다. 비인간적 대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돈이 없는 인질들은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 죽여 버렸다. 이런 천신만고 끝에 천야오우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다.

 

천야오우와 다른 인질들은 1차 인질 석방 작전이 실패하는 바람에 모두 토비들에게 귀를 잘렸다. 귀가 없자 그들은 삶에서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건 마치 청나라가 망한 뒤, 국가의 나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던 민국 초기 시절에 대한 위화 작가 스타일의 비유가 아닐까 싶다.

 

그 뒤에도 천야오우와 린바이자의 스캔들 그리고 장도끼가 이끄는 토비들이 시진을 공략하는 그야말로 파란만장 스토리들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피 끓는 청춘남녀들의 로맨스야 그렇다 치고, 이미 토비들에게 한 번 호되게 당한 시진에서는 기존의 인질 22명 가운데 19명의 외귀군을 주축으로 한 민병단이 조직되어 100여명에 달하는 토비군을 상대하게 된다. 단장 주보충을 비롯한 민병단원들의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악랄한 토비군들에게 민병단원들이 거의 전멸할 위기에 각성한 시진 사람들의 가세로 간신히 낙성의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민중혁명에 대한 예고편인지도 모르겠다.

 

야만의 시대를 대변하는 토비들의 만행에 대한 묘사와 무자비한 토비들의 총탄에 민병단원들이 차례로 죽어 가는 비장한 장면이 대비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질극이라는 만행을 경험한 시진 사람들이 앞 다투어 총기를 사들여 무장에 나서는 장면에서는 폭력의 악순환이 도래할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키기도 했다.

 

<원청>에서 다루는 청조말기 그리고 민국 초기에 이르는 난세에 대한 서사의 근본은 비극이다. 농민으로 평범하게 살 수가 없어 토비가 되었다는 빌런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피로 피를 씻는 복수의 끝에 기다리는 운명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최고 악당 장도끼가 심판을 받지만, 통쾌한 기분이 들진 않았다. 엔딩에서 위화 작가는 다루는 서사의 저글링에 감정의 진동이 걷잡을 수 없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다음에 따라붙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궁금했던 샤오메이의 과거에 대한 그리고 그후의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애프터서비스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워낙 린샹푸의 일대기에 집중하다 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사실 작가의 부언이 없다고 해도 아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중요한 인물인 린바이자 역시 상하이로 떠나보내고 전체 플롯에서 삭제해 버린 작가의 스타일도 확실히 과감했다.

 

사회주의도 그렇다고 자본주의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현재의 모습보다 강호의 의리와 기개가 살아 있던 백여 년 전 그네들의 삶이 더 살갑게 다가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11-29 1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위화작가는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을 읽고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도 읽고 싶네요.
<형제>,<제 7일>도 읽구요^^;;

레삭매냐 2022-11-29 13:58   좋아요 2 | URL
저도 위화 작가의 팬인가 봅니다.

언급해 주신 책들 모두 읽었네요 ^^

그렇게혜윰 2022-11-28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에세이밖에 못 읽었는데 에세이가 좋아서 소설은 늘 위시입니다...ㅋㅋㅋ

레삭매냐 2022-11-29 13:59   좋아요 2 | URL
오오 위화 선생의 에세이
들도 있었군요. 전 주로
소설로 위화 선생을 만나
서요 ^^